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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 한 장면 |
장마철이다. 그래서 비가 무시로 내린다. 비가 내리면 기분이 좋다. 비는 만물의 생장(生長) 을 촉진시키는 마술사다. 쓰레기와 먼지로 뒤범벅이 돼 있던 도시를 깨끗이 청소까지 해 준다.
산불 발화 감시로 노심초사 중인 산림과 관계된 공무원,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분들 또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그제야 비로소 안심을 한다던가? 비를 좋아하는 본질적 원인은 비가 참으로 고마운 때문이다.
즉 어떤 의리 차원의 ‘안갚음’이란 주장이다. ‘안갚음’은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을 뜻하는 ‘앙갚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도리어 이는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것’이란 의미다. 까마귀 새끼는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이를 반포지효(反哺之孝)라 하여 효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이렇듯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것을 ‘안갚음’이라고 한다. 물론 내리는 비를 어버이의 은혜처럼 받아들인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정서적으로만 그러한 류(類)의 감사함을 느낀다는 얘기다.
바가 쏟아지면 당연히 우산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우산을 준비 못 한 사람은 우산을 구입해야 된다. 우산장사를 시작한 건 소년가장 시절이다. 구두닦이를 하다가 하늘이 꾸물거리면서 먹장구름이 몰려오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이윽고 비가 쏟아질 듯 싶으면 우산 도매상으로 냅다 달려가 우산을 떼왔다. 당시 우산은 500원이었는데 한 개를 팔면 200원이나 남는 짭짤한 수익이었다. 그렇게 우산을 판 돈으로 병이 드신 홀아버지의 약을 사고 때론 돼지고기도 반근을 썰어 달래서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렇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는 당최 벗어낼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 즈음의 조심누골(彫心鏤骨), 즉 마음에 새겨지고 뼈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몹시 고생(苦生)했던 아픈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어쨌든 비는 아내와 나를 결정적으로 맺어준 또 다른 메신저(messenger)이기도 했다. 아내와 연애를 하던 때는 운이 좋아 근사한 호텔에서 일할 무렵이었다. 그때는 자정이 임박하기 전 그날 객실에 투숙한 사람들의 인적사항이 담긴 숙박계를 관할 파출소까지 가지고 가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녀(아내)를 곧잘 불러냈다. 그리곤 우산을 같이 쓰곤 파출소까지 가서 아내는 밖에서 날 기다렸고 나는 담당 경찰의 도장을 받고 나왔다. “비도 오는데 우동이랑 김밥 먹고 갈까?”
여류한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그랬던 시절이 어느덧 40년에 가깝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산 지 올해로 35년 째. 비록 ‘조심누골’은 아니지만 가난에 허덕이는 나날이다. 따라서 아내를 보기에도 여전히 면목이 안 선다.
그럼에도 가난을 불평하지 않고 여전히 현모양처이니 내가 아무래도 처복(妻福)은 타고 났지 싶다. 또한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에 이어 선업(善業)을 닦으면 그로 말미암아 반드시 좋은 업과(業果)를 받음을 이르는 선인선과(善因善果)도 있다고 했으니 그 역시 신앙처럼 믿고 볼 일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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