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나이보다 떡국

  • 전국

[우난순의 식탐]나이보다 떡국

  • 승인 2018-02-15 00:38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a10328460
게티이미지 제공
추위를 많이 타는 겨울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좋은 것도 있다. 펑펑 날리는 눈과 떡국. 뭐 요즘에는 사시사철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떡국떡을 사다 해먹을 수 있다. 허나 떡국은 온전히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

먹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식탐이 많지만 난 요리에는 큰 재주가 없다. 입맛도 시골스러워 집에서 해먹는 건 한정돼 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국, 미역국 등과 야채를 이용한 간단한 요리가 전부다. 라면 수제비도 종종 해먹었으나 밀가루가 장에 좋지 않다는 의사의 조언으로 지금은 아주 가끔 먹는다. 초년의 입맛은 평생을 간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어릴 적 엄마가 해 준 음식이 당긴다.

초겨울 시골 집에서 김장용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를 가져와 냉장고에 가득 넣으면 한 겨울 반찬 걱정은 끝이다. 냉장고를 열어 볼 때마다 흐뭇한 눈으로 그것들을 쓰다듬어 보곤 한다. 떡국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겨울이 오면 떡국떡을 사는 단골 떡집이 있다. 우선 떡국떡을 찻물에 담가놓고 육수를 끓인다.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만든 육수에 떡살을 넣어 어느 정도 익으면 다진 마늘을 넣는다. 떡국이 거의 다 되면 계란을 풀어 넣고 휘휘 저어준다. 마지막으로 깨소금 듬뿍 뿌리고 김을 가위로 잘라 올린다. 난 짠 걸 싫어해서 소금은 따로 넣지 않는다. 육수만으로도 간간하기 때문이다. 아 참, 홍합도 넣으면 정말 맛있다. 반찬은 사곰사곰 익은 배추김치 하나면 된다. 떡국 두 그릇에 김치 한 보시기로 그날 저녁은 거한 만찬인 셈이다.

이제 모든 게 기계화가 된 요즘, 진한 설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사음식도 웬만하면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오고 북새통을 떨던 방앗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설이 오면 시끌벅적한 떡방앗간 풍경이 생각난다. 가래떡 빼러 갈 때 늘 엄마를 따라가곤 했다. 물에 불린 쌀이 쫀득한 가래떡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모습은 어린 나이에 아무리 봐도 신기하기만 했다. 방앗간 주인이 김이 펄펄 나는 가래떡을 일정한 간격으로 끊는 건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옆에서 주인이 잘라주는 떡을 부지런히 양은 대야에 담다가 하나를 집어 내게 먹으라고 건넨다.



가래떡이 살짝 굳으면 간식으로도 그만이다. 조청을 듬뿍 찍어 먹으면 그 맛이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 조청은 식혜물을 가마솥에서 하루종일 주걱으로 저어가며 뭉근히 끓여야 한다. 도 닦듯이 끈기를 요한다. 짙은 갈색으로 굳으면 달콤하고 구수한 조청이 된다. 많이 만들 수 없는 귀한 꿀이기 때문에 엄마는 조그마한 항아리에 담아 찬장 깊은 곳에 숨겨 놓는다. 내 눈에 발견되면 도둑고양이처럼 몰래몰래 훔쳐먹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없는 틈을 타 검지 손가락을 조청 항아리에 쑥 집어넣어 묻힌 조청을 누가 볼세라 재빨리 핥아먹을 때의 스릴이란….

설날 아침이면 으레 엄마가 속상해 하는 일이 있었다. 큰언니는 떡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큰언니는 엄마에게 도시로 일찍 나가 직장에 다니느라 고생해서 늘 맘이 쓰이는 맏딸이었다. 그런 딸이 오랜만에 설에 와서 잘 먹지도 않으니 엄마는 속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명절만 되면 이 세상에 없는 언니 얘기를 한다. 엄마에겐 제일 맘이 걸리는 자식이다. 부모로서 못해 준 것만 생각나는 모양이다. 부모 맘이란 그런 걸까.

