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목포 아짐 인심 겁나게 좋아부러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목포 아짐 인심 겁나게 좋아부러

  • 승인 2019-02-20 17:01
  • 신문게재 2019-02-21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190220_101921438
졸린 눈을 비비며 목포 터미널 대합실에 들어섰다. 대합실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는데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이 지긋한 남자의 구성진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노래더라? 멜로디는 익숙한데 선뜻 감이 안 잡혔다. '머나먼 저 하늘만 바라보고 울고 있나~.' 아, 하춘화의 '물새 한 마리'였다. 노래솜씨가 보통은 아닌 것 같은 사내의 노래가 이방인의 마음을 적셨다. 아마 취객이 흥에 겨워 부르는 모양이었다. 역시 가인 이난영의 도시 목포였다. 나에게 목포는 치자향의 도시로도 기억된다. 오래 전, 땡볕이 내리꽂는 한여름 목포역 근처에서 맡았던 달콤한 향을 잊을 수 없다. 찌는 듯한 열기속에서 눈부시게 흰 치자꽃과 그 향에 취해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서성였었다.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바다의 물빛이 싱그러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 차가웠다. 목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식량 창고였다. 기름진 호남평야에서 거둬들인 쌀을 목포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대전~목포의 호남선도 쌀 수탈을 위해 설립된 철로였다. 목포역을 중심으로 원도심엔 일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찰서, 은행, 사찰, 면화주식회사 등. 근대역사관에 전시된 사진은 잔악한 일제 침략사와 독립운동사의 숨결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총살당한 독립군의 뱃속에서 흘러나온 내장을 보는 순간 분노감에 몸이 떨렸다. 영화 '1987'의 영화촬영지 '연희네 슈퍼'뒤에는 방공호도 있다. 곳곳에 식민지의 상흔이 배어 있었다. 이곳 서산동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부촌이었다고 한다. 가수 남진도 이곳 출신이란다. 그러나 지금은 여행자들의 웃음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산비탈에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집들은 허물어져 가고 있다. 빈집의 버려진 세간살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바람에 뒹굴었다. 그 틈에 시멘트 담벼락에선 새싹이 돋아났다.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비루한 삶도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선창으로 갔다. 머스터드 소스가 듬뿍 뿌려진 바게트에 우유 하나로 아침을 때운 터라 뱃속이 느글거렸다. 잿빛 구름이 깔린 하늘이 한층 낮아 보였다. 고깃배들이 꽉 들어찬 항구는 장관이었다. 몇몇 배는 울긋불긋 깃발이 나부꼈다. 올 한해 만선을 비는 의식을 치른 모양이었다. 전날 술을 거하게 펐는지 눈에 핏발 선 남자 둘이 쭈그리고 앉아 얘기 중이었다. 요즘 무슨 고기를 잡냐고 물으니 "지금은 술 먹는 철이랑게요"라며 껄껄 웃었다. 선원들 중엔 동남아인들도 많았다. 르포 작가 한승태가 진도 꽃게잡이 어선에서 40일동안 일한 기록은 바다가 결코 선심을 베푸는 곳이 아님을 보여준다. 바다가 좋아서 배를 탄다는 지은이의 고백에 선배 선원은 코웃음을 쳤다. "그림같은 바다? 좆까고 있네." 바다란 언제든 선원들을 익사시킬수 있는 살벌한 일터라는 얘기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아무래도 밥부터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항동시장으로 들어가는 후미진 골목이 보였다. 옹색한 식당들은 오랜 세월 이곳에서 밥을 먹고 산 상인들의 고단함을 말해주었다. 뜨끈한 국물이 간절했다. 먼지 낀 출입문에 해장국이라고 쓰인 식당문을 열고 들어갔다. 70대로 보이는 세 여인이 난롯가에 앉아 잡담 중이었다. 그런데 영업을 안한다고 했다. 난감해하는 나에게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가 지금 밥을 묵을낀데 같이 드소"라며 의자를 권했다. 우거지넣은 돼지등뼈탕과 갈치·삼치 구이에다 젓갈, 겉절이 등이 나왔다. 그리고 꽁보리밥. 바닷가 음식답게 젓갈이 듬뿍 들어간 음식들이었다. 나중에는 소주 한잔씩 곁들였다. 그 중 한분이 '목포의 눈물'을 뽑아 냈다. '사아고옹의 뱃노오래 가아무울거어리이고~.' 그날따라 소주 맛이 달큰했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여야 지도부 대전 화재 참사 조문 행렬…정청래·조국 희생자 조문
  2. 임전수 세종교육감 6대 분야 공약… 표심 자극
  3. 대전 화재 부상환자들 골절과 신경손상 중복피해 많아
  4. 대전YMCA, 제35대 장현이 이사장 취임
  5. 조문객 발길 이어지는 안전공업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
  1. 대전 문평동 화재 관계기관 합동 브리핑
  2. 사람 없이 AI가 운영하는 공장 KAIST '카이로스' 공개… 100% 국산 기술
  3. 화재참사 안전공업 손주환 대표, 나흘째 공개석상 묵묵부답
  4. 24일 올해 첫 전국연합학력평가…122만 명 응시
  5. 1시17분 신고, 1시53분 국가소방동원령… 그때도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헤드라인 뉴스


