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산수(傘壽)를 넘어 서니

  • 문화
  • 문예공론

[문예공론] 산수(傘壽)를 넘어 서니

채홍정/ 수필가, 시인

  • 승인 2019-08-22 09:2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나온 날들 돌아보면 험난했던 고난의 세월이 떠오른다. 지금은 무심한 세월의 파도에 밀려 주변의 가까운 지인(知人)들은 하나둘씩 불귀(不歸)의 객(客)으로 순서 없이 사라져 가고, 눈은 어두워지고, 귀는 멀어지고, 치아는 성한대가 없고, 다리는 관절로 쑤시고, 어깨도 결리고, 정신은 깜박거리는 황혼 길이 한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세월 용하게 견디며, 자식들 그런대로 길러 부모 노릇 어느 정도 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더 바랄 것도 없다. 남은 세월 후회 없이 살다 가야 할 터인데 하고 생각한다.



나이 80 문턱에 올라와보니, 친구는 나날이 줄어가고, 우편으로 전해오는 것은 광고지뿐이고, 걸려오는 전화는 "전화기를 바꾸라 노인보험에 들라"라는 등 알아듣기도 힘든 아가씨의 속사포가 귓전을 울려주니 정작 기다리는 친구나 지인의 안부전화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망구(望九)의 길에는 여기저기 迷宮(미궁)의 陷井(함정)이 놓여있으니, 언제나 빠질 수 있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앞길이 남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훌쩍 떠날 적에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빈손이요. 동행해 줄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길이 보인다.

"당신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는 소중한 친구 있으면 자주 만나 같이 걸으면서 담소하고, 때가 되면 소찬에 소주 한 잔 걸치며, 보내는 붉게 물든 황혼의 인생도 아름답지 아니한가? 남은 인생 건강하게 남의 도움 없이 살다 가야할 터인데.... ,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병이라도 오랫동안 병시중을 하노라면, 소홀히 대할 적이 있게 된다는 말이다. 요즘 회자(膾炙)되는 말 중에 100세 시대라는 말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그 말은 보험회사의 광고용 단어로 인용하는 것은 몰라도 우리네 80대들에게는 그리 달가운 단어는 아니다. 우리나라 2019년 노인인구가 14.4%가 되어 '고령사회'로 진입되어 있을 것이 사실이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일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 더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개인과 가족, 국가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특히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의료비 지출에 대한 국가적 부담도 계속 가중되고 있다. 의료비 절감의 해법은 바로 건강하게 병치례 없이 사는 것인데, 실제 통계에 의하면, 100세까지 사는 노인은 0.2-0.4%정도이다 서울대학 합격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통계수치이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운동을 하고 잘 먹고, 잘 지낸다고 해서 100세까지 사는 것은 아니다. 사는 동안 열심히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오래 살려고 해도 몹쓸 병에 걸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 돈이 많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사는 동안 자기 몸을 잘 관리하면, 몇 해 더 사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란 잘 사는 만큼 죽는 것도 남 보기 싫지 않게 마무리를 깨끗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考終命)도 오복의 하나이다.

얼마 전, 경북 청송에 사는 88세(米壽)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는 83세의 아내를 승용차에 태우고 마을 저수지에 차를 몰아 동반 자살을 했다. 그분은 경북 최대의 사과농사에, 자식도 같이 살았다. 그런 그가 왜, 자살을 했을까? 만약 자신이 아내보다 먼저 죽으면, 병든 아내의 수발을 자식에게 맡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남긴 유서를 읽어 봐도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슬픈 결심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미안하다. 너무 힘이 든다.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야 하니 내가 운전할 수 있을 때 같이 가기로 했다'라고 적었다 (88세에 운전을 하셨다니 본인 건강은 비교적 양호했든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식과 손자들 이름을 적으며 작별 인사를 남겼다. 이 할아버지는 자살만이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길이라고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런 결심을 하기엔 하루, 이틀 생각하고 내린 판단은 아닐 것이다. 노부부의 비극을 뉴스에 들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결코 남의 일로만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6월 어느 날 쟁기봉회(복수동 문인 모임)가 있어 걸어가자니 시간에 쫓길 것 같아 자전거로 약 800m 지나니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들고 내리막을 달리는데, 앞에서 우산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소나기를 노다지 맞으며, 고개를 푹 숙인 체 오는 이를 피하다가 그만 나뒹굴고 말았다. 우산은 산산조각에, 자전거는 저만치 나가떨어지고, 이마엔 피가 쉴 사이 없이 소낙비와 함께 흘러 주체치 못해 황급히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화장실로 들어가 이마에 흐르는 피를 응급 지혈시키며 보니, 몰골이 가관이었다. 왼쪽 팔과 다리가 피투성이에 상처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일로 하여 3일을 방 안에서 꼼짝 않고 있어야 했다. 뼈엔 아무 이상 없는 것 같은데,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이 아팠다. 만약에 어느 부위가 절골되었거나, 혹여 소나기를 노다지 맞으며 오던 이가 나로 하여 다쳤다면, 생각만 해도 큼직한 일이다. 자식에게 큰 짐이 된다는 생각에, 살 만큼 살았으니 더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식에게 힘든 일을 맡겨주는 것도 비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다잡고 털고 일어나 3일 만에 병원에 갔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일에도 상심하고, 눈물이 많아지고,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는 날까지 마음의 평정과 몸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부분은 천명에 맡기는 것이 이 나이에 할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복(五福)

