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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 이미지 뱅크 |
아내는 전형적인 아낙이다. 그래서 ‘여자스럽게’ 말이 많다. 특히나 지인들과 만나 식사를 하고 돌아온 날의 수다는 수준급(?)이다. 반면 나는 술이나 마셔야 입이 열리지 평소엔 꽉 잠긴 자물쇠와도 같다.
아내는 어제도 지인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왔단다. 야근을 앞두고 점심을 같이 먹는데 다시금 아내의 입이 분주해졌다. “여보, 어제 저녁을 먹는데 00엄마가 우리 아들이랑 딸을 잘 둬서 내가 너무 부럽다고 하더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입에 밥만 처넣고 있으려니 아내의 강력한 태클이 들어왔다.
“지금 내가 하는 말 듣는 겨?” “듣고 있으니께 말 햐.” 건성으로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금 식사하는 데 몰입했다. 허나 이어진 아내의 수다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秀다’였다. “좋은 말도 세 번이랬다고 그래서 이렇게 쐐기를 박았어. 따지고 보면 아이들이 잘된 건 다 지들 좋은 거지 뭐, 우리 신랑이 잘 돼야 실은 그게 진짜 잘 되는 거라고.”
그 같은 이 부실한 남편에 대한 칭찬에 더 이상은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말이라도 고맙구려. 아무튼 내일 야근 마치고 나와서는 맛난 점심 사줄 테니 먹으러 가자고~” - 실수는 발견의 시작이다(Mistakes are the portals of discovery). -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명언이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실수는 결코 어리석거나 무능함도 아니고 부끄러움과 좌절도 아니다. 또한 그 어떤 것도 실수 없이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어린 아기가 걸음을 배우는 걸 보면 이를 쉬 알 수 있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삶의 희망과 징검다리가 되어준 것은 단연 아내였다.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없는 살림을 쪼개어 두 아이를 알토란으로 잘 기르는 걸 보면서 역시나 맞춤한 그릇, 아니 실은 나보다 월등한 사람을 잘 만났다고 느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내는 나를 만난 것이 ‘실수’한 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구한 날 술이나 좋아하지 돈은 쥐뿔도 벌지 못하는 허릅숭이 남편이었으니까. 이러한 나의 자아비판(自我批判)은 하지만 아내의 조련(調鍊)으로부터 시나브로 개선을 보였기에 어떤 가능성의 발견으로까지 이어졌다.
즉 *해현경장(解弦更張)의 긴장모드 고취로 나 자신을 더욱 담금질했다는 얘기다. 돈은 없으되 신용은 잃지 마라, 시간과 의리는 칼처럼 지켜라, 가족과 친구를 영원히 사랑하라 등등…… 이런 접근에서 작년에 비해 올해는 여러모로 많이 좋아졌다.
이처럼 긍정적 결과의 도출은 아내의 불변한 *동주공제(同舟共濟) 덕분이다. 더 열심히 해서 고생만 한 아내에게 진정 ‘실수는 발견의 시작이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 ‘발견’의 실체는 물론 나의 명실상부한 성공이다.
* 해현경장(解弦更張) =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매다'라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사회적·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비유하는 뜻.
* 동주공제(同舟共濟) =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彼岸)에 도달하자. 같은 배를 타고 천(川)을 건넌다는 뜻으로 이해(利害)와 환란(患亂)을 같이 했다는 것을 뜻함.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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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