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자성어]30. 은퇴열차(隱退列車)

  • 문화
  • 인생 사자성어

[인생은 사자성어]30. 은퇴열차(隱退列車)

휴식 같은 아내라면

  • 승인 2016-07-06 09:28
  • 홍경석홍경석
▲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중 한 장면
▲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중 한 장면

지금의 직장으로 취업하기 전 몇 달 간 놀고 먹은 적이 있었다. 이른바 ‘실업자’가 된 때문이었다. 실업자(失業者)는 실업가(實業家)와 달라서 수중에 돈이 없다. 따라서 방금 밥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쉬 배가 고파온다.

뿐만 아니라 마누라 눈치가 보여서 집에 있기가 무섭다. 그래서 아침밥을 먹자마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기 일쑤였다. 그래서 비로소 알았는데 그건 바로 내가 사는 이곳 대전엔 산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등산은 원 없이 해봤는데 문제는 하산하여 집에 돌아올 때였다. 주머니에선 여전히 시베리아 찬바람만 불고 있었다. 때문에 하다못해 마누라 먹으라고 시장서 통닭 한 마리조차 튀겨다 줄 수 없었다.

“밥은 먹고 온 겨?” 빌어먹을~ 실업자에게 누가 밥을 주냐? 그렇다고 이 나이에 무료급식소를 찾아 공밥이라도 알아서 먹고 오라는 겨, 뭐여? 코가 쑥 빠져서 아내가 차려주는 대로 군말 없이 저녁을 먹었지만 그야말로 바늘의 눈칫밥이었다.

그리곤 곧장 골방에 들어가 죄수처럼 쓰러져 잤다. 따라서 그건 휴식(休息)이 아니라 차라리 고문(拷問)이었다. 불기분방(不羈奔放)의 빛나던 청춘과 호랑이처럼 호령했던 직장에서의 으름장 역시 진즉 흘러간 구름이었다.

설상가상 머리는 빠지고 이빨은 흔들리는 중년의 고독은 은퇴열차가 저만치서 다가오는 환영(幻影)까지를 거부할 수 없게 옥죄었다. 얼마 전 지인과 술을 나눴는데 조만간 정년퇴직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의 황혼이혼 급증 현상을 화제에 올렸다.

심지어는 자신이 정년퇴직한 날 부인에게서 이혼서류를 받은 남편도 있었더라는 지인의 흥분에 남의 일 같지 않아 웃음도 안 나왔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들이 탑승할 은퇴열차가 도착해 있는 즈음이다.

지금 그 열차에 올라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간 늦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음은 물론이다. “처자식하고 먹고살려고 앞만 보며 달려왔더니 어느새 정년입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악기라도 하나 배워둘 것을......”

지인이 한탄하듯 소주를 입에 쏟아 부었다. 베이버부머는 사실 가장 가련한 대상이다. 위로는 부모님께 무조건(!) 효도를 다해야 했다. 자녀는 최소한 대학까지 가르쳐야만 욕을 안 먹었다.

일부의 경우 아들 딸 결혼시켜 집장만까지 해 주는 경우엔 정작 자신의 노후설계는 허름한 청사진조차 만들 수 없다. 이런 판국이라면 휴식이란 것도 실은 가당찮은 얘기렷다.

그래서 말인데 설령 정년을 맞았든, 실직을 했을지라도 가요 ‘휴식 같은 친구’가 아니라 진정 ‘휴식 같은 아내’와 가족이라면 오죽이나 좋을까!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5.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1.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2.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3.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4.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5. 대전연구원 신임 원장에 최진혁 충남대 명예교수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