즐거운 설이 왔다. 명절은 내겐 포식하는 날이다. 혼자 살며 해먹는 밥이란 사실 그저 그렇다. 간소하기 이를 데 없다. 대개 1식 3찬도 안 된다. 찌개 하나에 구운 김 정도 놓고 먹는다. 설이 다가오면 엄마에게 떡국 노래를 한다. 엄마는 "넌 맨날 밥도 안 먹고 사니?"라며 혀를 끌끌 찬다. 설 아침에 내가 먹는 떡국은 두 그릇은 기본이다. 떡국 수대로 나이를 친다면 난 100살이 훌쩍 넘는다. 아무려면 어떠냐. 나이보다 떡국이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금강 세종보' 철거 VS 가동'...시민 여론 향배는 어디로
  2. 한화 이글스 반격 시작했다…한국시리즈 3차전 LG 트윈스에 7-3 승리
  3. 신탄진역 '아가씨' 성상품화 거리 대응 시민들 31일 집결
  4. [썰] 전문학, 내년 지선서 감산 예외 '특례' 적용?
  5. 국민의힘 대전시당 신임 위원장에 이은권 선출
  1. 충남대, 제2회 'CNU 혁신포럼’…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정책 대응 논의
  2. '수능약?' 전문의약품을 불안해소 오남용 여전…"호흡발작과 천식까지 부작용"
  3. [세상읽기] 변화의 계절, 대전형 라이즈의 내일을 상상하며
  4. "사업비 교부 늦어 과제 수행 지연…" 라이즈 수행 대학 예산불용 우려
  5. 한남대, 조원휘 대전시의장 초청 ‘공공리더십 특강’

헤드라인 뉴스


`빛 바랜 와이스의 완벽 투구`…한화, 한국시리즈 4차전 LG에 역전패

'빛 바랜 와이스의 완벽 투구'…한화, 한국시리즈 4차전 LG에 역전패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30일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KS, 7판 4선승제) 4차전을 4-7로 패배하며 벼랑 끝에 몰렸다. LG는 이날 경기 결과로 시리즈 전적을 3승으로 만들며 우승까지 한 걸음만을 남겼다. 한화는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LG를 맞아 4-7로 패배했다. 먼저 득점을 낸 건 한화다. 4회 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오른 황영묵은 번트로 1사 2, 3루 기회를 만들었고, 다음 순서로 나선 하주석이 적시타를 쳐내며 선취점을 만들었다. 한화..

대전시, 상장사 성장 지원 본격화… 전 주기 지원체계 가동
대전시, 상장사 성장 지원 본격화… 전 주기 지원체계 가동

'일류경제도시 대전'이 상장기업 육성에 속도를 내며 명실상부한 비수도권 상장 허브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전시는 지역 기업의 상장(IPO) 준비부터 사후관리까지 전 주기 지원체계를 구축해 기업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2022년 48개이던 상장기업이 2025년 66개로 늘어나며 전국 광역시 중 세 번째로 많은 상장사를 보유하고 있다. 시는 이러한 성장세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시민 인식 제고를 병행해 '상장 100개 시대'를 앞당긴다는 목표다. 2025년 '대전기업상장지원센터 운영..

한화 김경문 감독 "김서현, 감독 못지 않은 스트레스 받았을 것"
한화 김경문 감독 "김서현, 감독 못지 않은 스트레스 받았을 것"

"감독 못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친구다. 감독이 포옹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은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LG 트윈스와의 4차전을 앞두고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전날 구원 투수로 활약을 펼친 김서현 선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심우준이 9번에 다시 들어왔다. 어제 큰 힘이 되는 안타를 친 만큼, 오늘도 기운을 이어주길 바란다"라며 전날 경기 MVP를 따낸 심우준 선수를 다시 기용하게 된 배경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