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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포스터 |
아내는 본시 말이 없었다. 또한 입이 진중하게 무겁기까지 했다. 그 때문이 그녀를 나의 아내로 점찍은 까닭으로도 작용했다. 하지만 결혼하여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사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잔소리의 대부분은 돈을 잘 못 버는 가장인 나에게서 태동한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이번 달 생활비는 또 적자네?”, “애들 등록금 납부가 낼모렌데……” 대저 말이 많은 사람은 피곤하다.
더군다나 중언부언하는 사람은 더 그렇다. 헌데 모르는 사람이나 같아야 치지도외하는 거지 만날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마누라이거늘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여간 아내의 입에서 구시렁구시렁 잔소리가 시작되면 인격미달의 나는 속이 뒤집어져 집을 나가기 일쑤였다.
그리곤 만취하여 귀가해선 닭 잡듯 몰아세우기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그 짓’도 아이들의 머리통이 더욱 굵어지기 시작하자 더는 못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라면서 한국인 특유의 끈기로 꾹 참으며 살아왔다.
그 덕분에 35년째 변함없이 부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작년 말 책을 발간하고 여기저기 언론사와의 인터뷰로 바빴다. 하루는 방송사의 생방송에도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뭘 입고 가야 좋으냐고 물으니 금세 훌륭한 코디네이션 역할을 해줬다.
덕분에 ‘모양이 빠지지 않게’ 방송을 마칠 수 있어 흡족했다. 이는 아내가 오랫동안 백화점에서 주부사원 알바로 옷 장사를 한 덕분이다. 지금 내가 착용하는 의류는 아내가 모두 골라서 사준 옷들이다.
“오늘은 더우니까 초록색 반팔 티셔츠에 바지는 통풍이 잘 되는 파란색으로 입어. 늙을수록 옷도 잘 입어야 된다고.” “……!” 아내의 싫지 않은 잔소리는 평소에도 계속된다. 내 직업이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되는 경비원이다보니 고객과의 대면(對面)이 잦다.
따라서 출근 전엔 매일 목욕을 한다. “머리를 감은 후엔 린스를 하고 아들이 사준 향수(사용치 않는)를 물에 서너 방울 희석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뿌려. 그럼 하루 종일 은은한 향기가 남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로 남을 테니까. 또한 그래야 경비원이라고 무시도 안 당하는 겨.” “……!!”
언젠가 MBN <속풀이 쇼 동치미>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가수 태진아 씨가 기억난다. 그는 “집사람이 만나지 말라고 하면 친구도 안 만나요”라고 했다. 그처럼 아내의 말을 굳게 신뢰하게 된 배경은 필시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경험이 그 발언의 토대였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내 아내가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나 또한 아내의 ‘고마운 잔소리’를 좇으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믿음이 견고한 것만큼은 사실이더라는 것이다. 작년에 야심차게 출간한 책은 풍선처럼 부풀었던 기대완 사뭇 달리 인세는 커녕 빚만 지는 단초가 되었다.
따라서 매달 전전긍긍의 빚쟁이 신세로 코너에 몰려 있다. 부동산 투기 따위의 불로소득으로 부(富)를 급격히 팽창시킨 지인이 있다. 부모를 잘 만나 유산으로 받은 땅값이 폭등하여 졸지에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지인의 얘길 듣자면 내 얼굴 근육은 결코 유연하지 못하다.
그렇긴 하지만 아내는 그마저 우습게 치부하는 어떤 ‘여장부’다. “나는 우리 아이들만 잘 되면 그 어떤 만석꾼조차 안 부러워.” “……!!!” 가부장제(家父長制)는 조선시대와 우리들 아버지 세대 적에나 통용되던 진부한 유물이다.
세월이 변하여 지금은 남편이 아내 말을 잘 들어야 인생도 잘 풀린다는 ‘처하태평(妻下太平)’의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다. 현재 쓰고 있는 2집의 출판만큼은 소위 대박이 나리라는 믿음으로 집필에 가일층 열중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은 ‘처하태평’에 더하여 풍요한 ‘재물태평’까지를 반드시 아내에게 선물하고픈 이 남편의 간절한 바람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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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