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중 한 장면 |
지금의 직장으로 취업하기 전 몇 달 간 놀고 먹은 적이 있었다. 이른바 ‘실업자’가 된 때문이었다. 실업자(失業者)는 실업가(實業家)와 달라서 수중에 돈이 없다. 따라서 방금 밥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쉬 배가 고파온다.
뿐만 아니라 마누라 눈치가 보여서 집에 있기가 무섭다. 그래서 아침밥을 먹자마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기 일쑤였다. 그래서 비로소 알았는데 그건 바로 내가 사는 이곳 대전엔 산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등산은 원 없이 해봤는데 문제는 하산하여 집에 돌아올 때였다. 주머니에선 여전히 시베리아 찬바람만 불고 있었다. 때문에 하다못해 마누라 먹으라고 시장서 통닭 한 마리조차 튀겨다 줄 수 없었다.
“밥은 먹고 온 겨?” 빌어먹을~ 실업자에게 누가 밥을 주냐? 그렇다고 이 나이에 무료급식소를 찾아 공밥이라도 알아서 먹고 오라는 겨, 뭐여? 코가 쑥 빠져서 아내가 차려주는 대로 군말 없이 저녁을 먹었지만 그야말로 바늘의 눈칫밥이었다.
그리곤 곧장 골방에 들어가 죄수처럼 쓰러져 잤다. 따라서 그건 휴식(休息)이 아니라 차라리 고문(拷問)이었다. 불기분방(不羈奔放)의 빛나던 청춘과 호랑이처럼 호령했던 직장에서의 으름장 역시 진즉 흘러간 구름이었다.
설상가상 머리는 빠지고 이빨은 흔들리는 중년의 고독은 은퇴열차가 저만치서 다가오는 환영(幻影)까지를 거부할 수 없게 옥죄었다. 얼마 전 지인과 술을 나눴는데 조만간 정년퇴직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의 황혼이혼 급증 현상을 화제에 올렸다.
심지어는 자신이 정년퇴직한 날 부인에게서 이혼서류를 받은 남편도 있었더라는 지인의 흥분에 남의 일 같지 않아 웃음도 안 나왔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들이 탑승할 은퇴열차가 도착해 있는 즈음이다.
지금 그 열차에 올라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간 늦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음은 물론이다. “처자식하고 먹고살려고 앞만 보며 달려왔더니 어느새 정년입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악기라도 하나 배워둘 것을......”
지인이 한탄하듯 소주를 입에 쏟아 부었다. 베이버부머는 사실 가장 가련한 대상이다. 위로는 부모님께 무조건(!) 효도를 다해야 했다. 자녀는 최소한 대학까지 가르쳐야만 욕을 안 먹었다.
일부의 경우 아들 딸 결혼시켜 집장만까지 해 주는 경우엔 정작 자신의 노후설계는 허름한 청사진조차 만들 수 없다. 이런 판국이라면 휴식이란 것도 실은 가당찮은 얘기렷다.
그래서 말인데 설령 정년을 맞았든, 실직을 했을지라도 가요 ‘휴식 같은 친구’가 아니라 진정 ‘휴식 같은 아내’와 가족이라면 오죽이나 좋을까!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 |
![]()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홍경석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https://dn.joongdo.co.kr/mnt/webdata/content/2025y/12m/15d/118_20251215010013024000545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