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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시절의 필자 홍경석씨와 아내 |
여전히 무더운 날씨 탓에 아침부터 짜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처럼 쉬는 날이거늘 하지만 살인적인 전기료 부담 때문에 벽의 에어컨은 또 구경만 해야 할 터였다. 그 생각을 하니 눈앞까지 캄캄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여 맘에 드는 영화를 골랐다. 그리곤 역시나 더워서 기진맥진해 있는 아내를 불렀다. “우리 영화 보러 가자!” 다른 때 같으면 손사래를 쳤을 아낙이건만 워낙에 횡포가 무지막지한 날씨는 그마저 붕괴시켰다.
화장에 고운 매무시까지 마친 아내와 극장에 갔다. 더위를 피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참이나 줄을 섰다가 표를 샀으나 매진됐다며 다음 회 편을 보란다. 그럼 3시간 후에나 보라굽쇼?
하는 수 없지 뭐……. 마침맞게 점심시간과 맞물렸기에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했다. 아내는 검은콩국수를, 나는 돈가스를 주문해 먹었다. 그렇게 외식에 이어 영화까지 보고 오려니 더위마저 한풀 꺾이는 듯 했다.
어제 아내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오는 주말에 자신과 영화를 보자고 했단다. 하여 “난 우리 신랑이랑 벌써 영화 봤어, 뿐인 줄 아니? 근사한 외식도 하고 왔다고!”라며 한껏 자랑까지 했다나. 순간 순진무구한 아내의 순정(純情)이 예나 지금이나 불변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세월처럼 빠른 건 없다더니 아내와 만난 지도 어언 40년이다. 나훈아는 그의 히트곡 <18세 순이>에서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내 사랑 순이는 돌아올 줄’ 모른다며 낙담을 가득 피력한다.
따라서 ‘가야 해. 가야 해. 나는 가야 해, 순이 찾아 가야 해.’라며 자못 절규적(絕叫的)이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 살면서 단 한 번도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았다. 따라서 이 팔불출은 마누라 자랑까지를 일부러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누가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후일담이지만 물론 아내가 ‘가출’이란 음모까지를 도모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들이 갓난아기였을 때 허구한 날 자정이 다 돼서야 만취해 귀가하기 일쑤였다.
돈은 쥐뿔도 안 갖다 주면서 허튼 소리나 해대는가 하면 1년에 한 번도 영화를 안 보여주는 야속한 남편, 아니 차라리 ‘웬수(원수)’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결혼 전엔 귀한 처녀의 자격으로 영화도 곧잘 볼 수 있는 특권을 지닌다.
그러나 일단 결혼이란 성(城)에 갇히게 되면 육아부담과 가정경제 부흥이란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느라 영화 한 편 보기에도 급급하다. 아무튼 여러 가지 불만이 팽배해있던 아내는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나의 등 뒤에 칼을 꽂았다.
“나, 오늘 집 나갈 거야. 그리고 다시는 안 돌아올 테니 그리 알아!” “우리 아들은?” “당신이 키우든 말든 더 이상 내가 알 바 아냐.” 이크, 후덜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그 말이 꼭 맞지 싶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방에 요강을 들여 두고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갔다. 출근은 했으되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였다. 소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점심시간에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곤 다시는 경거망동을 않겠으니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했다.
‘밤잔 원수 없고 날샌 은혜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밤을 자고 나면 원수같이 여기던 감정은 풀리고 날을 새우고 나면 은혜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식어진다는 뜻이다. 즉 은혜나 원한은 시일이 지나면 쉬이 잊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성년이 된 반면 우린 명실상부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조문효도(蚤蚊孝道)란 게 있다. '조(蚤)'는 벼룩이고, '문(蚊)'은 모기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벼룩과 빈대, 모기 등의 곤충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조문효도’란 과거 어렵던 시절(이때는 뿌리는 살충제도 없었기에) 자식들이 연세가 많은 부모님 곁에서 웃통을 벗고 한방에서 잠을 자면서 벼룩이나 모기 같은 벌레들을 자신 쪽으로 유인하는 일종의 ‘몸 보시’를 뜻한다.
즉 부모님이 벌레에 물리지 않고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하는 효도를 말하는 것이다. 세월이 바뀌어 이젠 이렇게까지 하는 효자는 없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를 그리 위하는 조문배려(蚤蚊配慮)라면 또 몰라도.
여하튼 그 ‘조문효도’는 사라졌으되 동영부인(同令夫人)의 나들이 내지 이따금 영화 관람과 외식만큼은 여전히 실천하고 볼 일이란 생각이다. ‘동영부인’은 존경하는 부인과 함께 라는 뜻으로, 초청장 따위에서 부부 동반을 이르는 말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 국화(菊花)는 먹는 꽃이다. 술을 담그고 차로도 마실 수 있다. 또르르 잘 말린 국화는 뜨거운 물속에서 한껏 기지개를 펴면서 꽃잎을 한 장씩 곱게 피워낸다.
향기와 느낌까지 좋은 국화차는 건강에도 그만이다. 혈액순환 개선은 물론이요 위장을 편안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감기와 두통에도 좋다. 그 국화차처럼 고운 아내가 새삼 감사하다.
여보, 우리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그래서 나의 회갑 때는 다시금 ‘동영부인’으로 크루즈 타고 멋진 이국의 구경까지 해보자고.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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