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영혼의 가자미 미역국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영혼의 가자미 미역국

  • 승인 2018-11-07 09:11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가자미 미역국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서 미역국에 넣는 고기는 소고기나 닭고기 정도다. 내가 어릴 적엔 집집마다 돼지며 소, 닭 등 가축을 키웠다. 닭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거나 볍씨, 싸라기를 먹으며 컸다. 이렇게 자란 닭을 잡아 미역과 함께 끓이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 10여년 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먹은 미역국은 여태까지 먹었던 미역국과는 달랐다. 복국을 시켰는데 에피타이저 격으로 먼저 미역국이 한 대접 나왔다. 미역국엔 생선 뼈가 수북히 들어 있었다. 회를 뜨고 난 뼈를 사골 고듯이 미역을 넣고 푹 끓인 것이었다. 그날 복국은 나한테 찬밥 신세였다. 미역국만 두 대접을 들이켰으니 배가 불러 복국 들어갈 자리가 남아날 리가 없었다. 주객이 전도돼 버린 것이다.

지난 주 내내 영남 알프스에 있었다. 영남 알프스는 울주, 밀양, 양산 등에 걸쳐 있는 백두대간의 한 줄기다. 오래 전부터 별렀던 터라 기대가 컸다. 과연 산세가 남달랐다. 왜 '알프스'란 별칭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1천m 이상의 산들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울산을 에워쌌다. 하루에 산 하나씩 올랐다. 명상하듯, 구도하듯 내 몸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깊은 숨을 토해내며 한 발, 한 발 산 정상을 향해 기어올랐다. 광막한 사막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별을 좇아 고행하는 시타르타의 깨달음에 눈곱만큼이라도 다가갈 수만 있다면….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 둘 켜지는 낯선 도시의 늦은 오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자석에 끌리듯 들어간 곳은 미역국 전문식당이었다. 조개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전복 미역국, 그리고 가자미 미역국. 두말 않고 가자미 미역국을 주문했다. 뽀얀 국물에 미역 건더기가 푸짐했다. 그 속에 신선한 가자미 한 마리가 다소곳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문득 인연이란 뭘까 생뚱맞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속초 바닷가의 그 귀여운 할머니는 안녕하실까. 자그마한 체구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길 가 허름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피우던 멋진 할머니. 일면식도 없는 여행자를 기꺼이 집에 초대해 가자미 한 마리를 기름에 튀겨 밥을 먹으라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굵게 쌍꺼풀진 부리부리한 눈매의 할머니는 담배 몇 갑을 사서 손에 쥐어주자 아이처럼 좋아했었지. "다음에 오면 꼭 들러."

의식을 치르듯 정성스럽게 가자미 살점을 발라먹었다. 부드러운 생선살이 씹히면서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바닷가라 그런지 생소한 반찬이 보였다. 서빙하는 점원한테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만면에 웃음을 띠며 꼬시래기란다. 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재미났다. 점원은 반찬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계속 가져왔다. 그녀의 진심어린 상냥함에 주책맞게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따뜻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며 불현듯 인정이 몹시 그리웠다. 어떤 소설가는 외로움으로 촉발된 배고픔은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있는 음식으로 가라앉히는 게 제격이라고 했다. 엄마의 손맛! 생일날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에 하얀 쌀밥을 말아먹은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내 인생의 대장정의 시원지는 어디일까. 그 곳에서 떠나온 지 어느덧 오십 중반.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랭보는 갓 스물에 시에 대한 열정과 명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랑의 길을 나섰다. 나는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갈 뿐. 오직 그것 뿐이다.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는가. 밥벌이에 찌든 더러운 현실에 침을 퉤퉤 뱉으면 그만이다. 발가락이 부르트고 거기에 딱지가 생기는 희열감을 어찌 표현할까. 밤하늘의 서쪽에 별 하나 돋아나 둥지 찾아 헤매는 이방인 신세를 누려본 자, 안주하지 말지어다. 희미한 전등빛이 흘러나오는 울산의 어느 골목집. 그 곳에서 풍기는 진한 바다내음만큼 내 삶도 역동적일까.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도시공사 신임 사장에 이효식 전 대전시 주택정책과장 임명
  2. '2기 조사중지' 벽 넘었다… 3기 진실화해위, 충청 미군 민간인 희생 29명 '진실규명'
  3. 아산시의회, 하반기 의정연수 성료
  4. 아산축협, 양계농가에 Ai 면역증강제 지원
  5. 아산시, 숙박업소 30곳에 위생물품 지원
  1. 아산시, 체납자 맞춤형 징수 본격화
  2. 수능·내신 대전환에 국제중 인기…7년 새 지원자 73.6% 증가
  3. 아산시, 2027년도 국비 확보 '총력'
  4. 배관중 천안시의원, 안서동 금호어울림아파트 주민 교통 불편 해소 나서
  5. 상명대 학생들, 서점서 '리타 길들이기' 낭독 공연

헤드라인 뉴스


3기 진실화해위, 충청 미군 민간인 희생 29명 `진실규명`

3기 진실화해위, 충청 미군 민간인 희생 29명 '진실규명'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상교)는 지난 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제8차 위원회를 열고, 과거 2기 진실화해위원회 당시 '조사중지' 결정에 머물렀던 '충청지역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한국전쟁 전후 미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공식 인정하고 29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규명되지 못하고 조사중지 상태로 남아있던 억울한 희생의 진상을 3기 위원회가 재조사해 진실규명 결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진실규명 결정이란 법에 따라 신청 사건 조사..

수능·내신 대전환에 국제중 인기…7년 새 지원자 73.6% 증가
수능·내신 대전환에 국제중 인기…7년 새 지원자 73.6% 증가

수능과 내신 평가체계 변화로 대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학교 단계부터 학업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국제중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특목고·자사고 진학 실적과 영어 중심 교육환경 등이 맞물리면서 국제중 선호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6일 종로학원이 분석한 2027학년도 국제중 지원 현황에 따르면 전국 5개 국제중 가운데 경쟁률을 공개한 4개 학교의 지원자는 8998명으로 집계됐다. 474명 모집에 평균 경쟁률은 18.98대 1로, 최근 7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원자는 2021학년도 5182명에서 2025학년도 8597명까지 꾸준히..

유성구 직원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국화축제…관람객 호응 `만발`
유성구 직원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국화축제…관람객 호응 '만발'

대전 유성구의 '제17회 유성국화축제'가 형형색색의 국화로 물든 도심 속 정원과 특별한 사연을 담은 조형물로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10월 17일부터 11월 8일까지 유림공원과 유성천 일원에서 열린 이번 축제는 당초 11월 1일까지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관람객들의 높은 관심과 호응에 힘입어 일주일 연장 운영됐다. 특히 모든 국화조형물은 미술이나 조형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이 없는 유성구 직원들이 도면 없이 직접 제작하고 관리하는 작품이다. 이런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실제 한 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깊어가는 가을과 낙엽 깊어가는 가을과 낙엽

  • 난방용품 판매 준비 분주 난방용품 판매 준비 분주

  • 울긋불긋 물든 도심 울긋불긋 물든 도심

  • 대전 갑천4BL 청년주택 공급사업 기공식 대전 갑천4BL 청년주택 공급사업 기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