직장인 평균 대출 5275만원 `역대 최대치`… 주담대 11%↑

직장인 평균 대출 5275만원 '역대 최대치'… 주담대 11%↑

국내 임금 근로자들의 평균 대출액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대출에서 40% 이상을 차지하는 주담대는 최근 11% 이상 증가율을 보이며 가계대출의 확대를 주도했다. 24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일자리행정통계 임금 근로자 부채'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임금 근로자 개인 평균 대출은 전년 대비 2.4%(125만 원) 증가한 5275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2년 이후 2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7년 이후 최대치다. 임금 근로자의..

"중동發 에너지 위기 넘는다" 25일 0시부터 차량 5부제
"중동發 에너지 위기 넘는다" 25일 0시부터 차량 5부제

중동발(發) 에너지 위기 속 이재명 정부가 25일 0시부터 공공부문 '승용차 5부제(요일제)'를 시행키로 했다. 민간부문에는 자율적인 참여를 권장했다. 미국-이란 전쟁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공공에는 의무를, 민간에는 자율을 적용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에너지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원유 자원안보위기 '주의' 경보 발령에 따른 대응 계획을 보고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승용차 5부제는 25일부터 전기차와 수소차를 제외하고 의무적으로 시행된다. 공공기관은 이미 관련 규정에 따라 5부제..

두쫀쿠 가고 버터떡 왔다… 급변하는 유행에 지역 자영업자도 고민
두쫀쿠 가고 버터떡 왔다… 급변하는 유행에 지역 자영업자도 고민

전국적으로 대유행을 이끌던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 인기사 사그라들고, 버터떡이 새로운 트렌드로 확산되면서 대전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한숨이 커지고 있다. 두바이초콜릿에서 탕후루, 두쫀쿠로 이어진 유행의 바통 시간이 갈수록 짧아져 이번 버터떡 역시 두쫀쿠 처럼 악성 재고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대전 자영업계에 따르면 2025년 10월 시작된 두쫀쿠 트렌드가 올해 2월까지 6개월가량 인기를 끌다 최근 들어 급격히 식고 있다. 한때 두쫀쿠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지역 매장 앞에는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안전공업 화재사고 희생자를 향한 애도 물결 안전공업 화재사고 희생자를 향한 애도 물결

  • 2026년 진잠향교 춘계 석전대제 2026년 진잠향교 춘계 석전대제

  • 합동분향소 찾은 정청래 대표 합동분향소 찾은 정청래 대표

  • 국립대전현충원 찾은 김태흠 지사 국립대전현충원 찾은 김태흠 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