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칼럼] 갑을시대(甲乙時代) 되짚어 보기

  • 오피니언
  • 중도칼럼

[중도칼럼] 갑을시대(甲乙時代) 되짚어 보기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8-04-25 08:06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손종학 01086489915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한 국내 항공사 임원이 업무 관계자들에게 저지른 행태에 관한 보도는 분노를 뛰어넘어 우리를 참으로 슬프게 한다. 그리고는 보다 본질적인 물음에 맞닥뜨리게 한다. 과연 우리는 같은 인간인 것인가? 도대체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 사회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애초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기나 한 것일까?

30년도 넘은 법과대학 신입생 시절, 겨우 빡빡머리를 벗어나 참으로 경외감(?)을 갖고 들어간 법학 수업에서 교수님을 통하여 배운 법학의 시작점은 갑(甲), 을(乙), 병(丙)이었다. "갑이 을로부터 A 토지를 매수하였으나 미처 소유권이전등기를 해가기 전에 을이 위 토지를 다시 병에게 이중으로 매도하고, 병이 자기 앞으로 먼저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을 때, 갑이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는 무엇이 있을까?" 또는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매도인을 갑이라 하고, 매수인을 을이라 한다." 뭐, 이런 식이었다. 이때의 갑과 을은 단순히 법률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편의상 부르는 당사자의 약칭에 불과하였다. 그 이후로 법조 영역에 기대어 살아오면서 여전히 갑, 을, 병을 떠나지 못 하고, 오늘도 내가 선생이 되어 학생들에게 갑, 을, 병으로 법이론과 법률관계를 강의하고 있다. 아마도 법조계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는 이들 용어와 같이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갑과 을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법률관계에서 편의상 붙이는 용어가 아닌 경제적, 사회적, 권력적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과 그를 통하여 끝없는 고통을 당하는 약자적 지위의 을이라는 용어가 되어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과 불합리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사회언어'가 되었다.

갑질, 갑의 횡포, 을지로위원회 등으로 표현되는 단어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 용어는 단순히 경제적 영역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사회 전영역에 퍼져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사업주의 피고용인에 대한, 권력자의 비권력자에 대한, 재벌의 중소기업에 대한, 교수의 학생에 대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고객의 서비스 담당자에 대한, 정규직의 계약직에 대한, 금수저의 흙수저에 대한 갑질의 횡포는 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러한 현상이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면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갑질문화를 시급히 척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혹시 우리가 둘러보아야 하지만 미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우리 모두는 본인은 갑의 횡포를 겪은 적은 있지만 갑질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아니 갑질을 할 위치인 갑이 아닌 피해만 당하는 을의 위치에만 있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껍질만 속으로 살짝 들어가 보자. 재벌로부터 갑질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사장은 힘없는 부하 직원이나 납품업자에게, 감독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코치는 다시 자신의 후배나 선수에게, 사장에게 당한 직원은 다시 하급자에게 또 다른 갑질을 한 적은 없는 것인지? 적어도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답할 수는 없지 않을까? 요는 나도 그 누군가에게는 갑일 수 있고, 나의 행동이 크고 작은 갑질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점에 대한 인식에 둔감하다면 우리 사회의 갑을문화는 결코 쉽게 고쳐질 수 없을 것이다.

갑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되짚어 볼 일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확실한 인식을 공유하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같은 인간임을, 대한민국의 최고법인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고 천명하고 있고, 그 헌법은 서슬 퍼렇게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그러기에 생활영역 곳곳에 퍼져 있는 갑질문화는 단순히 나쁜 문화가 아닌 반인간적이자 반헌법적인 행태임을...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천 계양구, 작전동 일대 1168억 투입해 '대형 하수도 수술'
  2. 세종 아파트값 상승폭 확대… 대전·충북은 둔화, 충남은 하락폭 축소
  3. 아산시, " 10cm의 기적, 모두가 누리는 1층" 사업 마무리
  4. 천안시, 8일 '천안삼거리 떡 페스티벌' 개최
  5. 충남콘진원, 당진시민 초청 영화 '군체' 앵콜 특별상영회
  1. 천안동남소방서, 어린이 눈높이 맞춘 소방안전 체험교육 실시
  2. 한기대, 연구실 안전관리 노하우 공유
  3. 천안시복지재단, 한창이지엠 창립 20주년 기념 김장 나눔 행사
  4. 충남혁신센터, '창업 BuS-100번가의 톡' 10월 IR서 8개사 투자 무대 올라
  5. 상명대 국어문화원, 충남 국어책임관·국어문화원 공동 연수회 개최

헤드라인 뉴스


충남대 통합 재추진 시동…이번엔 학내 반대 여론 넘을까

충남대 통합 재추진 시동…이번엔 학내 반대 여론 넘을까

충남대학교가 국립공주대학교와의 통합을 재추진하기로 했지만, 짧은 시간 내에 학내 반대 여론을 돌릴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통합안 제출 시한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존 통합안을 수정하기보다는 구성원들에게 통합의 필요성과 세부 내용을 다시 설명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대학본부의 설득 전략이 실질적인 동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충남대는 지난달 29일 학무회의를 열고 국립공주대와의 통합 재추진을 의결했다. 당초 이날 오전 통합 재추진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발표를 약 2시간 앞두고 일정을 돌연 연기하는..

충청권 광역 BRT 운영체계 새판…4개 시·도 협력 시험대
충청권 광역 BRT 운영체계 새판…4개 시·도 협력 시험대

충청권을 잇는 광역 간선급행버스체계(BRT)의 운영과 재원 마련 기준이 새롭게 세워지면서 4개 시·도 협력체계 구축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앞서 중앙정부가 BRT 사무를 처음으로 지방에 위임한 데 이어 지역 차원의 운영 기반이 갖춰지며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충청광역연합의회 초광역건설환경위원회는 30일 제12회 정례회 제1차 회의를 열고 충청광역연합 광역간선급행버스체계(BRT) 운영 조례안과 특별회계 설치 및 운용 조례안을 각각 원안 의결했다. 이는 앞서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의 BRT..

은행서 정기예금 연 4% 이상 금리 비중 2년 9개월만에 두 자릿수로 `껑충`
은행서 정기예금 연 4% 이상 금리 비중 2년 9개월만에 두 자릿수로 '껑충'

국내 은행에서 신규 취급한 정기예금 중 연 4% 이상 금리가 적용된 예금 비중이 2년 9개월 만에 두 자릿수로 올라섰다. 시장금리 상승 속에서 각 은행이 특판 상품을 선보이며 금리 경쟁을 벌인 결과다. 1일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9월 예금은행이 신규 취급한 정기예금 중 금리가 연 4% 이상인 비중은 10.6%로 집계됐다. 8월 0.5%에서 한 달 만에 10.1%포인트 치솟았다. 비중이 10%를 넘은 것은 2023년 12월(42.6%) 이후 2년 9개월 만이다. 2024년 1월 6.7%로 떨어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 미래 진로직업 체험 미래 진로직업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