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을 물에 적셔 등짝에 걸치니 그나마 약간 낫다. 그런 해괴한 모습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또 피난 가는 겨?” “응, 밥하고 찌개는 있으니까 당신이 챙겨서 먹고 출근(야근)해.”
아내는 다시금 지인들이 일하는 쇼핑몰과 백화점 등지를 찾아 피난(避難), 아니 피서(避暑)를 떠났다. 그곳은 하루 종일 에어컨이 빵빵하게 잘 돌아가는 ‘별천지’인 때문이다. 우리 집이 에어컨조차 하나 없는 궁극의 극빈 삶은 아니다.
거실엔 에어컨이 떡하니 붙어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리 더워도 그걸 절대로 가동치 않는다(다만 아이들이 집에 오는 경우라면 몰라도). 이는 살인적인 전기료 누진세가 두려운 까닭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처럼 에어컨을 바라만 보는 가정이 어디 비단 우리 집 뿐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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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요금 폭탄' 누진제 /연합뉴스 |
가정용 ‘전기료 폭탄’에 대한 국민적 원망이 들불처럼 번지고, 심지어는 내년 대선 때 두고 보자는 누리꾼들의 아우성을 천만다행으로 정부가 수용했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구 당 고작 3만 원의 전기료 인하에 불과한, 그야말로 동족방뇨(凍足放尿)의 임시처방에 그쳤다.
오죽했으면 야당에선 이를 “껌 값이냐?”며 조롱했을까. 이 같이 성의 없는 정부의 처사에 국민들은 또 다시 “우리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냐?”며 강력반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엄연히 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의 핵심은 국민을 적대시하는 게 아니라 진정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것이 기본이다. 정부의 그야말로 ‘참새눈물’만큼의 조족지혈 전기료 찔끔 인하 계획 발표 전엔 산자부 간부들의 잇따른 가정용 전기료 인하 절대 불허 방침이 보도된 바 있었다.
그 뉴스를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점유율 13%에 불과한 가정용 전기료의 인하 요구를 하지만 산자부는 마치 전력난의 주범인 양 몰아붙였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어떤 가렴주구(苛斂誅求) 모습을 보인 공직자의 거만한 모습은 마치 갈라파고스에 혼자 사는 이방인으로까지 보였다.
그러다가 여론에 밀려 대통령이 한 마디 하자 돌변했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부랴부랴 서두는 모습에선 전형적인 복지부동을 보는 듯 하여 더 ‘더웠다’.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거둔 11조 원 이상의 막대한 수익을 재원으로 임직원들의 성과급으로 펑펑 썼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다. 다만 한전의 그러한 ‘과용’은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로 악화된 여론을 풍선처럼 더욱 부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존중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소중한 인권조차 안중에 없는 흡사 절벽강산(絕壁江山) 정부의 가정용 전기료 폭탄 여전 고수 방침은 반드시 철회돼야 옳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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