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게티 이미지 뱅크 |
마치 질기둥이와도 같이 끈질기게 괴롭혔던 폭염이었다. 찬물로 목욕을 해도 금세 끈적끈적 달라붙는 더위는 인정사정조차 없는 악질 고리업자의 횡포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에 걸린 달(月)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바람마저 고분고분해 지면서 한가위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중추가절(仲秋佳節)로도 불리는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의 좋은 날이라는 뜻으로, ‘추석’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또한 추석(秋夕)은 글자 그대로 ‘가을 저녁’과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까지 지니고 있다.
지금이야 한가위가 도래해도 먹고살기에 바쁘다보니 대충 지나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예전, 그러니까 지금보다 현저히 못 살았던 시절에도 추석과 관련된 풍속은 다양했다. 추석 차례와 추석 성묘 외에도 강강술래와 줄다리기, 씨름과 소싸움 등의 다양한 놀이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네 조상님들의 여유와 낭만까지 물씬 느껴진다. 추석을 앞두고 ‘한가위 선물대잔치’가 열리는 곳을 찾았다. 각양각색의 선물꾸러미가 다양했지만 단박 마음까지 사로잡은 건 단연 한산 소곡주였다.
소국주(小麴酒)는 술을 빚을 때 누룩을 적게 넣어 빚은 술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전통 청주의 한 가지다. 별칭으로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하는 이 술은 충남 서천의 한산 소곡주(韓山素麯酒)가 대표적이다.
한산 소곡주는 또한 1979년 충남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될 정도로 명불허전의 으뜸 술이다. 한데 소곡주는 왜 그렇게 부르는 걸까? 한산 소곡주는 독하면서도 맛이 달고 부드러워 나도 모르게 많이 마시게 된다.
따라서 이 술을 마시게 되면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다고 하여 ‘앉은뱅이 술’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의 실체는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다.
소곡주를 사가지고 돌아와 앉은 자리서 한 병을 모두 마시곤 그예 일어나지 못한 나의 경험이 그 방증이었으니까. 그러면 한가위는 아직 열흘이나 남았거늘 왜 김칫국부터 마시듯 고급의 소곡주를 미리 탕진(?)했던 것일까.
올 한가위(9월14~18일)는 자그마치 닷새 동안이나 연휴다. 그러나 이는 해당되는 사람들이나 누리는 ‘축복’이지 나에겐 고작 화중지병에 불과하다. 추석연휴에도 주근에 이어 이틀 연속 야근까지 예정돼 있다.
따라서 한가위를 맞아 사랑하는 딸과 믿음직한 사위까지 찾아온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술 한 잔조차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아쉬움과 헛헛함이 그예 소곡주의 술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소주와 달리 소곡주는 뒤탈(숙취)도 없다. 덕분에 새벽부터 일어나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소곡주 얘기가 나오니 예전 직장 상사의 감사함이 보름달처럼 떠오른다.
어느 해 봄이던가……. “서천 사는 지인이 손수 빚었다는 진짜배기 한산 소곡주야. 이걸 선물로 받았는데 술 좋아하는 홍 부장이 떠오르기에 가져왔지.” 그러면서 당시 근무했던 D일보의 지사장님께서 주신 소곡주는 하지만 그 정성이 고마워서라도 함부로 마실 수 없었다.
때문에 그 해 추석 때까지 보관했다가 한가윗날 마시려고 개봉하였는데…… 아뿔싸~ 밀봉한 부분으로 공기가 통했던지 술이 죄 상하고 말았지 뭔가! 쉰내가 풀풀 나는 그 술을 버리면서 얼마나 땅을 치며 자책했는지 모른다! ‘이 미련한 놈아, 아낄 걸 아껴라.’
소곡주는 일반적인 술빚기와는 차별화된다. 특히 소곡주의 달고 부드러운 감칠맛과 향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도 알맞고 누구나 선호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봄에 결혼한 뒤 신혼여행을 다녀와 인사를 왔을 적에도 그놈의 야근이 원수였다.
하여 사위를 볼 수 없었는데 올 추석에도 그럴 공산이 농후하였기에 미리 당겨서 마신 소곡주였다. 어쨌거나 딸과 사위가 항상 한산 소곡주처럼 달고 부드러운 찰떡근원과, 중추가절의 여유로움으로 잘 살기를 소망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 |
![]()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