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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연합 DB |
장마철이다. 우리나라의 장마는 대체로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이어진다. 국지적으로 많은 비를 뿌리는 장마철엔 각종의 재난과 사건 사고도 빈번하다. 빗길의 교통사고 다발과 느슨한 축대의 붕괴 외에도 논과 밭의 작물 손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얼마 전 전북 남원에선 다슬기를 채취하던 할머니들이 봉변을 당하셨단다. 장맛비에 불어난 물에 휩쓸려 내려가다 두 분은 어찌어찌 인근 풀숲으로 대피해 구조됐지만 한 할머니는 의식이 없다는 뉴스에 가슴이 덜컹하였다.
‘다슬기도 사람을 잡네!’ 여하튼 장맛비가 후줄근하게 내리기에 퇴근길엔 한 잔의 술이 간절했다. 일반적으로 술꾼은 비가 오는 날이면 술이 더 ‘고픈’ 법이다. 한데 술이란 혼자서 마시면 맛이 부족하다. 그래서 같은 주당들을 포섭코자 선후배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 다들 선약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단걸음에 뛰어왔을 이들이건만 어제만큼은 쏟아지는 비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는 수 없지 뭐. 대전역에서 지하철을 하차한 뒤 인근의 중앙시장으로 들어섰다.
없는 것 없이 골고루 다 있는 이 시장은 먹거리의 값 또한 아주 착하여 늘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자주 가는 치킨 전문점을 찾았다. 마침맞게 자리가 하나 비었기에 차고앉았다. 6천 원짜리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전통시장의 시설개선으로 말미암아 차양(遮陽)이 이루어진 까닭에 쏟아지는 빗줄기의 소리가 안 들려 약간은 서운했다. 그렇지만 술맛은 최근 내 속을 끓이는 모 직원의 경거망동에 대한 분노감을 어느 정도 희석시키는 모다기비(한꺼번에 쏟아지는 비)로 작용했다.
평소 사람은 시종여일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일종의 종교를 지니고 있다. 이 외에도 의리와 예의, 그리고 신용이 없는 사람은 정말이지 딱 질색이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건강이 안 좋아져 병원에 일정기간 입원하고 나온 뒤론 그야말로 180도로 바뀐 동료직원이 있다.
개맹이(똘똘한 기운이나 정신)마저 상실한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다들 머리를 흔들며 하루빨리 자진해서 그만 두길 학수고대하는 분위기다. 불땔꾼 같은 그의 못된 성정으로 인해 오죽했으면 그를 발탁한 인사담당자에게 이런 불만까지를 토로했을까! “대체 왜 그런 사람을 뽑아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새삼스런 즈음입니다!” 술잔을 기울이노라니 문득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셈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눈딱부리처럼 억하심정이 팽배했던 아까와는 사뭇 달리 내 맘은 우주여심(雨酒悆心)의 작용으로 인해 많이 느슨해져 있었다.
역시 술의 힘은 무시할 게 못 되었다. 술의 힘을 빌리길 잘 했지 싶었다. 장대비 역시 어느새 먼지잼 정도로 부드러워져 있었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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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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