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오매, 징헌 냄새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오매, 징헌 냄새

  • 승인 2019-10-16 16:32
  • 신문게재 2019-10-17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홍
세상 밖으로 나서기엔 이른 새벽. 먼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어둠을 헤치고 발소리를 죽이며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이웃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된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찬 기운이 폐부 깊숙이 들어가 밭은 기침이 나왔다. 간밤에 발작적인 기침으로 잠을 설쳤다. 목감기의 뒤끝이었다. 서대전역 근처 컴컴한 골목에 사내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성거렸다. 새벽마다 인력시장이 서는 모양이다. 저들은 오늘 어디서 일용할 양식을 구할 것이며 나는 어느 길에서 안식을 구할까. 타고난 비관주의자에게 신의 가호가 있나니. 여행은 이 보잘 것 없는 존재에게 비범한 삶을 부여한다.

나주 영산포 홍어의 거리에 꿉꿉한 비린내가 진동했다. 가게마다 홍어 써는 아낙네들의 손이 분주했다. 휴일 오후 영산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따가운 햇살에 맥을 못췄다. 이층건물로 된 식당은 유명세를 탔는지 사람이 많이 드나들었다. 연예인들의 사진과 사인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발길을 돌려 한적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홍어회를 시켰다. 주인은 국산이라고 했다. 발그스름한 홍어는 복숭아빛깔을 띠었다. 접시를 들고 냄새를 들이마셨다. 영락없는 어릴 적 변소 냄새다. 장마철 재래식 변소에서 나는 오래되고 고약한 냄새. 그땐 거길 들어가는 게 끔찍했지. 시각과 후각을 마비시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썩어문드러진 지옥도. 이 냄새를 좇아 나는 멀리 영산포에 와 있는 것이다.



"김치도 홍어 넣고 담근 거제. 김치에 얹어 먹고 초고추장도 찍어서 먹어 보소." 아주머니가 앞에 앉아 이것저것 일러줬다. 육고기 같은 것도 한 접시 나왔다. 홍어 애란다. 간이라고 했다. 소금을 살짝 찍어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었다.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고소한 맛을 느낄 찰나 어느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기 바로 애간장이랑께. 애간장 태우제?" 이번엔 홍어를 김치에 얹어 먹었다. 쾨쾨한 암모니아 냄새가 견딜만 했다. "고온에서 삭히면 톡 쏘는디 지금은 저온 숙성해서 냄새가 들 나요." 옛날 전라도에선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욕을 먹었단다. 모처럼 기름지게 잘 먹어 까딱하면 탈 나는데 삭힌 홍어와 먹으면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홍어가 소화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홍어는 성적(性的) 수사가 난무한다. 김주영의 『홍어』도 그 맥락이다. 소설의 주인공 세영의 아버지는 별명이 홍어다. 아버지가 읍내 주막 여자하고 불미스런 일을 저지르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그럴만한 근거가 나온다. 수컷과 암컷이 교미할 때 암컷이 낚싯바늘에 걸려 배 위로 끌려올라올 때 수컷까지 올라온다. 수컷 거시기에 가시가 달려 있어 그것을 암컷 몸에 박으면 교미가 끝날 때까지 뺄 수 없다. 결국 수컷은 음을 탐내다 죽는다고 적고 있다. 바람둥이 수컷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지막 홍어 한 점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처음과는 달리 푸욱 삭은 냄새가 입 안에 퍼졌다. 기침이 나오면서 박하사탕 같은 화한 느낌이 오감을 자극했다. 진저리를 쳤다. "오매, 징헌 거."



홍어는 흑산도 산을 최고로 친다. 600년 전, 그 홍어가 목포에서 팔리고 나머진 영산강 하구 영산포로 올라왔다. 그 기간 홍어는 곰삭아버렸다. 홍어는 코를 쥐게 하는 지독한 냄새가 났지만 기가막힌 맛이 나는 새로운 음식으로 변모했다. 삭힌 홍어의 탄생이었다. 영산포는 일제강점기 흥망성쇠와 60년대 근대화로 이젠 포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한 번 먹은 영산포 홍어 맛은 잊지 못하는 법. 나주역으로 가는 버스 안 스피커에서 최양숙의 '가을편지'가 흘러나왔다. 친구에게 손편지 쓴 게 언제였더라. 영산포 홍어처럼 깊은 맛이 나는 사람. 난 그에게 어떤 친구일까.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합강동 스마트시티, 'L1블록 643세대' 본격 공급
  2. 과기정통부 '출연연 정책방향' 발표… 과기계 "기대와 우려 동시에"
  3. 최저임금 인상에 급여 줄이려 휴게 시간 확대… 경비노동자들 방지 대책 촉구
  4. 장철민 "새 충청은 젊은 리더십 필요"… 대전·충남 첫 통합단체장 도전 의지↑
  5. 한남대 이진아 교수 연구팀, 세계 저명학술지에 논문 게재
  1. 김태흠 충남지사 "대통령 통합 의지 적극 환영"
  2. 학생들의 헌옷 판매 수익 취약계층 장학금으로…충남대 백마봉사단 눈길
  3. 한국산업은행 세종지점, 어진동 단국세종빌딩에 둥지
  4. 세종충남대병원, 지역 보건의료 개선 선도
  5. 세종청년센터, 2025 청년 도전과 성장의 무대 재확인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 추진으로 급물살을 탄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단체장 출마에 대해 "김태흠 충남지사와 함께 충청의 미래를 위해 역할분담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은 19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가진 오정 국가시범지구(도시재생 혁신지구) 선정 관련 브리핑에서 대전충남행정통합시장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통합시장을 누가 하고 안 하고는 작은 문제이고, 통합은 유불리를 떠나 충청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출마는) 누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과도 상의할 일이다. 김태흠 충남지사와는 (이..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