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인의 세상만사]나의 유관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임효인의 세상만사]나의 유관순

  • 승인 2018-05-15 16:51
  • 신문게재 2018-05-16 21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p
"고향이 어디예요?" "저 병천이요, 천안 병천." "아, 병천순대요?" "네, 순대도 유명하고 유관순 언니가 만세운동한 아우내장터 병천이요."('아우내'는 한자 아우를 병(竝)과 내 천(川)을 붙인 '병천'의 순우리말 지명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런 식의 대화를 수도 없이 나눴다. 내가 자란 곳을 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나의 '소울푸드' 순대를 언급하는 것도 좋지만 나의 유관순 언니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꼭 유관순 언니를 덧붙인다.

'매봉산 봉우리에 동 트는 태양, 온 누리에 선열의 얼 찬란도하다' 아직도 또렷한 모교 병천초 교가(校歌) 도입부다. 이 매봉산 자락 아래, 유관순 언니가 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가을이면 유관순 사우로 소풍을 갔다. 넓은 마당에 앉아 유관순 언니를 떠올리며 백일장대회를 치렀다. 18살의 나이로 눈 감은 언니의 희생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고 꼭꼭 강조했다.

내 성장은 유관순 언니와 함께였다. 주기적으로 언니의 정신을 떠올리는 일이 매년 반복됐다. 3.1절을 앞둔 2월 마지막 날엔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봉화제'에 참가했다. 매주 주말 순대를 먹겠다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병천을 찾았다. 각종 부대행사가 열렸고, 우리 동네 특산품과 먹거리를 마음껏 먹었다. 날이 어둑해지면 횃불을 들고 유관순 열사 사적지부터 아우내장터까지 1.3㎞가량을 행진했다. 나의 10대는 물론 대학생이 돼서도 구제역이나 AI로 행사가 취소됐던 적을 빼고는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거의 모든 유년을 병천에서 지낸 나에게 언니는 참 특별하다. 가족, 친구와의 산책길은 유관순 생가로 향했고, 2003년 열사 탄생 100주년에 맞춰 건립된 기념관을 수십 번도 더 드나들었다. 매번 그의 순국이 마음 아팠고, 그 용기와 기상에 감탄했다.

대전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신채호 생가에 간 적이 있다. 병천에 있는 유관순 생가가 오버랩되면서 '우리 동네에도 이런 게 있는데'란 생각에 괜히 으쓱했다. 두 열사 모두 희생의 경중을 따질 수 없는 훌륭한 선대다. 온몸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이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하는 게 나 뿐만은 아닐 거다.

고향을 떠나온 최근, 유관순 언니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어쩌면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언니처럼 세상을 위해 쓰이고 싶었던 이유인 그 이름이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의 공으로 1962년 건국훈장 중 3등급인 독립장을 인정받았다. 당시 시인 윤동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등 806명이 같은 서훈 3등급에 이름을 올렸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있는 반면 이중엔 친일 언론인도 포함돼 있다. 유관순 언니가 조국을 부르짖던 나이보다 훌쩍 커버린 나는 감옥에서 쓰러진 언니를 생각한다. 미처 꽃피우지 못한 언니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다. 늦었지만, 열사의 정신을 드높이는 이 움직임에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국립한밭대 연구자 11명, 세계 상위 2% 과학자 선정
  2. 이번엔 대동교… 트램 공사로 15일부터 왕복 2차로 축소
  3. 대전 배추값은 낮아졌지만 속재료는 인상... 김장철 앞 부담 늘어날까
  4. 천안지역 택시 운수종사자 조합, 택시통합·행복콜 폐지 성토...'사회적 합의 우선'
  5. 청주 원도심 다시 잇는다… 공간·상권·생활에 새 활력 대혁신
  1. 대전 태평동5구역 재건축 사업 난항… 시공사 선정 문제에 조합 내부 갈등까지
  2. 허태정號 기조실장 '믿을 맨' 오나 친정체제 강화
  3. "부지 매입비 아끼고 주차난 푼다"…인천시, 공원 지하에 주차장 800면 조성
  4. 멈춰 선 충남교육공무직 순환전보… 법적 판단이 분수령
  5. 서산 온가족축제, 추억의 교복부터 맷돌커피까지, 10월 31일 '레트로 여행' 떠난다

헤드라인 뉴스


세종 2031년까지 중앙행정기관 44곳 이전… 행정수도 발돋움

세종 2031년까지 중앙행정기관 44곳 이전… 행정수도 발돋움

정부가 2031년까지 수도권 소재 중앙행정기관 등 44개 기관의 세종 이전을 추진하면서, 세종시는 국가 균형발전을 견인하는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도약할 중대한 전기를 맞게 됐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종식하고 세종시를 실질적인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사실상 모든 중앙부처를 집결시키겠단 의지다. 정부는 임시 청사를 활용하는 27개 기관을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이전하고, 나머지 17개 기관은 2031년까지 독립 청사를 신축 후 순차적으로 이전할 방침이다. 특히 정부가 '행복도시법'상 이전 제외기관으로 규정된 외교·통일·국방·법..

이혼 후 분할연금 안주려고 국민연금 반환일시금 제도 악용
이혼 후 분할연금 안주려고 국민연금 반환일시금 제도 악용

이혼한 배우자에게 국민연금을 나눠주지 않으려고 국민연금 반환일시금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해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대전 중구)이 국민연금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2년 이후 이혼한 시점에 상대 배우자로부터 분할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신청했음에도 상대 배우자가 연금 대신 반환일시금을 선택해 분할연금을 받지 못한 배우자가 22명으로 집계됐다. 이혼 당시 '분할연금 신청' 여부와 무관하게 상대 배우자가 4억 8783만원의 분할일시금을 받아가면서 22명의 국민연금 수급권이..

충남경찰,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운영한 34명 검거… 주요 가담자 13명 구속
충남경찰,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운영한 34명 검거… 주요 가담자 13명 구속

충남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가 해외 서버에서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한 34명을 검거하고 주요 가담자 13명에 대해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 수사결과, 총책 A씨(40대)는 2023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3개의 도박사이트를 개설 후 프로그램 관리, 범죄수익 관리, 콜센터 등을 운영해 회원들로부터 약 568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자금세탁책 2명과 공모해 103억 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상품권 거래로 가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회피하기 위해 핵심 조직원을 IT 전문가로 구성하고 서버 유지 관리를 직접..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 어르신들의 신중한 한수

  • 기온 뚝…‘겉옷 챙기세요’ 기온 뚝…‘겉옷 챙기세요’

  • 구직자들로 북적이는 대전 일자리박람회 구직자들로 북적이는 대전 일자리박람회

  • 대덕구의회 파행에 뿔난 주민과 단식 돌입한 김찬술 구청장 대덕구의회 파행에 뿔난 주민과 단식 돌입한 김찬술 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