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자성어]9. 면상재회(面像再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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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자성어]9. 면상재회(面像再會)

어떤 트라우마

  • 승인 2016-06-15 13:23
  • 홍경석홍경석
▲ 게티 이미지 뱅크
▲ 게티 이미지 뱅크


“그대는 오늘밤도 내게 올 순 없겠죠~ 목메어 애타게 불러도 대답 없는 그대여~ 못 다한 이야기는 눈물이 되겠지요~ 나만을 사랑했다는 말 바람결에 남았어요~” 가수 최진희가 히트시킨 ‘천상재회’라는 노래의 가사 초입이다.

얼마 전 절친한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다. 그래서 상갓집에 갔는데 상주인 그 친구를 보는 순간 눈물이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어찌나 오열했는지 그 친구마저 당혹해하는 분위기였으니 말 다 했다. 이후 상을 치른 그 친구가 고맙다며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샀다.

“그날 내가 푼수처럼 울어서 미안했다.”라는 나의 고백에 친구는 오히려 고마웠다며 술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아녀, 너처럼 마치 내 일인 양 울어 주는 친구가 세상에 어디 있니? 그나저나 그날도 만취했던데 집엔 잘 갔니?”

“잘 갔으니 오늘도 자네를 이렇게 보는 것 아니겠나.” 나는 상가(喪家)에 가면 곧잘 운다. 특히나 부모님을 여읜 친구의 경우라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까지 그 감정의 기복이 격하다. 아니 땐 굴뚝에선 연기가 나지 않듯 이런 연유엔 다 까닭이 존재한다.

생후 첫 돌 즈음 생모를 잃었다. 따라서 어머니의 얼굴을 전혀 기억할 수 없다. ‘무정한’ 어머니는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셨다. 그래서 홀아버지와의 지독한 가난은 당연한 옵션이었으며 중학교 진학마저 사치로 치부되었다.

극빈(極貧)의 정점일 적 연탄마저 떨어져서 냉방이 된 골방에선 문풍지 사이로 들어온 찬바람이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모정(母情)마저 덩달아 날아가게 만들었다. 그처럼 가슴 시린 곡절이 있는 터임에 부모님을 여읜 친구와 지인을 보는 나의 심정은 당연히 복잡다단(複雜多端)할 수밖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어떤 일이든 적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도 일찍 여읜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일종의 어떤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엔 5월 8일이 지금과 같은 어버이날이 아니라 ‘어머니날’이었다.

그래서 급우들의 어머니들께서 모두 교실까지 들어오셨는데 하나같이 ‘꽃 옷’으로 치장을 하셨음은 물론이다. “와~ 여기가 우리 아들 공부하는 교실이여!” “우리 딸 선생님이 저분이시구만, 안녕하셔유?”

그리곤 집에서 챙겨온 달걀꾸러미 등 정성이 가득한 선물을 교탁에 가득 싸놓곤 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나의 심기는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와 학교 뒷산에 올라가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이나 관조하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근데 그놈의 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 가는지 당최 모를 일이었다. 최진희의 노래는 이어진다. “끊을 수 없는 그대와 나의 인연을 운명이라 생각 했죠~ 가슴에 묻은 추억의 작은 조각들 되돌아 회상하면서~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그대를 다시 만나면~ 세상에서 못 다했던 그 사랑을 영원히 함께 할래요......”

2012년에 개봉된 영화 <범죄소년>에서 서영주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 이정현을 만나서 이렇게 절규한다. “왜 한 번도 날 찾지 않았어요?”

사람은 영원히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존재이며 그런 감정을 지니다 저승으로 떠나는 나그네다. 면상(免喪)은 상중(喪中)을 지나면 상복(喪服)을 벗으면 된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그리는 아들의 심상(心傷)은 평생을 가는 법이다.

‘천상재회’가 아니라 또렷한 면상재회(面像再會)로 어머니를 꼭 보고픈 까닭이다. 비록 저승이 될지라도 반드시.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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