[대한人] 간도는 내 소설의 첫문장이자, 마침표다 소설가 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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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人] 간도는 내 소설의 첫문장이자, 마침표다 소설가 강경애

대한한국 최초의 민중소설가로 인간문제·소금 등 걸작 남겨 항일투쟁지역인 간도에서 8년간 머물며 리얼리즘 소설 집필

  • 승인 2016-04-26 11:25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대한人] 14. 강경애

소설가나 시인에게 있어 태어난 곳 혹은 살았던 곳, 고향은 소중한 재산입니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옛 추억을 곱씹으며 살듯이, 작가에게 고향이란 소설의 첫 문장이자 마침표와 같습니다. 모든 주제가 고향에서 시작되고 그곳으로 회귀하죠. 작가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는 걸까 싶을 만큼 고향에 집착하는 직업군 중 하나입니다.

먼훗날 소설가 강경애를 만나게 된다면 꼭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간도는 어떤 의미인지, 간도에서의 삶이 작가로서의 삶을 얼마나 좌우했는지 말이죠.

대한인 14번째 주인공은『인간문제』,『소금』등 1930년대 일제의 억압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쳤던 소설가 강경애다. 그녀는 당대 일반적인 여성작가들보다 앞서 리얼리즘 문학을 시도했습니다. 유난히 항일투쟁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작가는 그때의 기억을 살려, 그 시기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죠. 그녀의 소설은 마치 사진 한 장을 보듯 생생한 1930년대를 담고 있어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경애 작가와 대표작품인 인간문제.
▲강경애 작가와 대표작품인 인간문제.


강경애는 1907년 황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총명했던 탓에 책을 읽으며 한글을 깨우쳤고 동네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영특한 소녀였죠. 가난했던 집안형편에 간신히 초등과정을 마쳤고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지만 3년 만에 퇴학당합니다. 이 시기 국문학자 양주동을 만나 열애를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났죠. 당시 양주동은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었고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가 알려지자 타지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고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관계가 정리 된 후 강경애는 양주동의 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죠. 양주동은 비록 헤어진 연인지만 강경애의 삶에서는 충분히 중요한 역할을 했죠. 글을 쓰고 싶었던 강경애의 재능을 이끌어 냈다는 부분이죠.

모든 소설은 간도에서 쓰여졌다

이후, 강경애는 약 8년여를 문학공부에 몰두합니다. 그녀의 작품 세계가 다시 시작된 것은 운명의 남자 장하일을 만나면서인데요. 두사람은 1931년 결혼하지만, 장하일도 오래전 조혼한 상태였습니다. 장하일의 부인이 찾아오자 두 사람은 간도로 이주를 선택하죠. 이곳에서 가난과 싸우며 작품에 쓸 중요한 자산을 얻게 되는 사실상 제2의 인생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장하일은 강경애를 상당히 아끼고 그녀를 위해 헌신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읽는 독자이자 조언자였고, 오래토록 앓던 귓병을 낳게 하려 여러 방법을 찾는 등 다방면으로 그녀를 위해 노력했죠. 장하일의 강경애에 대한 애정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나타납니다. 해방직후 강경애의 작품을 간직하고 있다가 1949년 『인간문제』를 단행본으로 발행했고 이로인해 남북 문단에서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강경애가 남긴 소설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씌여진『파금』이라는 소설을 제외하고는 모두 간도에서 쓰여졌습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어머니와 딸』, 간도를 잠시 떠나며 쓴『간도를 등지면서』,『간도여 잘있거라』,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다른『인간문제』, 빈궁의 경지를 그려낸 『지하촌』, 간도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소금』까지 모두 간도로 시작해서 간도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시기는 1931년부터 1939년까지 겨우 8년이었다. 최서해, 안수길도 간도의 체험을 문학적 기반으로 삼았지만, 여성작가로는 강경애가 유일 했지요.

간도는 강경애가 장하일과 이주해서 살던 곳으로 당시 항일투쟁의 중심지역이었다. 그녀는 생생하게 항일투쟁의 모든 순간을 보았고 그 안에서 자본주의와 노동자의 대립, 항일무장 조직의 어두운 단면 등을 몸소 체험했고 이 모든 것이 소설의 밑바탕이 되어 여러 작품에 녹아들게 되었죠.

