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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천상륙작전'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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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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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 |
평소 신문에 게재되는 서평(書評)을 눈여겨 본다. 그리곤 그걸 갈무리하거나, 기억에 넣어두었다가 서점에 가서 책을 산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런 측면에서 방화 ‘인천상륙작전’은 개봉도 하기 전부터 평론가들에게 난도질을 당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발길은 영화관으로 거침없이 역행했다. 남들처럼 피서는 못 갈 망정 영화 한 편쯤 관람하는 여유마저 버린다는 건 얼마나 짜증스런 폭염의 증대일까. 관람한 결과는?
시종일관 흥미진진에 더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지난 역사와 맞물려있다는 인식의 제고에 있어서도 커다란 지렛대로 작용했다. 나와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는 출생 때부터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했다.
내가 어렸을 적 동네에 TV가 있는 집은 과수원과 방앗간을 하는 집뿐이었다는 게 이런 주장의 방증이다. 지금이야 집에서든, 어딜 가면서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는 게 영화다. 하지만 당시엔 지독하게 가난하다보니 영화를 한 편 본다는 것조차 지나친 사치였음은 물론이다.
어느 해던가… 크리스마스에 사탕이라도 얻어먹을 요량에 교회를 찾았다. 그랬더니 예상치도 않았던 영화까지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반공영화이긴 했으되 공짜영화를 본 기쁨은 대단한 만족감의 구름처럼 두둥실했다.
세월은 여류하여 이순(耳順)이 코앞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관람하는 건 연간 2~3편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뭄에 콩 나듯 보는 영화는 생활고 이전에 시간을 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한 편 관람하자면 심사숙고에 더하여 분실된 시간까지를 차용해야만 가능하다.
최근 관람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이런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가까스로 마련한 휴가 개념의 ‘역사 고찰 상륙작전’이었다. 이 영화는 1950년 9월 15일 단행된 인천상륙작전을 다루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소위 ‘국뽕’ 영화라며 혹평에 시달렸다.
힘들게 만들어낸 영화가 관객과 만나기도 전에 그처럼 거센 비판에 직면한다면 관계자들은 그 얼마나 격한 수치심까지를 느꼈을까! 그렇지만 이 영화는 보란 듯이 흥행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마치 관객들의 반란과도 같았다.
더욱이 가히 파죽지세와도 같은 관객몰이는 천만관객 동원 가능이란 메시지까지 보여주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하고 나오던 중 목도한 현상이지만 관객의 대부분은 20~30대의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신조어가 급증하는 시절이다.
그렇다면 ‘국뽕’은 무엇인가? 이는 ‘국가 + 히로뽕’의 합성어라고 한다. 일종의 국수주의와 자국우월주의, 극단적 형태의 민족주의 등으로 자국을 옹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인천상륙작전’은 계산된 반공영화라는 게 일부(특히 평론가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내 의견은 다르다. 실제로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어찌 되었을까! ‘만약’이란 전제를 붙이겠지만 그랬다면 우린 분명 공산화가 되어 지금의 거개 북한주민들처럼 억압으로 점철된, 그리고 통제된 형극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이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 우리나라는 지형학적 특성으로 인해 예부터 주변강대국들의 헤게모니 구축 차원의 잦은 침략과 간섭에 시달려왔다. 이에 대한 굴욕의 역사를 모두 열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조선의 인조 임금이 삼전도(三田渡)에서 당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는 치욕적 항복을 당한 것 역시 그 일부의 ‘굴종 역사’이다. 또한 일제의 40년에 가까운 지배와 수탈은 결국 우리나라를 남과 북으로 단절하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못된 이웃이 애먼 한 가정을 두 동강낸 셈이다. 여하튼 ‘인천상륙작전’에도 나오지만 중공은 인해전술의 엄청난 병력을 동원하여 연합군의 북진에 쐐기를 박는다. 이에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은 중국에 원자탄을 터뜨려 전쟁을 끝내려고까지(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실제론)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제3차세계대전의 확전으로까지 이어질까 두려워 더 이상의 확전을 원하지 않았던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반대하는 바람에 지금의 38선을 경계로 휴전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도 6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우리민족은 여전히 남과 북으로 분단돼 있고, 북한은 호시탐탐 전면전 불사까지를 공언하고 있다. 고로 ‘인천상륙작전’을 호평으로 논하면 우익이고, 혹평하면 좌익이란 이분법적 사고는 대단히 위험하다는 시각이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따름이다. 따라서 인위적 설정이라거나, ‘국뽕’을 주장한 이의 평가처럼 반공주의와 영웅주의를 표방한 맥아더를 위한 헌사라는 따위의 너무 앞서가는 에고이즘 영화평론은 되레 관객모독으로까지 이어진 반발의 흥행 폭발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책도 마찬가지이듯 영화 또한 재미가 없으면 뉘라서 이를 보려 하겠는가? 개인적 견해겠지만 결론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한 평은 안보(安保)의 어떤 교학상장(敎學相長)이었다.
또한 진정한 구국간성(救國干城)은 실제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싸운 맥아더 장군보다는 장학수 대위처럼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었노라는 사실 역시 새로이 발견한 어떤 소득이었다.
**교학상장(敎學相長) 敎 : 가르칠 교, 學 : 배울 학, 相 : 서로 상, 長 : 클 장.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말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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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