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이 산적한 까닭에 타관 객지의 직장에서 휴가조차 없이 근무하는 아들이다. 그런 안타까움을 아내는 자주 찾는 사찰에 가서 정성의 불공을 드리는 것으로 상쇄했단다. “아무튼 당신의 아들 사랑은 지독의 차원의 넘어 차라리 끔찍해.”라고 농을 던졌더니 아내도 금세 화답했다.
“당신은 어때서? 딸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잖아?” 다른 집 부부(부모)도 같겠지만 우리 역시 매한가지다. 아들과 딸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하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금지옥엽이다. 저녁나절 아내와 아들의 통화가 이뤄졌다.
“오늘이 우리 아들 생일인데 미역국이나 먹었니?” “못 먹었지만 엄마의 감사한 말씀을 들으니 먹은 것과 진배없네요. 아무튼 이 더운 날에 저를 낳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엄마~ 감사합니다!”
사람은 이 풍진 세상을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두 개 쯤은 아픈 상처를 숨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의 그 상처 중 하나는 평생토록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있다는 거다. 그건 바로 “엄마”이다.
내가 생후 첫돌 즈음 엄마는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않고 실로 야박하게 떠나셨다. 초등학교 시절, 해마다 5월8일 어머니날(현 어버이날의 전신)이 되면 급우들의 엄마들이 교실까지 들어오셨다.
고운 옷과 화장으로 한껏 멋을 부린 엄마들은 자신의 아들과 딸이 공부하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구경하시며 입이 귀에 가서 걸렸다. 그렇지만 나에겐 그런 엄마가 부재했다. 하늘의 천사가 너무 바쁜 까닭에 대신하여 이 땅에 보낸 사람이 바로 엄마라 했거늘.
그러하기에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나훈아의 히트곡 ‘홍시’의 가사처럼 그렇게 모든 걸 희생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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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 화면 캡쳐 |
겨우 세 살인 조카를 살해한 20대 지적장애 여성으로 인해 한 가정이 풍비박산한 사건이 있었다.
전남 나주경찰서가 지난 8월11일 조카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한 25세 여성은 지난 6월부터 충북 지역 공장에 취직한 친언니를 대신해 조카를 키워왔다고 한다. 따라서 그 아이의 엄마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이 끔찍함은 또한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산궁수진(山窮水盡), 즉 산이 막히고 물줄기가 끊어져 더 갈 길이 없다는 뜻으로, 막다른 경우에까지 이르게 한 엄청난 비극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또 다른 엄마’ 라고 하는 이모에게서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끝내는 숨을 거둔 그 아이는 죽어가면서도 그 얼마나 엄마를 애타게 찾았을까!
정상적인 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기고 돈을 벌어야만 했을 아이의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너무도 속절없이 사라져간 그 아이가 너무나 가련하다.
“이 세상의 엄마들이여~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내 아이는 내가 기릅시다! 돈 이전에 사랑과 칭찬만 있다면 아이는 얼마든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나무니까요.”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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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