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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연합 DB |
여행은 즐겁다. 더욱이 사랑하는 아들이 시켜주는 여행은 그 의미가 자별하다. 얼마 전에도 아들 덕분에 금산군 추부면 소재의 ‘하늘물빛정원’을 찾았다. 각종의 이름 모를, 그러나 진귀한 꽃들도 무성하여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치 별천지와도 같은 분위기에 아내 역시 금세 고무되었다. 그리곤 지참한 스마트폰으로 자신을 찍는 셀카 삼매경에 빠졌다. 표정과 자세를 바꿔가며 흡사 처녀인 양 연신 ‘사진 놀이’를 하던 아내는 이번엔 꽃들을 찍느라 분주했다.
그런 아내에게 다가가 농담을 던졌다. “꽃을 뭣 하러 찍어? 당신이 꽃인데.” 적당한 농담과 칭찬은 긴장을 풀어주고 웃음을 유발한다. 무시로 폭우까지 쏟아지는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꽃이 있다.
바로 능소화(凌霄花)다. 목련(木蓮)은 세상에 꽃을 피울 때 그보다 아름다운 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꽃이 떨어질 때는 목련보다 추한 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최후가 비참하다.
따라서 그게 싫어서 아예 목련을 쳐다도 안 본다는 이까지 있을 정도다. 이에 비하면 능소화는 대단하다! 이 꽃은 과거 조선시대엔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 ‘양반꽃’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양반들의 사랑을 받았던 까닭이 있다.
봄비에도 허무하게 스러지는 대부분의 꽃들과 달리 궂은 장마에도 꿋꿋한 모습이 양반과 선비들의 매서운 절조(節操)와 기개(氣槪)를 닮았다고 본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염집에서 이 꽃을 키우다가 발각이라도 되는 경우엔 관가에 끌려가 곤장까지 맞았다나.
능소화는 꽃말이 ‘명예’이며 또 다른 꽃말은 ‘그리움’이다. 아내와 연애를 하던 시절 우린 늘 그렇게 아네모네(Anemone)라는 찻집에서 만났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배신과 속절 없는 사랑 외에도 기다림과 사랑의 괴로움, 허무한 사랑, 심지어는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사랑의 쓴맛까지를 아우른다고 한다.
가장 많은 꽃말을 가진 꽃인 만큼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엔 서글픈 사연도 많이 담겨있는 꽃이지 싶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결국 아내와 결혼에 골인했고, 아네모네보다는 능소화의 꽃말처럼 명예를 중시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마로 인해 폭우가 쏟아지면 목척교 천변(川邊)이 쉬 범람한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정상을 되찾곤 한다. 이는 대전을 대표하는 대전천과 갑천, 유등천 이렇게 세 개의 하천이 공조(共助)를 이뤄 ‘치수대책’에 만전을 기하는 때문이지 싶다.
고로 올 가을 벼농사에서도 다시금 풍년이 예상되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말인데 입립신고(粒粒辛苦)는 쌀 한 톨 한 톨은 농민이 애써 고생한 결과라는 뜻으로, 곡식(穀食)의 소중함을 이르는 말이다.
쌀은 또한 한자론 미(米)라고 쓰는데 이를 풀면 팔십팔(八十八)이 된다. 즉 씨앗을 뿌려 벼를 거둘 때까지 농부의 손이 무려 여든 여덟 번이나 들어갔다는 의미가 성립된다.
어렸을 때 밥그릇에 밥이라도 남길 양(사실은 너무도 가난했기에 그런 적은 참 드물었지만)이면 할머니께서 “밥 한 톨에는 농부의 손길이 여든 여덟 번이나 들어갔거늘 감히 밥을 남겨!”라며 책망하셨던 음성이 지금껏 귓가에 저장돼 있다.
이에 견주어 팔불출스럽게 아내를 새삼 칭찬코자 한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입립신고’의 그 정성을 모두 쏟아 두 아이를 알토란처럼 성장시킨 주역이 바로 아내인 때문이다, 오늘따라 능소화가 참 곱다. 아내를 닮은 그 꽃이.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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