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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0 항쟁 국민대회
서울 종로3가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학생들이 거리에 드러누워 농성 하고 있다. 1987.6.18/출처=연합 DB |
약관 스물여섯에 영업소장이 되었다. 그건 남들보다 두 배는 빠른 부지런과 열심의 행보가 담보된 덕분이었다. 소장이 되니 십여 명의 직원을 관리하게 되었다. 헌데 십인십색이랬다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영업사원들은 기본급이 없고 판매수당만으로 생활해야 했기에 그 성정들이 마치 사막처럼 메마르고 거칠었다. 그래서 툭하면 퇴근길에 술과 밥을 사주며 토닥토닥 달래는 것도 주임무였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회사가 위치했던 중구 선화동의 이른바 먹자골목엔 두부 두루치기로 유명한 집이 있었다. 대전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외지 사람들 중엔 충남 금산과 충북 옥천의 명물음식인 ‘도리뱅뱅’을 모르듯 “근데 두부 두루치기가 뭐야?”라며 궁금해 할 수도 있기에 밝힌다.
두부 두루치기는 두부를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어 함께 볶은 요리다. 대전을 대표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 이 음식은 대전여중 앞의 ‘진로집’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내가 주로 먹은 두부 두루치기엔 고기가 안 들어가서 그 값도 아주 착했다.
눈물이 나도록 매운 그 음식에 삶은 면을 비벼서 먹으면 배가 터질 듯한 포만감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한데 술안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고분고분했던 두부 두루치기를 앞에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건 지난 1987년 6월이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화 요구시위는 ‘독재타도’와 ‘대통령 직선제’가 이슈가 되면서 들불처럼 번졌다. 솔직히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그래서 두부 두루치기에 소주를 두 병 마신 뒤에야 비로소 중앙로까지 나가서 넥타이부대에 참여하곤 했다.
그게 어느덧 30년이 가까워온다니 실로 감개가 무량하다. 쉬는 어제는 아내와 보문산으로 나들이를 갔다. 그리곤 두부 두루치기에 동동주도 주문하여 마셨다.
‘6월 민주화운동’과 ‘6.10민주항쟁’이라고도 말하는 지난 1987년의 6월 즈음, 딸은 출생한 지 겨우 다섯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따라서 매캐한 최루탄 냄새를 덕지덕지 묻히며 귀가하여 눈부터 씻는 나를 보며 아내는 적이 걱정을 입에 달곤 했다.
“애들도 어린데 당신이 뭐 민주투사라도 되는 양 툭하면 데모를 하고 오는 겨? 그러다가 잡혀가면 얘들은 누가 기를 껴!” “......” 아내의 이유 있는 지청구에 다음부턴 슬그머니 넥타이부대에서 이탈했다.
여하간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도 불리는 콩으로 만든 음식인 두부는 소문난 건강식품이다. 각종의 신선한 채소와 다소 거친 나물까지를 넣고 맛나게 보리밥까지 먹은 아내와 달리 치아가 부실한 나는 고작(?) 두부 두루치기에 동동주로만 배를 채우고 보문산을 내려왔다.
6.10 민주항쟁 당시 갓난아기였던 딸은 지난봄에 결혼하였다. 반면 부드러운 두부요리가 더욱 친근해진 나는 명실상부한 늙은이가 되었다. 세월처럼 빠른 게 또 없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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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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