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칼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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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칼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

김영호 배재대 총장

  • 승인 2018-01-17 06:39
  • 수정 2018-01-18 12:01
  • 김영호 배재대 총장김영호 배재대 총장
배재대김영호총장
김영호 배재대 총장·사회학 박사
우리네 삶이 그러했다. 사람들은 세상에 무수히 나타나는 현상이나 떠도는 말 등에 대해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잘 믿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육감이나 분석적 사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사실로 믿고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속도의 시대인 요즘에는 실체 없는 현상들이 우리들 곁에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이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식별하기에는 너무나 벅차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실재하는 일인지, 아니면 딴 세상의 일인지 헷갈려 하기도 한다.

무술년 새해가 되었지만, 작년부터 이어져온 가상화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가상화폐와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내용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를 못 하겠고 관련 용어 또한 낯설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채굴'이니 '블록체인'(Block chain) 등의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에 대한 설명이 뒤따르지만,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가상화폐에 대해 어찌어찌 이해가 되었다 할지라도 지폐처럼 발행하는 주체가 있거나 국가적 금융시스템을 통한 책임이 분명하지도 않아 의문은 계속된다. 또한 유통 화폐만큼의 금을 예치하는 금본위제, 일정 지불준비금을 예치하고 신용거래를 만들어 내는 지불준비제도 등 기존의 금융 상식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디지털 암호의 가치를 현금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점은 어떤 물질이든, 금이든, 일정부분의 돈이든 가상화폐의 가치를 보증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상화폐에서 돈을 창출하는 과정이 디지털 암호를 푸는 것이라니, 사회학을 전공한 나로서도 난해하기만 하다. 그리고 누가 더 고성능 컴퓨터를 확보하느냐, 누가 더 컴퓨터를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따위의 말끝에 결국 전기료를 회수할 수 있느냐의 채산성 얘기까지 나오면 입맛이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투기, 또는 대박 투자라는 솔깃한 표현들이 버무려져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은 배가 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삶이 영위되었던 세상은 각 시기마다 독특한 흐름이 있었다. 필자의 길지 않은 인생사에서도 시대에 따른 가치의 변화를 적지 않게 경험하였다. 그동안 사람에게 소중한 덕목이라 생각했던 도덕적 가치가 지식과 정보의 가치 앞에, 또는 경제적 가치 앞에 왜소해지는 시대를 살아왔다. 월급봉투를 받아 아내와 현금을 이리 저리 쪼개서 쓸 궁리를 한 소박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신용카드를 쓰면서는 전자기기에 의한 가상의 현금으로 받고 쓰기를 하였다. 심지어 요즘은 플라스틱 카드 대신에 휴대전화에 가상의 카드를 넣어 다니기도 한다. 아날로그시대와 디지털시대 모두를 겪은 나이지만,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마냥 팔짱만 끼고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시대적 무형의 디지털 정보에 익숙해져야 함은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는 의무일 수도 있다. 가상화폐는 발행 주체가 없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될 소지도 있다. 특정 주체에 유리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기존 화폐경제의 고착화된 폐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적 가치를 갖는다는 가상화폐의 발행 과정은 매우 저차원적이다. 그리고 유통 과정 또한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고 무모한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모두의 것이 되어 유용하고 편리하게 활용되어야 할 가상화폐가 소위 대박을 꿈꾸며 투기하는 소수자들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가상화폐 채굴과 투자의 대열에 기웃거린다고 한다. 컴퓨터는 컴퓨터대로 코인을 캐내는 작업으로 밤을 밝히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청년들은 불안정한 거래소를 지켜보느라 빨간 눈으로 밤을 새우는 이 답답한 광경의 실체를 어떻게 봐야할까? 이 상황을 떠올려보고 있자면, 인간과 재화가 화폐라는 상징을 통해 소외되는 시대를 경험해 온 우리 인류에게 더욱이 상징화된 지폐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책임지는 주체도 없는 가상화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광풍이라 불릴 정도의 가상화폐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가려진 현상의 커튼 뒤 본체적 세계에는 칸트가 예견한 숭고함과 도덕률이 있을지, 쇼펜하우어가 예견한 무자비한 파괴의 힘이 있을 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김영호 배재대 총장·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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