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4.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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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4. 터미널

마누라의 정체를 밝힌다

  • 승인 2016-12-13 00:01
  • 홍경석홍경석


“고속버스 차창 너머 외로운 소녀 울고 있네~ 가지 말라고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며 흐느끼네~ 기약 없이 서울로 가는 머시매가 너무 야속해~ 차창을 두드리며 우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네~ 터미널엔 비가 오네~”

윤수일이 부른 가요 <터미널>의 1절 가사이다. 터미널(terminal)은 항공, 열차, 버스 노선 따위의 맨 끝 지점, 또는 많은 교통 노선이 모여 있는 곳을 뜻한다. 터미널이라고 하면 설레는 여행이 먼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별과 작별이 또한 덩달아 오버랩 된다.

지금이야 ‘터미널’이라고 하지만 과거엔 이를 차부(車部)라고 불렀다. 당시 고향역 앞에 차부가 있었다. 역 앞에서 소년가장으로 동분서주했던 지난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터미널에선 행상(行商), 즉 도붓장사(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일)를 하였다.

대나무로 만들고 손잡이가 달린 광주리에 호두과자와 삶은 달걀, 사이다 등의 음료를 담아서 승객들에게 팔았다. 출발을 앞둔 시외버스에 올라서 파는 방식이었다. 한데 자칫하다간 버스의 출발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저만치 천안지하도(구, 온양나드리)까지 가서 내려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 밖에 구두도 닦았다. 손님의 구두를 닦다가 비가 쏟아지면 시장의 도매상으로 달음박질했다. 그리곤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우선 대상으로 우산을 팔았다. 열 개 묶음의 50원짜리 우산을 다 팔면 좋았으나 중도에 비가 그치면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러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괜한 원망을 쏟아냈다. ‘에휴, 비 좀 더 뿌려주시지 않고!’ 그래봤자 여전히 흐린 하늘은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슬픔의 저수지만을 보여줄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예나 지금 역시도 나는 비를 좋아하고 또한 ‘사랑한다’.

비는 우산을 팔아서 나와 홀아버지까지를 먹고살게 해준 참 고마운 자연의 섭리인 까닭이다. 이러구러 세월은 흘러 나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 하지만 지지리도 못 사는 놈인 데다가 설상가상 홀아버지까지 모시는 처지, 그리고 일자무식이라고 처갓집(예비)에선 그녀와 나의 결혼을 극력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 아니면 싫다며 뻗대자 처가에선 급기야 부잣집 총각과의 선을 보는 자리까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연애 당시 나는 천안이 집이었고 그녀는 대전이었다. 하루는 대전에 와서 그녀를 만났는데 그 같이 밥맛없는 얘길 꺼냈다.

예나 지금이나 성격이 불같은지라 그녀 입에서 그처럼 중매(仲媒)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부아가 치솟아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돈 많은 놈한테 시집가려고?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녀의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붙인 뒤 뒤도 안 돌아보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리곤 고속버스 차창 너머의 외로운 청년이 돼서 서럽게 울었다. 가지 말라고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며 흐느껴도 부족하거늘 고작 부자(富者)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의 첫사랑이자 순정(純情)조차 저버린 그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기약 없이 나를 떠나려는 그녀가 너무 야속해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비록 차창을 두드리면서까지 울진 않았으되 마침맞게(?) 도착한 천안 터미널엔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그 바람에 꾹꾹 눌러 참았던 비애의 눈물이 다시금 스멀스멀 배어나왔다.


밤도 깊은 천안 터미널의 ‘외로운 남자’는 다시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홧술을 마구 들이켰다. 그리곤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며 더욱 구슬프게 울었다. 그녀는 일주일 뒤 다시 날 찾아왔다.

“암만 생각해봐도 난 자기가 제일 좋더라!” 그럼 구관이 명관이지~ 그때 잠시잠깐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던 그녀가 바로 35년째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내 마누라의 정체(正體)이자 또 다른 정체(停滯)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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