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칼럼]우리는 얼마나 용서하며 살까?

  • 오피니언
  • 중도칼럼

[중도칼럼]우리는 얼마나 용서하며 살까?

전용란 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7-11-29 10:12
  • 수정 2017-11-29 13:33
  • 전용란 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전용란 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
전용란
전용란(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

러시아의 상뻬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제 박물관에 가면 한 벽면을 가득채운 큰 그림이 있다. 예수님의 탕자의 이야기를 그린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이라는 그림이다. 어둡게 처리된 화면에는 아버지가 구부정하게 아들을 안고 있는데 아들은 무릎을 꿇고 한쪽 신발은 벗겨진 채로 아버지 품속으로 파고들 듯 안겨있다. 인생을 허비하고 탕진한 채 실패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과 그 아들을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렸던 아버지의 그리움 가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속 썩이는 아들과 속 타는 아버지의 인내와 사랑. 이 사랑이 안전지대를 만들어준다. 돌아갈 수 있는 안전지대.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다. 실패는 곧 이탈이며 내몰림이고 함께 할 수 없음이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경직된 사회에서는 탕자가 돌아갈 곳이 없다. 실패를 딛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는 그 실패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고 다독거리며 용서해주는 아버지와 같은 품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사회는 그러한 '아버지'의 부재를 겪고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관계가 없어진 채 권위만 남아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 간섭하며 몰아붙이는 아버지,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것들을 요구하며 온갖 기대를 쏟아내는 아버지. 이 아버지에게 실패한 자식은 수치이다. 이 자녀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없다. 그 아버지의 뜻을 따르느라 자신에게는 가혹하고 주눅든 채 억눌린 삶으로 자신도 남도 믿지 못하는 불행한 자식들이 넘쳐 나게 된다. 불행한 자식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쉴 곳도 없고 마음껏 울 곳도 없어 끝 모를 바닥으로 허물어져 간다. 그들에게 돌아가 지친 영혼을 뉘일 곳, 한 곳도 없다는 것은 참으로 가혹하다. 기다리고 용서해주는 아버지의 품은 얼마든지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회복의 은총을 누리도록 해준다. 용서하고 용납하는 어른들의 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부자의 장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키큰 한 남자가 오른편에 그려져 있다. 이 집의 큰 아들이다. 탕자를 대하는 아버지의 눈길과 큰 아들의 눈길은 동과 서만큼이나 정반대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아버지 곁을 성실하게 지키며 집을 떠나 본적 없는 큰 아들은 방탕하다 돌아온 동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그의 마음은 이해와 용서는커녕 더 굳어져만 간다. 공정함의 기준으로 볼 때 큰 아들의 분노는 너무도 당연하다. 장자의 생각은 상식이다. 그의 생각은 옳다. 재산 탕진하고 아버지 속을 썩이며 하고 싶은 데로 실컷 즐기다 돌아온 놈을 동일하게 대우할 수는 없다. 그가 쾌락의 시간을 보낼 때 맏아들은 아버지 옆에서 죽도록 일만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에 대한 보상은 무엇인가? 점점 감사의 마음이 없어진다. 내가 최선을 다해 일 했기 때문에 인정받을 만하며 그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결과이니 당연하고 공정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맏아들이 생각한 것처럼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진 것일까? 자기공로에만 집중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상실한다.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과 배려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 경쟁사회 속에서 뒤쳐진 인간들은 그들의 열등함과 게으름과 그들의 잘못된 선택의 문제일 뿐 내가 보듬어 주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성실하게만 최선을 다해 살아온 형의 싸늘한 시선을 보면 소위 모범적 삶만 답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오히려 위협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는다. 얼마나 오랜 세월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살아왔는지 온 존재를 던져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곳곳에서 발견한다.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귀퉁이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이 있다. 그 공정함은 어떤 공정함일까? 탕자의 귀환에서 묘사되고 있는 맏아들이 느끼는 수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공정함은 아닐까? 공정함으로 기준을 세운 사회는 지적과 비난과 고소와 고발이 오고 갈 수밖에 없다. 이 수준을 뛰어넘어야만 모두가 함께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더 높은 차원의 공정함이 필요한 이유이다. 실패한 인생과 같은 탕자는 돌아와야 하고 돌아온 탕자를 끌어안는 수용의 사회가 돼야 한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는 있는 그대로를 안아 줄 수 있는 사회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는 용서할 수 있는 사회다. 비난보다 이해가 먼저, 질시보다는 사랑이 먼저인 제스추어를 보여줄 수 있는 안전한 사회가 필요하다. 우리는 얼마나 용서하며 살았을까? 

 

전용란 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대 통합신청서 부결 후폭풍… 보직교수 5명 일괄 사표
  2. 과기부 소관 공공기관 일부 통폐합…국립과학재단 신설
  3. 충남대·공주대 통합 멈췄지만 끝 아니다… 연말까지 재논의 여지
  4. 대전 자치구별 아파트 평균 매매가 어디가 높나
  5.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1. [함께 지켜온 물, 대청호의 다음 25년] 24년 거버넌스의 한계… 충청의 물, 이제 유역 전체를 보자
  2. [함께 지켜온 물, 대청호의 다음 25년] 규제 충돌 넘어선 24년 동행… 충청 유역공동체로 이어진 물길
  3. 충남교육청, 추석 명절 전 특별 공직 감찰 실시
  4. 위성 15기 싣고 우주 향하는 누리호 5차… 대전 기술력 '시험대'
  5. 대전세종충남혈액원, 충남대서 생명나눔 헌혈 캠페인 펼쳐

헤드라인 뉴스


與 지도부 "공공기관, 의료원, 교도소…대전 현안 전폭 지원"

與 지도부 "공공기관, 의료원, 교도소…대전 현안 전폭 지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16일 대전을 찾아 산적한 지역 현안에 대한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공공기관 제2차 지방 이전, 대전 의료원 건립 등 허태정 대전시장과 지역 여권이 요청한 미래성장 동력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며 충청 민심 껴안기에 나섰다. 이 같은 행보는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정책 및 예산권을 가진 집권 여당의 힘을 과시하면서 지역 밥상머리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이날 대전시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전의 2차 공공기관 이전 요구와 관련해 "지방의 의견을..

충남교원 10명 중 9명 "초등 저학년 교육시간 확대 반대"
충남교원 10명 중 9명 "초등 저학년 교육시간 확대 반대"

충남지역 교원 10명 중 9명 이상이 초등학교 저학년 정규수업시간 확대에 반대하고, 교육시간 확대를 통한 돌봄 공백 해소 효과에도 부정적인 전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충남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충남교총)는 정책 논의 기준을 도입 여부가 아닌, 교육적 타당성 검증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충남교총은 17일 충남 유·초·중·고 교원 18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초등 저학년 교육시간 확대 논의에 관한 교원 인식 조사 결과, 정규수업시간 확대를 반대하는 교원은 93.5%, 찬성은 5.3%로 집계됐다고 발표..

`농식품 펀드` 투자까지 수도권 집중… 비수도권은 33.2% 불과
'농식품 펀드' 투자까지 수도권 집중… 비수도권은 33.2% 불과

정부와 민간이 공동 투자하는 '농식품펀드'조차 수도권 기업을 집중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소재 기업 투자금만 비수도권 전체 기업 투자액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재관 의원(충남 천안시을)이 17일 제공한 '최근 5년간(2021~2026.7) 농식품펀드 지역별 투자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투자액 8440억원 중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소재 기업에 투자한 금액만 5638억원(66.8%)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농식품모태펀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자펀드를 결성해 성장 가능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