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휴일의 김치찌개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휴일의 김치찌개

  • 승인 2018-11-28 10:36
  • 신문게재 2018-11-29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밥상 2
한 자리에서 라면 6개를 끓여 후루룩 마시다시피하는 강호동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나름 대식가에 속한다. 음식 앞에서 질보다는 양을 따지는 편이다. 어쩔 수 없는 습성이다. 어릴 적엔 엔간히 음식투정을 부렸지만 고등학교 때 자취생활 하면서 그 버릇이 싹 없어졌다. 대학생 언니랑 자취했는데 생활비가 넉넉지 않아 맘껏 못먹어 늘 허기졌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아마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밥상이 늘 '그린필드'였으니까 말이다. 계란 프라이도 하나만 해서 반씩 나눠먹었다.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건 오뎅이 전부였다. 돼지고기는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재밌는 추억거리다.

가리는 거 없이 다 잘먹는 먹보지만 분명히 싫어하는 것도 있다. 이것저것 섞는 건 딱 질색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트렌드인 것 같다. 한때 학문에서도 통섭이 대세였다. 이걸 모르면 대화의 자리에 끼지 못할 정도였으니 음식도 그렇게 따라가는 모양이다. 어떤 음식은 육·해·공이 다 들어가기도 한다. 삼계탕에 전복이 들어가고 소갈비찜에 문어, 꿩고기가 들어가던가, 하여간 진시황 식탁이 부럽지 않은 화려한 요리 일색이다. 제과회사에서 만드는 건 어떤가. 초콜릿에 씨앗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넣고 초코·딸기우유가 더 잘 팔린다. 내 입맛이 촌스러워서인지 그냥 아무것도 안 들어간 초콜릿이 좋고 흰 우유를 찾는다. 편집부 후배 중에 초코·딸기우유 왕 팬이 있는데 이걸 많이 먹어서 예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초년의 입맛은 평생을 간다고 했다. 요즘들어 부쩍 어릴 적 먹던 음식이 당긴다. 이왕이면 고린내 팍팍 나는 청국장이 맛있고, 한겨울엔 엄마가 끓여주던 비지국이 그렇게 생각날 수가 없다. 음식을 계절별로 치면 봄이 제일 좋다. 산과 들 온갖 나물 천지 아닌가. 봄나물은 향이 강하고 다양해 입맛을 돋운다. 불미나리, 씀바귀, 냉이, 가죽나무 순, 오갈피 잎, 두릅, 쑥, 머위…. 내 요리 솜씨는 형편없지만 한가지 깨달은 건 있다. 나물은 양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재료 본래의 맛을 해치지 않는다. 내가 쓰는 양념은 된장, 고추장과 깨소금 정도? 그것도 아주 조금 넣는다.

직장에 다니니까 아무래도 식당밥을 많이 먹는다. 기름지고 자극적이고 맵고 짜고 단 맛을 피하기 어렵다. 음식은 그래야 잘 팔린다. 다들 집밥같은 식당밥을 원한다지만 막상 음식이 슴슴하면 뭐가 안 들어갔네, 맛이 없네 툴툴거린다. 회사에서의 일은 취미가 아니다. 엄연히 노동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렸다. 당연히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먹는 걸로 지친 하루를 달랜다. 요즘 먹방이 왜 유행이겠는가. 모든 채널이 음식에 목숨 건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고열량의 음식을 산더미만큼 쌓아놓고 누가 더 많이, 빨리 먹나로 내기를 걸듯이 말이다. 설탕으로 범벅된 디저트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안방에서 그걸 보는 시청자는 대리만족을 느끼며 행복감에 젖는다.



지난 주말 칼칼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전날 저녁에 구워 먹은 소고기의 기름이 이마에 띠를 두른 것처럼 개운하지 않아서였다. 신김치에 왕 멸치와 두부만 넣었다. 그것 뿐이다. 돼지고기와 다른 부재료는 일절 넣지 않았다. 따로 양념도 하지 않았다. 기본에 충실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밥 한 공기와 김치찌개만으로 점심을 먹었다. 현미가 들어간 밥을 김치찌개와 함께 입에 넣고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었다. 몸에 달라붙은 찌꺼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상쾌했다. 단순함은 늘 옳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때때로 그게 뜻대로 안돼서 머리가 터질 것처럼 골이 띵띵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땐 이 담백한 김치찌개로 속풀이 하면 되지 뭐.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합강동 스마트시티, 'L1블록 643세대' 본격 공급
  2. 장철민 "새 충청은 젊은 리더십 필요"… 대전·충남 첫 통합단체장 도전 의지↑
  3. 한남대 이진아 교수 연구팀, 세계 저명학술지에 논문 게재
  4. 김태흠 충남지사 "대통령 통합 의지 적극 환영"
  5. 학생들의 헌옷 판매 수익 취약계층 장학금으로…충남대 백마봉사단 눈길
  1. 한국산업은행 세종지점, 어진동 단국세종빌딩에 둥지
  2. 세종충남대병원, 지역 보건의료 개선 선도
  3. 세종청년센터, 2025 청년 도전과 성장의 무대 재확인
  4. 민주평통 동구협의회,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재정립 논의
  5.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 착수… '수산물 유통 중심으로'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 추진으로 급물살을 탄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단체장 출마에 대해 "김태흠 충남지사와 함께 충청의 미래를 위해 역할분담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은 19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가진 오정 국가시범지구(도시재생 혁신지구) 선정 관련 브리핑에서 대전충남행정통합시장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통합시장을 누가 하고 안 하고는 작은 문제이고, 통합은 유불리를 떠나 충청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출마는) 누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과도 상의할 일이다. 김태흠 충남지사와는 (이..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