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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 이미지 뱅크 |
애초 내 본명은 외자로 선(善)이였다. 즉 홍선(洪善)이었다. 착하게 살라고 아버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따라서 과거 친구들이나 어르신들께선 나를 “선이야~”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바뀐 건 초등학교 입학을 앞뒀던 내 나이 일곱 살 무렵이지 싶다.
산에서 도를 닦는다는 아버님의 친구분이 우리 집에 오셨다. “네 아들 이름이 뭐냐? 뭐 ‘선’이라고? 단명할 이름이니 이름 당장 바꿔!” 그리곤 즉석에서 바꿔주신 게 바로 지금의 내 이름인 경석(卿碩)이다.
풀이를 하자면 ‘벼슬을 하여 크게 될’ 사람이란 뜻이다. 한데 벼슬은커녕 누구나 얕잡아보는 경비원이나 하고 있으니 그 아저씨는 아마도 땡중, 아니 ‘땡도사’였지 싶다.(^^) 여하간 그 바람에 나의 사촌동생 셋은 나의 선(善)자 돌림에 의거, 지금도 다들 그 선(善)자가 앞에 선다.
모두 선친께서 생전에 작명해 주신 이름들이다. 연초 사찰에 가니 주지스님께서 달력을 주셨다. 그걸 식탁 앞에 걸어두고 늘 보는 터다. 그 달력의 아래에 다음과 같은 좋은 글도 새겨져 있다. - “선을 심으면 복을 얻고 악을 심으면 재앙을 얻는다.” -
그러니까 선복악재(善福惡災)란 얘기다. 지난 봄 결혼식을 앞두고 딸과 예비사위도 함께 숙부님 댁을 찾았다. 우리 집안에선 유일무이한 손자사위를 보시는 때문이었는지 숙부님의 기쁨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듯 보였다. 예상대로 숙부님의 칭찬이 이어졌다.
“고진감래라더니 네가 착하게(善) 산 때문에 이렇듯 알찬 사위까지 보는 등 결국 복(福)을 받는구나.” 아버지께서는 내 아들이 불과 세 살 때 영원히 눈을 감으셨다. 딸은 이듬해 세상에 나왔으니 제 할아버지는 상상으로나 만나고 볼 일이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유지(遺志)가 담긴 나의 당초 이름 ‘선이’처럼 나는 그동안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뿐만 아니라 의리를 존중하고 신의를 잃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더불어 일단 약속을 하면 그야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반드시 지키려했음을 새삼 뿌듯하게 생각한다.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이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도 어언 3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힘겨운 삶의 수레를 끌고 가는 여정엔 변함이 없다. 잦은 야근은 심신을 멍들게 한다. 그렇지만 이럴 때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면 금세 치유가 된다.
지난 날 눈물로 젖은 나의 삶에 아내는 밝은 빛으로 스며들어왔다. 그건 슬픔이 습관이 되던 때 아내가 나타난 덕분이었다. 매일 비가 오는 건 아니듯 언제나 슬픔이란 없다.
또한 착함(善)의 씨앗을 심고도 이를 정성으로 가꾸지 않으면 소득은 당연히 창출되지 않는다. 연애시절까지를 합쳐 아내와 같이 산 세월이 40년에 육박하고 보니 알겠는데 그건 바로 부부 또한 의리(義理)라는 사실의 발견이다.
한데 그 의리의 토양은 ‘선복악재’가 기반을 이루고 있어야만 비로소 백년해로(百年偕老)까지 가능함은 물론이다. 앞으로도 아내와 선복악재에 기초한 의리로 더 잘 살고 볼 일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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