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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 이미지 뱅크 |
지난 10월18일자 모 신문에서 비(雨)와 연관된 수필 한 편을 재미있게 봤다. 재한(在韓) 외국인이 쓴 글인데 제목은 ‘비(雨)를 향한 한국인과 영국인의 은밀한 사랑’이다.
여기서 필자는 영국인들은 내리는 비를 사랑하며 그 방증으로 아예 우산조차 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고 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근무 시간 중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우산을 빌리려 ‘난리법석’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국에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야구 경기와 야외 콘서트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친구와의 약속까지 취소된다는 사실을 적시(摘示)했다. 맞는 말이다. 급작스레 비가 쏟아지는 경우 우산을 준비 못 한 이들은 우산을 빌리고자 동분서주한다.
뿐만 아니라 내리는 비를 한 방울만 맞아도 마치 죽기라고->죽기라도(로 정정합니다) 하는 양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같은 현상은 처녀들이 더하다!) 역시 부지기수다. 반면 나는 비를 사랑한다. 그것도 철저하게. 이는 비에 대한 어떤 랩소디(rhapsody)가 내재하는 때문이다.
비는 종류도 많다. ‘는개’는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 보다 조금 가는 비를 뜻한다. ‘먼지잼’은 겨우 먼지나 일지 않을 정도로 조금 오다 마는 비다. ‘웃비’는 좍좍 내리다 잠깐 그쳤으나 아직 비가 올 듯한 기색이 보이는 비를 의미한다.
‘여우비’는 볕이 난 날 잠깐 뿌리는 비이며 ‘모다기비’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비, 즉 집중호우를 말한다. ‘발비’는 빗줄기가 발처럼 보이는 비이며, ‘작달비’는 굵직하고 거세게 퍼붓는 비다. ‘목비’는 모내기 할 무렵 내리는 비인 까닭에 특히나 농부들의 환영을 받는다.
소년가장 시절 우산장사를 했음을 진즉 ‘고백한’ 바 있다. 당시 비닐우산은 50원이었는데 하나를 팔면 20원이나 남는 꽤 짭짤한 벌이였다. 때문에 날이 좋은 날 손님들의 구두를 닦으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는 물론 비가 내리길 간절히 원하는 바람을 담은 행동의 일환이었다. 한데 간절하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짜장(과연 정말로) 나의 소원(?)처럼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는 날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구두닦이는 구두를 닦아준 뒤 받는 돈을 그 업계의 무시무시한 ‘형’과 반타작을 하는 구조였다. 반면 우산장사는 수익 모두가 온전히 내 몫이었기에 그처럼 비가 내리길 학수고대(鶴首苦待)했던 것이었다.
우산을 많이 파는 날은 마치 전장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도 힘이 붙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주에 더하여 돼지고기도 한 근 푸줏간에서 썰어갈 수 있어 더욱 신이 났다.
그처럼 비가 참으로 고마웠기에 의리(義理)와 도의상으로라도 나는 여전히 비를 사랑하는 것이다. 글을 쓴 외국인도 지적했듯 내리는 비(그 비가 비록 산성비라곤 해도)를 맞는다고 해서 대머리가 된 사람은 나 또한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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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