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자성어] 129. 산호혼식(珊瑚婚式)

  • 문화
  • 인생 사자성어

[인생은 사자성어] 129. 산호혼식(珊瑚婚式)

결혼 35주년을 맞으며

  • 승인 2016-10-12 01:00
  • 홍경석홍경석
▲ 게티 이미지 뱅크
▲ 게티 이미지 뱅크


“만약이지만 날 만나지 않았다면 최고급 자가용쯤이야 만만했을 텐데. 철 따라 해외여행 누볐을 텐데. 그만큼 얼굴 잘났지, 마음씨 복 받게 생겼지, 그래도 빙그레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하네. 참마음인지 날 달래려는지 알 수가 있나. 여보시여~ 마나님. 나머지 시간 많이 늦었지만, 쬐금 남았지만 온 마음 다하리다.”

어디선가 접한 ‘아내 사랑’을 묘사한 시다. 이 시를 접하는 순간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했나 싶어 금세 맘에 와 닿았다. 10월12일 오늘은 우리부부의 결혼 35주년 기념일이다. 결혼기념일을 나타내는 표현은 참 많다.

결혼 1주년은 지혼식(紙婚式)이고 10주년은 석혼식(錫婚式), 20주년은 자기혼식(磁器婚式)이랬다. 그렇다면 우리부부의 결혼 35주년은 산호혼식(珊瑚婚式)이렷다. 볕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반 지하 셋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차렸다.

따라서 하루 종일 전등을 켜야 했는데 이는 그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방증이다. 살림 역시 석유곤로와 비키니옷장 하나에 수저 두 벌, 그리고 허름한 이부자리가 전부였다. 그랬음에도 우린 서로를 끔찍이 사랑했기에 그러한 가난은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선녀 옷을 보여 주지 말라는 사슴의 말을 어기고 미련한(?) 나무꾼은 아이 둘을 낳은 선녀에게 옷을 보여 준다. 그러자 선녀는 아이를 양팔에 끼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선녀조차도 그처럼 지아비를 버리고 달아났지만 아내는 그러지 않았다.

때문에 아내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 지는 더 이상 말 안 해도 다 아는 어떤 상식일 터다. 세월은 쏘아버린 화살보다 빨라서 우리는 이제 이순(耳順)의 초입에 서있다. 그렇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만큼은 지난 시절 청춘남녀 적의 그야말로 불타던 시절과 불변하다.

사는 건 여전히 어렵다. 박봉은 매달 생활고를 겪게 만들며 직장 구성원들의 사소한 것에도 마구 에고이즘을 휘두르는 가탈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정나미마저 달아나게 한다. 그동안 내가 처한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확신만 있었어도 나는 즉시 행동으로 옮겨왔다.

그건 물론 실패와 후회라는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지만 감이 떨어질 때와, 해가 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요즘도 한창 그러한 장르의 작업에 몰두 중인데 잘 안 돼서 걱정이지만.

위에서 인용한 시처럼 아내가 날 만나지 않았다면 분명 좋은 남편에 더하여 최고급 자가용쯤이야 기본이었을 게다. 철 따라 해외여행도 누볐을 테고. 입때껏 살면서 제주도조차 가보지 못 했다. 따라서 해외여행 또한 언감생심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이를 탓해봤자 무엇하리. 괜스레 나 자신만 더욱 처량해질 따름인 것을.


여행은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다. 얼마 전 유엔 기구인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국가로 분류한 240개국을 모두 여행했다는 이해욱 전 KT 사장의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그래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평생 단 한 곳의 외국조차 못 나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거늘 그분은 대체 무슨 복이 그리도 많았던 것일까? 아마도 전생에 복을 엄청 많이 지은 덕분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아내가 참으로 감사하고 미안하다. 이야기를 다시 ‘선녀와 나무꾼’으로 돌려본다. 하늘로 올라간 선녀는 시나브로 폐인이 되어가는 남편을 하늘나라로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옥황상제께 읍소한다.

이에 옥황상제는 보름달이 뜰 때 두레박을 내려 보내게 허락하고, 그 두레박을 타고 올라온 나무꾼은 선녀를 다시 만난다.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이젠 달아나기만 했던 풍요의 두레박이 도래하길 소망한다.

그러면 그동안 죽어라 고생만 해 온 아내와 제주도에 가고 해외에까지 날아가는 것 역시 일도 아닐 것이리라.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으니 그 또한 기다리고 볼 일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중수청, 세종 임시 개청 후 옛 대전세무서 부지로 이전 추진
  2. 당진시, 청주국제공항 직통 고속버스 신규 운행… 대중교통 이용 편의 대폭 향상
  3. 칠곡 왜관철교, 주민들 쉼터 역할
  4. [르포] 선풍기도 없는 40.2도 정산부스… 폭염 속 공영주차장 근로자
  5. 돌아오는 온통대전…자치구 지역화폐와 연계·통합 가능할까
  1. 음주운전 사고 후 경찰관까지 폭행한 60대… 차량 압수
  2. 대덕특구 공동관리아파트 R&D 맞춤형 심사 대상될까…예타 폐지 새기회
  3. 금감원·검찰 사칭… 전국 돌며 1억5400만원 수거한 보이스피싱 수거책 검거
  4. 대전출입국·외국인사무소, 외국인 불법 라이더 무더기 적발
  5. 창립 56년 맞은 국방과학연구소 "자주국방 완수에 헌신"

헤드라인 뉴스


정부 `산업용 전기료 차등`에 대전 산업계 `촉각`

정부 '산업용 전기료 차등'에 대전 산업계 '촉각'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대전지역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차등 적용의 주요 기준 가운데 전력자립도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역별 전력수급 여건을 반영한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제를 올 하반기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전력자립도와 송전비용, 국가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이달 중 공청회를 거쳐 권역 구분과 요금 차등 폭을 확정할 예정이다..

李 `육사 군사쿠데타 강력 성토`… 통합사관학교 강력 추진 지시
李 '육사 군사쿠데타 강력 성토'… 통합사관학교 강력 추진 지시

이재명 대통령은 5일 "군사 쿠데타를 무려 세 번이나 한 중심이 육사인데도 한 번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며 대전 유성구 자운대에 신속하고 강력한 '국군사관학교' 창설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 국가보훈부 업무보고에서 "지금까지 대한민국 군사 쿠데타가 몇 번 있었나. 다 육군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한 일인데,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은 일이 있나"라며 통합사관학교 반대를 주도하는 육사를 성토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과 관련해 논의하던..

현금만 쓰고, 옷까지 버린 보이스피싱범 안잡힐 줄 알았지? (영상)
현금만 쓰고, 옷까지 버린 보이스피싱범 안잡힐 줄 알았지? (영상)

현금만 쓰고 금융감독원과 검찰을 사칭해 어르신들의 현금을 훔쳐 달아난 20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대전서부경찰서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특별법 위반 혐의로 20대 여성 A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습다. A씨는 지난 5월 대전 서구의 한 주택가 우편함에서 70대 피해자가 넣은 현금 1,000만 원을 수거하는 등 전국을 돌며 총 7회에 걸쳐 약 1억 5,4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A씨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교통카드를 수시로 교체하고, 모텔에서 1박씩 투숙하며 옷을 바꿔 입는 등 치밀하게 이동했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