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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YTN 화면 캡쳐 |
얼마 전 회사 건물의 화장실에 들어서니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여져 있었다. “여기서 제발 흡연하지 마세요! 누군지는 대충 알고 있지만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담배를 태우시면 많은 직원들이 힘들어집니다.”
순간 그 흡연자는 고객 ‘님’이 아니라 진상 손님 ‘놈’으로 그 위상마저 순식간에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님’은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며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반면 ‘놈’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임과 동시에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이르는 말이다.
‘도둑놈’, ‘나쁜 놈’, ‘죽일 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파트 경비원의 얼굴을 담뱃불로 지진 주민이 경찰에 입건됐다고 한다. 경비원이 통화를 조용히 해달라니까 아파트 입주민이 폭언을 퍼부으면서 한 짓이라는데 담뱃불의 온도는 자그마치 5백도나 된다.
따라서 담뱃불로 말미암은 화상은 어쩌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와도 같다. 그럼 실로 어처구니없는 이 사건 발생의 개요를 보자. 지난 9월 19일 새벽 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 이 모 씨(51)가 경비원 차 모 씨(24)를 폭행하고 담뱃불로 뺨을 3차례 지지는 등 2도 화상을 입혔다고 한다.
이 씨는 지하주차장에서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다 순찰 중인 차 씨로부터 “조용히 해 달라”는 요구를 받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찮은 경비원 주제에 감히 이래라 저래라야. 입주민회장에게 이야기해서 잘라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하여 더욱 공분(公憤)의 ‘뚜껑이 열렸다’.
자신의 아들뻘 되는 경비원에게 그 같은 짓거리를 저지른 입주민은 그렇다면 더 이상 ‘입주민 님’이 아니라 ‘못된 놈’이 되는 셈이다. 지난 6월엔 또 수원에 사는 30대 남성이 복도에 내놓은 옆집 유모차를 왜 치우지 않느냐면서 60대 아파트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다시금 ‘갑질 논란’이 불거졌었다.
자신의 아버지뻘인 60대 아파트 경비원에게도 인권이 존재함을 평소 조금이라도 인지했더라면 시원한 음료수 제공은 고사하고 어찌 그런 횡포까지 자행할 수 있었을까. 이와는 반대로 부산의 어떤 아파트에서는 입주민의 배려로 경비실 앞에 '무료 생수 보급소'를 설치 운영하여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 아파트의 주민 이모56)씨가 매일 오전 9시를 전후로 전날 미리 얼린 500ℓ 용량의 생수 30여병을 아이스박스에 넣어두었단다. 그러면서 아이스박스 위에는 "집배원님, 환경미화원님, 택배기사님, 경비원님, 이 시원한 생수 드시고 힘내세요!"라고 적혀있었다니 이 얼마나 대단히 감사한 ‘입주민 님’이 아니었겠는가!
나도 현재 경비원을 하고 있지만 사실 소위 ‘진상’ 손님과 고객들이 적지 않다. 주차비를 안 받는다는 걸 알고 무단주차에 장기주차는 기본이다. 연락처마저 적어놓지 않아 소유자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찌어찌 어렵사리 연락을 취하면 십중팔구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란 생각에 묵묵부답하지만 경비원도 사람이다. 따라서 이를 속으로 억지로 억누르고자 하니 홧병까지 생긴다. 박봉에 고된 일과를 마치고 나면 파근(파근하다= 다리 힘이 없어 내딛는 것이 무겁다)한 데 더하여 쉽사리 쉬기도 힘들기에 독한 소주의 힘을 빌리기도 다반사다.
그 바람에 건강까지 부쩍 나빠져 고민이 깊은 즈음이다. 개인적으로 냉장고에 항시 음료를 채워두고 있다. 이는 나처럼 힘든 일을 하시는 집배원과 택배기사 아저씨들이 오시면 드리고자함에서다.
노래도 있지만 ‘님’ 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 이 되는 게 세상사의 이치다. 님과 놈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공공건물의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고, 몰래 주차를 하는가 하면, ‘하찮은 경비원’이라고 폭행하는 따위는 모두 더 이상 ‘님’이 아니라 ‘놈’일 따름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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