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자성어] 138. 일목다경(一目多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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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자성어] 138. 일목다경(一目多景)

염치가 없긴 하지만

  • 승인 2016-10-24 00:01
  • 홍경석홍경석
▲ 태안 안면도/사진=연합 DB
▲ 태안 안면도/사진=연합 DB


지난 6월의 일이다. 이틀간 거푸 야근한 것이 단초이자 화근이지 싶었다. 거기에 잠을 못 자서 게슴츠레한 눈은 작심하고 시작한 충남 태안 해변길의 산책, 아니 ‘등산’을 시작한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기진맥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조차 터지지 않는 지역인지라 낙오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대부분의 여자동창들조차 나보다 더 한참이나 앞서서 용감한 뚜벅이로 가고 있는 터였다. 따라서 시쳇말로 ‘쪽이 팔려서’라도 그들을 따라잡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야말로 ‘악으로 + 깡으로’ 해변길의 종주(縱走)를 계속했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여자 동창생 하나가 확연하게 늦더니 급기야 사달이 나고 말았다.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는 게 아닌가!

“난 더 이상 못 가! 00(전임 회장 이름)이가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더니 다 사기였어. 돌아가면 그냥 안둘 껴!” 이를 바득바득 가는 친구가 우스우면서도 귀여워 보였다. “그렇다면 복수를 하겠다는 얘기잖아? 한데 징치(懲治)를 하자면 반드시 돌아가야 되니까 어서 기운 내.”

그럴 즈음 마침맞게 군 복무 시절 유격대원이었다는 동창이 기진맥진한 그 친구의 앞에 어떤 수호천사로 나섰다. 그리곤 임시방편으로 만든 지팡이를 그 친구에게 잡도록 한 뒤 앞으로 당기는 식으로 전진해 나갔다.

그처럼 신두리 해안사구를 출발한 1코스 ‘바라길’과 2코스 ‘소원길’ 덕분에 비록 고생은 하였으되 주변의 여럿 명불허전의 아름다운 해수욕장 풍광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태안은 해수욕장이 많기로도 짜한 곳이다. 태안 해변길을 통하여 지나온 해수욕장만 해도 신두리 해수욕장을 필두로 구름포와 의항, 백리포와 천리포, 종착지인 만리포해수욕장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무려 여섯 곳이나 되는 해변(海邊)을 구경 내지 지나쳤음에 일목요연(한 번 보고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하다), 아니 일목다경(一目多景)의 보너스까지 받은 셈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거의 다 왔으니 잠깐 쉬면서 소주나 한 잔 할까?” 우리를 싣고 온 관광버스에서 술과 안주류를 배낭에 넣고 온 동창이 입을 열었다. “그거 좋지~” 바라만 봐도 힐링이 절로 되는 태안바다를 눈에 담으며 마시는 소주는 정말이지 그 옛날 진시황의 산해진미조차 뛰어넘는 천하일품이었다.

▲ 기름유출 피해 당시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들/사진=연합 DB
▲ 기름유출 피해 당시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들/사진=연합 DB

함께 술을 나누던 친구가 지난날을 떠올렸다. “청정바다의 대명사였던 여기 태안이 기름에 오염되고 나서 봉사 차원에서 왔었지. 헌데 그때는 정말이지 끔찍의 차원을 넘어 과연 청정바다로 도로 바뀔까… 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더라고! 기름을 제거하면서는 욕지기가 어찌나 나던지 밥도 못 넘기는 등 후유증도 심했지. 하지만 이젠 이처럼 다시 푸른 바다가 되었기에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 애국자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친구라는 생각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추 3시간이 다 되어서야 만리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기운이 모두 소진되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했지만 저만치서 손을 흔들어대며 반가워하는 동창들을 보니 달아났던 힘이 다시 들어찼다.

함께 간 동창들 중 해변길에 따라나서지 않은 친구들은 벌써부터 만리포 해변에서 즉석 광어회로 만든 생선초밥은 물론이요 꽃게찜과 해삼에 이르기까지 태안의 수산명산물을 식재료로 하여 음식과 술안주를 가득 쌓아놓고 지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서 시원한 해풍을 맞아가며 현지에서 맛본 즉석 광어회 생선초밥은 정말이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내 생애 최고의 환상적인 맛이었다. 동창들의 이구동성 찬사가 이어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지만 만리포 역시도 식후경이네~ ^^”! 그 바람에 술에 떡이 되어 겨우 돌아올 수 있었지만 우리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까지 듬뿍 섭취한 태안 해변길은 다시 오르고픈 ‘힐링 캠프’에 다름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 아들 덕분에 태안으로 1빅2일 여행을 한 바 있다. 염치가 없긴 하지만 올해도 아들의 차에 편승하여 태안을 다시 찾았음 싶다. 요즘 한창 맛이 올랐다는 대하와 전어까지 풍성한 태안.

이유야 어찌됐든 집을 나갔던 전국의 며느리들도 전어를 맛보고자 대거 그곳을 찾았음직하니 인파가 더욱 몰릴 듯 보인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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