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출처=연합뉴스TV 화면 캡쳐 |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가족이 세인들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들은 더욱이 북한으로선 ‘금수저’ 출신인 빨치산 혈통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권력의 동요가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김정은은 외교관과 해외식당 종업원 등 출신 성분이 좋은 해외 파견자의 탈북이 잇따르자 격노하여 중국을 비롯한 해외 각지에 검열단을 급파했다고 알려졌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태영호 공사는 2남 1녀를 뒀는데, 자식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6살인 큰 아들은 영국 해머스미스 병원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차남은 19살로 덴마크에서 태어나서 스웨던, 영국 등지에서 성장기를 거쳤다고 한다. 특히 수학과 컴퓨터에서 최고 성적을 받는 수재로 알려졌고, 그 재능을 살려 영국의 명문대학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 입학해 수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니 북한의 엘리트 관료 아들답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자면 우리나라나 북한 역시 자녀교육이라고 하면 그 부모가 삼천지교(三遷之敎)에 각별한 관심을 드러내지 싶다. ‘맹모삼천지교’로도 잘 알려진 이 사자성어는 맹자가 어렸을 때 묘지 가까이 살았더니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기에, 맹자 어머니가 집을 시전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물건 파는 흉내를 내므로, 다시 글방이 있는 곳으로 옮겨 공부를 시켰다는 뜻이다.
이는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당시의 맹모가 살던 시절엔 그처럼 세 번 이사를 한 것도 대단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세 번이 아니라 30번도 더 이사를 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특히나 나처럼 내 집이 없는 서민들의 잦은 이사는 기본옵션이(었)다. 지난 6월24일자 한국경제신문을 보면 주필 ‘정규재 NEWS’에 <6.25전쟁이 대한민국에 남긴 유산은 “北의 지식층 유입으로 남한 知力 폭발"이란 기사가 눈길을 끈다.
이에 따르면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요, 세계사의 유례없는 전쟁이지만 그 전쟁이 남긴 ‘유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정 주필은 6·25 전쟁 이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사람이 적게는 50만 명에서 최대 6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산주의를 피해서 남으로 내려온 대다수 사람이 지식 계급이거나 지주였다며 이들이 내려온 ‘덕분에’ 남한에는 지력(知力)이 폭발한 반면 북한에는 지력의 공백(空白)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나와 같은 베이부머 세대는 가난이 원수였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가는 급우는 반에서 3분의 2에 불과했다. 그렇게 중학교의 문턱조차 밟지 못 한 불우한 세대는 남자의 경우 양복점이나 구둣방, 철공소와 공장 등지에 들어가 돈을 벌어야 했다.
여자는 방직공장이나 버스 차장(안내양), 그리고 그보다 못한 하급(下級)의 직업까지 마다치 않았다. 그랬음에도 가난이란 멍에는 쉬 벗어낼 수 없었다. 여기에서도 볼 수 있듯 지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 지력은 한 사람의 일생까지를 좌우한다. 현재 소위 방귀 깨나 뀌는 사람치고 지력이 약한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개중엔 학력과 학벌과는 무관하게 자수성가한 이도 있겠지만 그 수가 빈약한 게 사실이다.
또한 우리나라 부모들은 특히나 자녀교육에 거의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이는 자신이 과거에 가난했기에 못 배운 설움이 차라리 한(恨)으로까지 각인된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필자가 ‘그 증인’이다.
“중학교조차 못 나온 무식한 놈”이란 소릴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선 정말이지 얼추 사생결단의 자세로 매진했다. 덕분에 자식농사에 성공한 사람이란 주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어쨌거나 태영호 공사의 남한으로의 탈출 이후 그 친인척들에 대한 김정은의 가혹한 보복이 어느 정도일지 적이 우려스럽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 |
![]()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