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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0월 논산천 둔치에서 펼쳐진 황산벌전투 재연행사/사진=연합 DB |
평소 즐겨 들으며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까지 하는 노래 중에 <백마강>이 있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 계백장군 삼척님은 님 사랑도 끊었구나 ~아~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 불러보자 삼천궁녀를(2절) ~’
지난 6월 처음 찾은 부여의 백마강은 풍광마저 압권이어서 가슴까지 시원했다. 백마강(白馬江)은 충남 부여군 일대를 흐르는 금강(錦江)의 명칭이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神舞山)에서 발원하는 금강은 서쪽으로 꺾여 흘러서 공주에 이르러선 웅진(熊津) 또는 ‘금강’이 된다.
이어 유구천(維鳩川)을 합하여 남쪽으로 곡류하면서 부여군에 이르러서는 고성진(古省津) 또는 ‘백마강’이 된다. 금강은 백마강을 지나 논산천(論山川)을 합하고 강경을 거쳐서는 황해로 들어간다.
백마강은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하여 용을 낚았던 바위를 조룡대(釣龍台)라 하고 강의 이름도 사하(泗河)에서 백마강(白馬江)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백제 말기보다 160여 년 앞선 무녕왕 시대의 기록에 이미 금강을 ‘白江(백강)’으로 표기했던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마강은 곧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아야 할 것이란 설도 있다.
백마강 일대는 538년(성왕 16)에 국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성(泗沘城)인 부여로 옮겨,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심장부였다. 660년에 소정방이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침공할 때 장렬히 산화한 인물에 계백장군(階伯將軍)이 있다.
신라는 실로 ‘비겁하게’ 외세(外勢)인 당나라까지 끌어들여 백제를 공략한다. 그러자 계백장군은 자신의 사랑하는 처자까지 모두 죽이는 비장한 결의의 배수진을 치고 황산벌로 출전한다. 백제를 진격해 온 나당연합군 5만을 5천 명의 군사로써 네 차례나 격파했으나, 끝내 계백장군은 전사하고 백제는 종말을 고한다.
얼마 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음수사원(飮水思源)’을 거론한 바 있다. 직접 대놓고 말하진 않았으되 과거 소정방까지를 이 범주에 끼워 넣고자 하는 의도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하겠다.
소정방은 당나라 태종 때 나·당 연합군 대총관으로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멸하고 이듬해엔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했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철군한 인물이다. 사견이지만 아무리 어렵다손 치더라도 절대로 외세의 힘을 빌려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굳이 일제의 식민지 시절을 되짚어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먹잇감이 돼온 때문이다. 충남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신풍리)에 <계백장군 유적지>가 있다.
<백제군사박물관>과 함께 위치한 이곳에 가면 계백장군의 묘와 함께 지난 2002년에 조성된 계백장군의 사당인 ‘충장사’도 보인다. ‘황산루’에 오르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탑정호와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의의까지 고찰할 수 있다.
주지하듯 작금 북한의 핵무장은 한반도의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예상(?)과 달리 중국은 자신과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인 북한을 그러나 내정간섭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는 14개 주변국가들과 육지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내정에 간섭하고 나선다면 나머지 14개 국가들이 중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구실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때문이다.
따라서 계백장군 유적지에서 장엄한 모습의 계백장군 동상까지 보자면 자주국방의 당위성과 절실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처자까지 자신의 칼로 없애고 전장에 출전한 계백장군은 조선시대의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처럼 백제시대의 영웅이었다.
숭고한 계백정신(階伯精神)을 본받아 다시는 절대로 굴복 않는 자세와 함께 불퇴전(不退轉)의 대한민국 국민과 군인들의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즈음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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