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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중에선 아무래도 10월이 가장 좋은 달이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적으로도 이런저런 축제가 얼추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는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걸맞게(?) 지난 10월 9일 나의 모교인 천안성정초등학교에서도 총 동문 체육대회가 열렸다.
내 모교가 더욱 살갑고 정겨운 건 내가 유일하게 이 학교를 ‘졸업한 때문’만은 아니다. 총 동문 체육대회에 가면 선배님들도 두루 뵐 수 있는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포로’다. 따라서 체육대회서 뵙는 선배님들은 하나같이 나의 과거를 반추하는 어떤 거울이기도 하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는데 바로 1년 선배님과 3년 위인 선배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님~ 안녕하셨어유? 술 한 잔 얻어먹으러 왔슈.” “어서 와! 그리고 친구들 내 말 좀 들어보게.” 그러더니 어찌나 내 자랑을 하시는지 술김임에도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혼났다.
“이 친구가 우리 후배긴 하지만 정말 본 받을 만한 사람이여. 그래서 우리 동창들에게 내가 잠시 자랑 좀 해야겠네. 에,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러더니 급기야 딸아이가 나온 S대학교까지를 운운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봄에 나도 경석이 딸내미가 결혼한 S대학교 웨딩홀을 찾았었지만 이 나이를 먹도록 S대학교를 가본 건 솔직히 그때가 처음이었어. 하여간 경석아, 자식농사에 성공한 네가 정말 부럽고 대견하다.”
그 바람에 대낮부터 술에 떡이 되도록 취했지만 마음만큼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정서(情緖) 행복감으로 낭창낭창했다. 천안성정초등학교는 나의 나이와 ‘생일’이 같다. 따라서 어느덧 개교 58주년을 맞는데 그러나 꽃다운 학창시절을 떠올리자면 그야말로 꿈결처럼 짧은 시간에 다름 아니다.
나와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부분 그러했듯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상급 학교인 중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은 고작 3분의 2밖에 안 되었다. 즉 3분의 1은 중학교조차 가지 못 하고 곧바로 돈을 벌고자 밖으로 나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무척이나 가난했었다는 방증이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불변한 현상이지만 사람은 어찌 되었든 많이 배우고 봐야 한다. 그래야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고 자녀들에게서도, 특히나 사위나 며느리로부터도 무시를 안 당한다(이는 물론 개인적 편견이다).
가난이 원수였기에 중학교라곤 문턱도 밟아보지 못 했다. 설상가상 깊은 병이 드신 홀아버지를 봉양하자니 소년가장까지 되어야 했다. 구두닦이와 신문배달 및 판매, 행상과 비 오는 날엔 우산장사와 날씨가 더울 땐 아이스케키 장사까지 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경주해봤자 그 지겨운 가난은 여전히 견고한 점착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고단한 삶에 지치고 증발된 모정(母情)의 결여에까지 시달리자 때론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고도 싶었다. 그러나 결혼 뒤에 본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두 아이를 봐서라도 그리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 나는 어차피 자갈밭 인생이요 또한 흙수저 팔자라지만 내 아이들만큼은 기필코 잘 가르쳐서 내가 겪은 고생과 파란만장의 굴곡과 어둠은 반드시 피하게 하고야 말리라!’ 이런 결심으로 약해지는 나 자신을 수습하고 어루만졌다.
병행하여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소위 ‘밥상머리 교육’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어르신을 뵈면 반드시 인사하고 자리(시내버스와 지하철)를 양보하거라”, “사람은 모름지기 믿음과 의리가 있어야 한다”,
“말주벅(이것저것 경위를 따지고 남을 공박하거나 자기 이론을 주장할 만한 말주변)으로 괜스레 적을 만들기 전에 스스로 겸손하거라. 결국 이기는 게 겸손이다.” 굳이 이러한 나름의 가정교육 덕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여하간 심성이 대나무처럼 곧고 착한 아이들은 정말 잘 키우고 잘 가르쳤다고 자부한다. 덕분에 어제도 선배님들로부터 칭찬을 소나기처럼 받았던 것이었다. 지난봄의 딸 결혼식 때 주례를 봐주신 분은 전직 서울대 교수이자 장관까지 지내신 분이었다.
때문에 혼례를 마치고도 한동안 딸의 결혼이 주변 지인들의 인구에 회자됐었다. 인지상정이겠지만 자녀가 성공한다는 것은 청출어람(靑出於藍), 그 이상의 기쁨이다. ‘골프와 마누라의 공통점은?’ ===> 바로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제아무리 돈을 억수로 퍼부으며 가르쳐도 정작 공부에 소홀하거나 말까지 안 듣는 자녀가 실재한다. 이는 그만큼 자식농사는 ‘맞갖다(마음이나 입맛에 꼭 맞다)’의 범주에서도 한참이나 벗어난 장르란 셈법이 통용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렇다면 나는 참 행복한 아빠인 셈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 라는 뜻으로, 근본(根本)을 잊지 않음을 뜻한다. 또한 죽어서라도 고향(故鄕)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지금으로선 솔직히 ‘수구초심’의 의지가 별로 없다. 왜냐면 그리 하자면 바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란 과제가 전제(前提)돼야 하는 때문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수구초심은 모든 인간의 본능이자 희망이다.
언제 찾아도 격의 없이 나를 대해주는 죽마고우와 동창들, 그리고 선후배님들이 가득한 내 고향 천안…… 언젠가는 금의환향으로 수구초심하리라는 마음에 자물쇠를 채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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