그 시절 서울은 문학의 중심지였지만, 강경애는 조금 달랐습니다. 서울이 아닌 간도에서 문학적 자양분을 모두 얻었고 중앙문학계로의 진출보다는 자신의 진실 된 작품에 매진해왔습니다. 이 부분은 다소 아쉽습니다. 간도라는 변두리에서 작품을 쓰다보니 이름을 그다지 알리지 못했던 것이죠. 북한에서는 1940년대 이름이 알려졌지만, 남한에는 1970년에 이르러서야 강경애라는 소설가를 알게 됐고, 그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죠. 강경애가 남긴 리얼리즘 문학은 대한민국 문학계에서 중요한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1934년 8월23일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 인간문제.
▲1934년 8월23일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 인간문제.

삶에서 시작된 리얼리즘 문학

리얼리즘 소설이란, 주체적 내면세계를 가진 주인공이 당당히 환경에 맞서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는 소설 종류입니다. 한국 문학에서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부터 리얼리즘 문학이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강경애의 대표작품으로 거론되는『인간문제』는 근대소설사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로 꼽힙니다. 소작인의 딸로 지주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방적공장 여공으로 살다 결국 폐병으로 죽는 선비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선비는 조선의 대표적인 농민의 딸인데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 시대의 친일 지주와 소작농민, 친일 자본가와 하수인 공장 감독과 공장 노동자들의 고뇌와 모순을 엿볼 수 있습니다.

1934년 쓴『소금』은 당연히 간도를 배경으로 중국인 지주와 일본 경찰에게 학대받는 조선 민중의 비참한 처지를 보여줍니다. 불합리한 사회를 뒤엎고자 총을 들고 일어선 항일유격대의 모습을 담아 민중의 분노를 세세하게 표현해 냈죠.

세상을 떠난 뒤에야 강경애 작가의 가치가 비로소 인정됐습니다. 간도 용정 비암산에는 강경애 문학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문학비에는 “최하층 인민들의 생활을 동정하고 올곧은 문학정신으로 간악한 일제와 그 치하의 비정과 비리에 저항하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아름다운 문학 형상들을 창조한 우리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강경애는 소설가로서는 불행했습니다. 자신의 글이 실린 단행본 하나 갖질 못했기 때문이죠. 일반 동네사람들처럼 물을 긷고 빨래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강경애의 모습을 보며 작가일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1930년 여성작가로 산다는 것은

“강경애는 식민지 시대 작가로서는 드물게 하층 여성의 목소리를 끌어올린 여성들의 대변자다.”

▲1934년 7월 동아일보에 신작연재소설 예고기사로 실린 강경애 모습. 오른쪽이 강경애 소설가.
▲1934년 7월 동아일보에 신작연재소설 예고기사로 실린 강경애 모습. 오른쪽이 강경애 소설가.

학계는 그녀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식민지 시대의 작가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자주적인 노력을 기울인 작가로 말이죠. 작가의 삶은 현재도 어렵지만 1930년 당시에는 더욱 어려웠겠죠. 또 여성이라는 성 차별적인 시선 또한 강경애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고, 극한의 궁핍도 경험했고, 식민지 간도라는 척박한 환경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들이 많았죠. 또 그 시대의 여성이 자아성찰을 거쳐 습작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놀랍습니다. 민족적, 계급적, 성적 억압을 대변했고 모든 상황을 극복해 낸 강경애 소설가.

1939년 강경애는 아픈 몸을 이끌고 고향인 장연으로 돌아옵니다. 이곳에서 짧은 수필 두편을 쓴 후 펜을 내려놓습니다. 귀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1944년 4월26일 숨을 거둡니다. 젊은 유능했던 작가의 삶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강경애는 다시금 태어났습니다. 현대의 문학계에서 강경애의 리얼리즘 문학이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죠.

어려운 시대에 보석같은 작가가 있었음을 우리는 이제야 깨닫게 됐습니다. 4월26일 강경애 작가를 추모하며, 아주 먼 간도의 옛시간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봅니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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