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자성어] 112. 포도순절(葡萄旬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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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자성어] 112. 포도순절(葡萄旬節)

두부두루치기와 포도의 콜라보레이션

  • 승인 2016-09-25 01:00
  • 홍경석홍경석
▲ 사진 출처=able 현대증권 공식블로그
▲ 사진 출처=able 현대증권 공식블로그

그제 저녁엔 후배와 두부두루치기를 잘 하는 식당에 갔다. 중구 선화동의 이른바 ‘먹자골목’에 위치한 곳인데 매운 두부두루치기와 함께 나오는 시원한 멸치국물도 일품이다.

나이를 먹으니 예전처럼 아주 매운 음식은 못 먹는다. 하여 주문 전에 “덜 맵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다. 덕분에 적당한 매운 맛의 두부두루치기를 소주와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선배님께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두부두루치기를 사랑하시는군요?”라는 후배의 말에 성긋거리는 웃음이 배어나왔다.

“그도 그렇지만 치아가 부실하고 보니 두부처럼 부드러운 걸 찾게 되더구나.” 소주를 몇 병 비우고 나오자니 예전 동양백화점(현 NC백화점) 빌딩이 반갑게 맞았다.

“저 빌딩의 9층에 나의 과거 직장이 위치했었지. 그리곤 전국 최연소 소장 임명장을 받은 곳도 바로 저기고…….”

뿐이던가, 지난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6월 민주화운동’, 즉 6.10 민주항쟁 때는 나 또한 ‘넥타이부대’로 참여한 곳이 바로 동양백화점 앞 네거리였다. “세월 참 빠르구나! 당시 갓난아기였던 딸내미가 어느새 성큼 자라 지난봄엔 시집까지 갔으니 말이다.”

“그러게요.” 34년 전 갓 백일을 넘긴 아들을 업고 대전으로 전근(轉勤)을 오자 대전 직원들이 대전의 명물음식이라며 사준 게 바로 두부두루치기였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매웠지만 쓴 소주의 맛을 잡아주는 데는 그야말로 ‘딱’이었다. 그때부터 깊은 정을 느낀 음식이 바로 두부두루치기였다.

매운 맛이 돋보이는 두부두루치기는 추운 겨울에 더 잘 어울린다. 가수 최백호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에서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라고 했다.

그러면 눈길을 걸으며 옛 일을 잊어보겠노라고. 하지만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실재한다. 눈이 덮이면 아까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까지 감춰진다지만 트라우마에 가까운 상처는 제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때문이다.

추석연휴는 물론이요 연휴가 끝난 다음날에도 출근하였다. 그러면서 라디오를 듣자니 추석에 친정에 다녀왔다는 애청자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친정엄마께 갈치가 먹고 싶다고 했죠. 그러자 엄마께선 추석 연휴 내내 갈치로 찜에, 구이에 이어 심지어는 국까지 끓여주시는 거예요. 물려서 그만 먹으려 했지만 그럼 엄마가 서운해 하실까봐서 억지로 다 먹고 왔답니다.” 그 방송을 듣는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런 엄마를 둔 저 애청자는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내게 있어 엄마는 얼추 ‘애초’ 부재(不在)했다. 나의 생후 첫돌 무렵 증발하신 때문이다. 따라서 얼굴조차도 알 수 없는 엄마는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에서나 겨우 조우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아픔이 고춧가루로 범벅된 두부두루치기보다도 매운 것이다.

때문에 지금도 이런 하소연을 엄마께 하고 싶다. “엄마,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노래처럼 남들과 같이 엄마도 ‘겨울’, 즉 살만치 사시다가 노년(老年)에 돌아가셨더라면 제가 어찌 이렇게 통한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정말이지 너무 하십니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파릇파릇한 청소년기의 봄이 있었는가 하면 여름의 청년기를 지나 중년의 가을로 접어든다. 늙고 병까지 들면 그게 바로 겨울이다.

부대찌개 라면을 살 요량으로 동네 슈퍼에 갔다. 마침맞게 내 고향 천안의 포도가 탐스럽게 박스에 담겨있었다. 천안 産 포도는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영천과 함께 포도의 당도가 높기로 소문이 짜한 곳이다. 더군다나 백로(白露)에서 추석까지는 포도가 알알이 단맛이 가득하여가장 맛있는 시기라 하여 ‘포도순절(葡萄旬節)’로 불린다.

아내는 해마다 포도 몇 박스는 먹어야 여름을 났다고 할 만치로 포도를 잘 먹는다. 그런 아내 생각이 나기에 주저 없이 포도를 한 박스 샀다. 아내의 입이 귀에 가서 걸렸음은 물론이다.

“당신도 한 송이 먹지 그래?” “나야 술이나 좋아하지 포도는 별로여.”

기다렸다는 듯 포도를 소녀처럼 앙증맞게 잘 먹는 아내의 입이 참 고왔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도 있는 게 인생이다. 삶에 시련이 닥칠수록 아내와는 더욱 견고한 사랑을 추구했다.

덕분에 다음 달이면 결혼 35주년을 맞는다.

두부두루치는 맵다. 반면 포도는 아주 달다. 내 인생이 매웠다면 아내는 반대로 달았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두부두루치기와 포도의 어떤 콜라보레이션이 아닐까?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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