1,수(壽) : 오래 사는 것

2,부(富) : 부자(富者)가 되는 것

3,강녕(康寧) : 건강한 것, 즉, 강(康)은 육체적 건강, 녕(寧) : 정신적 건강,

4,유호덕(攸好德) : 훌륭한 덕을 닦는 것,

5,고종명(考終命) : 천수(天壽)를 다 하는 것으로, 질병 없이 살다가 편안하게 일생을 마치는 것.



채홍정/ 수필가, 시인

채홍정
필자 채홍정(수필가, 시인)씨는 '익은말 큰사전'의 저자이다.

익은 말 큰사전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순 우리말 어휘를 엮어, 공무원 채용 응시생, 대입 준비생, 문인, 작가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오늘의 문학사 간, 정가 3만5000원, 전국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조국혁신당 세종시당, '내홍' 뚫고 정상화 시동
  2. [이차전지 선도도시 대전] ②민테크"배터리 건강검진은 우리가 최고"
  3. 대전시 2026년 정부예산 4조 8006억원 확보...전년대비 7.8% 증가
  4. 대전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공유재산 임대료 60% 경감
  5. [기고]농업의 미래를 설계할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1. [문화人칼럼] 쵸코
  2. [대전문학 아카이브] 90-대전의 대표적 여성문인 김호연재
  3. 농식품부, 2025 성과는...혁신으로 농업·농촌의 미래 연다
  4. [최재헌의 세상읽기]6개월 남은 충남지사 선거
  5. 금강수목원 국유화 무산?… 민간 매각 '특혜' 의혹

헤드라인 뉴스


[기획취재]농산물 유통과 전통주의 미래, 일본서 엿보다-2

[기획취재]농산물 유통과 전통주의 미래, 일본서 엿보다-2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동해를 사이에 둔 지리적 특징으로 음식과 문화 등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 모두 기후 위기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 등락과 함께 안정적 먹거리 공급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다. 이에 유통시스템 개편을 통한 국가적 공동 전략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도일보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주관한 4박 5일간의 일본 현장 취재를 통해 현지 농산물 유통 전략을 살펴보고, 한국 전통주의 새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의 정가 거래..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2년 7월 민선 4기 세종시 출범 이후 3년 5개월 간 어떤 성과가 수면 위에 올라왔을까. 최민호 세종시장이 4일 오전 10시 보람동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수도를 넘어 미래수도로 나아가는 '시정 4기 성과'를 설명했다. 여기에 2026년 1조 7000억 원 규모로 확정된 정부 예산안 항목들도 함께 담았다. ▲2026년 행정수도 원년, 지난 4년간 어떤 흐름이 이어지고 있나=시정 4기 들어 행정수도는 2022년 국회 세종의사당 기본계획 확정 및 대통령 제2집무실 법안, 2023년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국..

교육부, 비수도권 대학 육성 위해 내년 3조 원 투입
교육부, 비수도권 대학 육성 위해 내년 3조 원 투입

교육부가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역대 육성을 위해 내년 3조 1448억 원을 투입한다. 일명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인 9개 거점국립대 경쟁력 강화를 위해 8855억 원을 투자하며, 사립대와 전문대의 학과 구조 혁신과 특성화를 위해 1190억 원을 신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8개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이 추가로 편입되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이하 라이즈)'도 2조 1403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3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내년도 교육부 소관 예산·기금운용계획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됐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

  • 강추위에 맞선 출근길 강추위에 맞선 출근길

  • 고사리 손으로 ‘쏙’…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고사리 손으로 ‘쏙’…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