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지칭개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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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지칭개가 뭘까요?

  • 승인 2018-03-23 09:0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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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 지칭개라는 녀석이다.데쳐서 바로 먹을 수는 없다. 엄청 쓰기 때문에 물에 하룻밤 담가놔야 한다.봄에 나는 나물은 다 쓴 맛이 난다.몸에 좋다는 얘기다.
일요일 퇴근 길 용두시장 주택가를 지나다 정겨운 장면을 만났다. 대문 앞에서 아주머니가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탄성을 지르며 발걸음을 멈췄다. 지칭개라는 봄나물이었다. 풍년초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나물을 뒤적이면서 어디서 뜯었냐고 물었다. "흑석리에서 좀 더 들어가면 시골 동네가 있어. 거기 나물이 많더라고. 이 지칭개 갖다 먹어. 많이 뜯어왔응께." 아주머니는 비닐 봉지에 지칭개를 한아름 담아 내 손에 들려줬다.

대전 용두동에 10년 넘게 살다보니 토박이 주민들과 안면을 트게 됐다. 가게 주인들이야 물건을 사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만 이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는 퇴근길에 종종 보다가 어느날 다짜고짜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웬 모르는 처자가 인사를 하나 싶어 의아해 하다 반갑게 웃어줬다. 그 뒤론 만나면 안부도 묻는 사이가 됐다. 집 앞엔 늘 박스 더미가 있는 걸로 봐서 아주머니도 박스를 모아 용돈을 마련하는 모양이다. 올 봄, 부잣집 마나님한테선 볼 수 없는 인심 덕에 일찌감치 봄나물을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중학교 때까지 봄이 되면 나물을 뜯으러 다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바구니 들고 들판을 쏘다녔다. 예전 시골 밥상은 가공식품이 없었다. 기껏해야 소시지부침이 전부였다. 다 자연에서 나는 걸로 밥상을 차렸다. 하여 계절마다 밥상위의 반찬이 달랐다. 봄에는 산이고 들이고 반찬거리가 천지였다. 서너시간 발품 팔다 보면 바구니에 나물이 가득해진다. 냉이, 담배나물, 깨나물, 쪼꼬시, 씀바귀, 지칭개, 박작쪼가리, 논나시, 코딱지나물, 쇠스랑깨비…. 이름도 재밌는 나물들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고추장, 된장, 마늘, 깨소금을 넣고 무쳐 먹으면 그 쌉싸레한 맛을 무엇에 비할까.

동네 앞 들판엔 자운영 논이 있었다. 논 주인이 거름으로 쓸 요량으로 논에 자운영을 심었다고 한다. 헌데 그 자운영 논이 '논나시' 천국이었다. 논나시는 냉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땅이 촉촉한 논에서만 자란다. 말하자면 논나시는 논에서 나는 냉이로, 줄여서 논나시가 된 셈이다. 예전 시골에선 냉이를 나싱개라 불렀으니 내 추측이 틀리진 않을 것이다.

봄마다 자운영 논엔 논나시 뜯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논나시를 매일 뜯어도 가 보면 또 나 있곤 했다. 논나시 밭은 화수분 같았다. 논 주인이 요술을 부린 걸까. 왜 자운영 논만 논나시가 쎄고 쎘는 지 모른다. 자운영도 나물로 먹는다. 자운영은 넝쿨로 땅에 가지를 뻗어 자란다. 꽃은 짙은 분홍색으로 무더기로 피어 있는 모습이 황홀하기 그지 없다. 꽃이 피기 전에 이파리가 돋은 연한 줄기를 잘라 먹는다. 논나시와 자운영을 실컷 뜯다가 졸리면 융단 같이 폭신한 자운영 위에 누워 파란 하늘을 이불 삼아 친구들과 깔깔대곤 했다.

동네 끄트머리에 있는 집에 상범이라는 아이가 살았다.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걔네 집엔 여자는 엄마뿐이었다. 아들만 넷을 둔 데다 걔 엄마가 늘 몸이 아프고 가냘퍼 마을 어른들이 측은해 했다. 딸이 없어 부엌 일을 온전히 상범이 엄마가 다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선 남자가 부엌 일 하는 게 익숙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상범이가 형과 함께 논나시를 뜯으러 온 게 아닌가. 처음에 우리는 신기해했지만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상범이 엄마는 엄마 대신 나물을 한 바구니 뜯어 오는 아들들이 얼마나 기특했을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골에선 거지를 보는 일이 흔했다. 전쟁의 후유증이었으리라. 우리 동네서 20리쯤 떨어진, 시장도 있고 제법 규모가 큰 마을 다리 밑에 거지 소굴이 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있었다. 거지가 동네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아이들은 동냥하는 거지 뒤를 떼를 지어 졸졸 따라다녔다. 밥 먹는 일도 잊을 정도였다. 엄마는 집안 살림이 넉넉지 않았지만 인정이 많았다. 동짓 날 팥죽을 한 솥 끓여 동네 사람들을 불러 대접하는가 하면 엄마 된장찌개가 맛있다는 친척 아줌마를 걸핏하면 불러 우리와 저녁을 같이 먹곤 했다.

거지 할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4월 쯤이었나.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을 먹으려는 참에 거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동냥하러 들어왔다. 엄마는 개다리 소반에 밥상을 따로 차려 우리 식구 옆에서 먹도록 했다. 반찬 서너 개와 나물 무침 한 대접과 함께 말이다. 그 날 우리 식구와 거지 할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동네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호기심 속에서 저녁을 먹었다. 봄은 모진 추위를 이겨낸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생명은 그렇게 질기다. 언 땅을 비집고 올라온 냉이의 향은 어떤가. 씀바귀는 이름대로 쓰다. 봄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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