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之)는 초목의 싹이 흙을 뚫고 나오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싹이 돋고 자란다하여 “가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위나라에 노육이라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 당시는 벼슬자리에 오르려면 가문이 좋아야 했으나 노육의 가문은 매우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 왕은 그에게 중서랑이라는 요직에 임명했다. 많은 신하들은 보잘 것 없는 집안의 인물을 기용하면 모든 백성들이 벼슬아치들을 우습게 본다며 취소할 것을 청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집안이나 가문만 좋다고 벼슬을 주는 것은 잘못된 풍습이오. 가문이란 말하자면 그림 속에 있는 떡(畵中之餠)과 같아서 배가 고파도 먹을 수도 없는 쓸모없는 것이오." 하고 말했다. 신하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이후 황제는 노육에게 명성이나 가문만보지 말고 능력을 보고 인재를 천거하라고 명했다. 황제의 신임을 얻은 노육은 폐지된 시험제도를 부활시켜 인재를 널리 등용했다.
이때부터 화중지병은 “실제로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 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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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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