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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대학교수직 중단하고 군에 자진입대한 31살 박주원 일병 /사진=병무청 |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젊은이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한다. 지난 1980년 초, 32사 신병교육대에 입대하여 교육을 받았다. 거기서 나온 뒤엔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겨울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과도 같다.
당시 방위병의 주 임무는 <예비군 훈련소집통지서>를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달하고 수령증에 사인 내지 도장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한데 문제는 낮에 방문하면 당사자가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000씨 안 계셔유?”
“걔는 내 아들인디 왜 찾으슈?” “훈련 나와서 왔쥬, 근디 000씨는 어디 갔슈?” “돈 벌러 나갔지 이 시간에 집에 있겄슈?” 할머니는 그러시면서 날도 추운데 잠시 들어와 몸이라도 녹이고 가라는 정담을 잊지 않으셨다.
“그럴 시간이 있간유? 그나저나 아드님을 뵈려면 언제 와야 되남유?” “밤이야 돼야 오지유. 그냥 나한티 주고 가면 안 돼유?” "안 돼쥬! 당사자에게 직접 줘야 되는 게 원칙이거든유." 그런 경우는 밤에 다시 찾아가야 되었다.
겨울날씨는 땅거미가 지기 무섭게 폭설을 몰고 왔다. 하지만 중대장님과 고참병(古參兵)의 “예비군 훈련소집통지서는 다 돌린 겨?!”라는 성화를 무마하자면 아까 낮에 가서 못 만났던 사람들(예비군 훈련대상자)을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대저 큰 시(市)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읍(邑) 단위의 지역은 한적한 변두리가 상존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농사가 주업인 ‘시골’로 접어들자면, 또한 깜깜한 밤이라고 하면 동네의 개(犬)라는 개들은 일제히 작당하여 어찌나 짖어대는지 정신이 죄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컹컹 ~ 멍멍 ~~ 왈왈 ~~~ “그만 좀 짖어라. 나는 도둑놈 아니다. 난 신성한 군인이라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악전고투 끝에 겨우 헤치곤 낮에 못 만났던 이를 겨우 만났다. “000씨 맞쥬? 여기 사인 하세유.”
“나 보자고 또 온 거유? 미안해 죽겄네.” “미안하면 훈련이나 빼먹지 말고 잘 참석하셔유.” 그렇게 예비군 훈련소집통지서의 전달을 잘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 동네 개들의 시끄러운 합창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통지서를 돌리다가 그만 눈길에 보기 좋게 미끄러져 발을 삐었다. 절뚝거리며 겨우 돌아오긴 했지만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일어나니 아예 걸을 수조차 없었다. 하는 수 없어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고 약도 지어먹고서야 며칠 뒤 정상으로 걸을 수 있었다.
채 가을도 정착을 안 했거늘 뜬금없이 군인(방위병도 군인이었다!) 시절 얘기를 꺼낸 건 다 까닭이 존재하는 때문이다. 미국의 영주권까지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대학교수까지 하던 사람이 우리나라 군에 입대했대서 화제다.
육군 2사단 17연대 소속 박주원 일병(31세)이 주인공인데 그는 어려서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케냐로 건너갔다고 한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서도 면학에 정진하여 불과 28세에 미국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단다.
뿐만 아니라 내처 교수까지 됐다고 하니 그 열정과 패기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는 명예와권력, 돈과 시간까지도 중차대한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잠시 내려놓았다면서 그 과정을 지난 봄 병무청에서 공모한 수기공모에 응모한(최우수상 수상) 때문에 드러났다고 한다.
이런 매우 훌륭한 젊은이가 있는 대척점엔 댄스가수로 명성을 떨쳤던 유승준(스티브 유)이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군대 문제를 그는 틀림없이 입대하겠다는 거짓말로 팬들까지 희롱하곤 외국으로 ‘튀었다’.
그로 인해 결국엔 국내입국마저 여전히 불허되고 있는 그를 보자면 새삼 국방형영(國防形影)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강대국에 둘러 쌓인 우리나라의 국방현실은 설상가상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라는 악재에까지 봉착했다.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이 연일 비난하는 것과는 별도로 사견(私見)이지만 내친 김에 우리나라도 서둘러 핵무장을 해야만 북한의 경거망동을 제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미국과 중국 등의 설득이 관건인데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파안(破案)까지를 떠올렸을까.
유성에 위치한 국립대전현충원과 충남대학교에 들어서면 백마상의 기상이 돋보인다. 마침맞게 오늘은 백로(白露)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즉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다는 얘기다. 백로에 대하여는 지방마다 풀이가 다른데 충남에서는 늦게 벼를 심었다면 백로 이전에 이삭이 패어야 그 벼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즉 백로가 지나도록 이삭이 패지 않으면 그 나락은 먹을 수 없다고 믿었는데 국방 역시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평소 탄탄한 국방의 견지만이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정부 고위층 인사의 국회청문회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그들 자제의 병역의무 기피로 얼룩진 현실에 망연자실하기 일쑤였다.
때문으로라도 미국의 대학교수직까지를 던지고 입국하여 군복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박주원 일병은 진정 박수에 이어 존경까지 받아 마땅하다. 그의 앞길이 백로처럼 시원하고 백마처럼 질풍노도로 성공가도를 달려가길 응원한다.
美 대학교수직 중단하고 군에 자진입대한 '31살 박주원 일병' 기사보기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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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