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결합판매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결합판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1-04-05 08:16
  • 수정 2021-04-05 16:34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이승선 교수
2012년 2월 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방송광고판매대행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7건의 법률안과 1건의 청원을 심사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지상파방송사와 종편은 미디어렙을 통해서만 방송광고를 판매하도록 정했다. 미디어렙은 방송사를 대신해서 광고를 판매하는 사업자다. 다음 날 국회 본회의에서 위원회 대안은 거의 그대로 통과됐다.

'결합판매'도 규정됐다. 법 제20조는 미디어렙으로 하여금 지역방송 등의 광고와 거대 지상파의 광고를 일정 비율 이상 결합해 판매하도록 했다. 이러한 결합판매 계획을 미디어렙의 허가 요건, 이행실적을 재허가 심사 요건으로 규정했다. 2013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14차례 동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결합판매' 제도를 시비 거는 내용의 개정안은 한 차례도 없었다.

미디어렙법이 시행되자 '결합판매' 제도에 대한 공격과 낙인찍기가 끊이지 않았다. 우선 결합판매를 '끼워팔기'라고 매도하는 공격이 전개됐다. 법률적 명칭은 '결합판매'다. 국민의 대표들이 국회 상임위에서 17차례 회의를 열어 여야 간 합의로 만든 제정 법률안의 공식 용어다. 사안이 이러함에도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로 분류되는 '끼워팔기'라고 매도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결합판매는 지역방송의 공공성, 공익성을 담보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이 자기 지역의 방송을 통해 지역 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취지다. 결합판매를 '끼워팔기'라고 부르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혹시 그들의 머릿속에 지역민을 '끼워 팔리는 부수적인 시민들'이라고 폄훼하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을까 겁난다.



이승선
출처: 미디어오늘(2018.8.13.) "지상파 프라임시간대 시청률이 무너지고 있다
결합판매에 대한 낙인찍기도 문제다. 결합판매가 지상파의 광고매출 하락 주범인 것처럼 공격한다. 공격의 지표로 2012년 지상파방송광고 매출액과 현시점의 지상파광고매출액을 비교하는 방법이 활용되곤 한다. 단편적으로 그 숫자만 주목하면 영락없이 그럴듯하다. 다른 지표를 감안하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미디어 오늘' 2018년 8월 13일 기사에 따르면 <표>의 맨 윗줄 기울기에서 보듯이 지상파방송사들의 시청률은 2000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주시청시간대 수도권의 가구 시청률은 2000년 62%였으나 2018년 33%로 거의 절반이 꺾였다. 2012년이 문제가 아니다. 2000년 지상파광고매출은 2조3천여억원으로 전체 방송광고시장의 92%를 차지했다. 그 비율은 2011년 63.6%, 2019년 36.6%가 됐다. 역시 2012년이 문제가 아니다. 20년 전부터 지상파의 시청률 경쟁력과 방송광고매출액은 동반 저성장, 하락해 왔던 것이다.

결합판매가 법에 도입된 2012년 자료만 뚝 떼어서 '요놈이 문제의 출발점이다'라고 진단하면 안 된다. 지상파의 광고매출 하락은 종편의 등장과 경쟁, 스마트폰을 이용한 미디어 소비행태 변화, 지상파프로그램의 편성 경쟁력 등 다양한 요소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즉, 결합판매를 지상파방송 광고매출 하락이나 저성장의 주범으로 공격하는 것은 잘못됐다.

결합판매 제도는 이미 2008년 헌법재판소가 방송광고 규제, 그중에서도 미디어렙에 대한 허가요건으로 쓰임새가 있다며 그 정당성을 부여한 바 있다. 2013년 헌재 결정에서도 방송광고에 대한 규제의 정당성은 다시 확인됐다. 결합판매는 미디어렙 사업자 직업수행의 자유,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이긴 하지만 직업선택의 자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넓은 법률상의 규제가 가능하다. 방송과 방송광고의 공공성, 공익성, 다양성을 실현하려는 입법목적 달성의 적절한 수단으로서 필요한 정도를 넘는 지나친 제한이라고 볼 일도 아니다. 결합판매가 지상파방송사들의 광고매출 하락을 가져왔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방송산업은 지상파사업자, 미디어렙, 지역방송사 간의 긴밀한 유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각종 재원을 기금으로 조성해 지역방송 등을 지원하려는 입법적 노력을 더 강화해야 할 때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4658만$ 수출계약 맺고 거점 확장"… 김태흠 지사, 중국·베트남 출장 마무리
  2. 공회전 상태인 충남교육청 주차타워, 무산 가능성↑ "재정 한계로 2026년 본 예산에도 편성 안 해"
  3. [중도일보 창간74년]어제 사과 심은 곳에 오늘은 체리 자라고…70년 후 겨울은 열흘뿐
  4. [창간74-축사] 김지철 충남교육감 "든든한 동반자로 올바른 방향 제시해 주길"
  5. [창간74-축사] 김태흠 충남도지사 "중도일보, 충청의 역사이자 자존심"
  1. [창간74-축사] 홍성현 충남도의장 "도민 삶의 질 향상 위해 협력자로"
  2. [중도일보 창간74년]오존층 파괴 프레온 줄었다…300년 지구 떠도는 CO₂ 차례다
  3. [한성일이 만난 사람 기획특집-제99차 지역정책포럼]
  4. [창간74-AI시대] 대전 유통업계, AI 기술 연계한 거점 활용으로 변화 필요
  5. [창간74-AI시대] AI, 미래 스포츠 환경의 판도를 재편하다

헤드라인 뉴스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국비확보 또 ‘쓴잔’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국비확보 또 ‘쓴잔’

대전시가 2026년 정부 예산안에서 역대 최대인 4조 7309억 원을 확보했지만, 일부 현안 사업에 대해선 국비를 따내지 못해 사업 정상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운영비와 웹툰 IP 클러스터, 신교통수단 등 지역민 삶의 질 향상과 미래성장 동력 확충과 직결된 것으로 국회 심사과정에서 예산 확보를 위한 총력전이 시급하다. 1일 대전시에 따르면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제외된 대전시 사업은 총 9개다. 앞서 시는 공공어린이 재활병원 운영지원 사업비(29억 6000만 원)와 웹툰 IP 첨단클러스터 구축사업 15억 원..

김태흠 충남도지사 "환경부 장관, 자격 있는지 의문"
김태흠 충남도지사 "환경부 장관, 자격 있는지 의문"

김태흠 충남지사가 지천댐 건설 재검토 지시를 내린 김성환 환경부 장관을 향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지천댐 건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는 김돈곤 청양군수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선출직 공무원"이라고 맹비난했다. 김 지사는 1일 도청에서 열린 2026 주요정책 추진계획 보고회에서 김 장관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화력발전 폐지 지역에 대한 특별법을 추진할 때 그의 반대로 법률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라며 "화력발전을 폐지하고 대체 발전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반대하는 사람이 지금 환경부 장관에 앉아 있다. 자격이..

세종시 `국가상징구역+중앙녹지공간` 2026년 찾아올 변화는
세종시 '국가상징구역+중앙녹지공간' 2026년 찾아올 변화는

세종특별자치시가 2030년 완성기까지 '국가상징구역'과 '중앙녹지공간'을 중심으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할 전망이다. 1일 세종시 및 행복청의 2026년 국비 반영안을 보면, 국가상징구역은 국회 세종의사당 956억 원, 대통령 세종 집무실 240억 원으로 본격 조성 단계에 진입한다. 행정수도 추진이란 대통령 공약에 따라 완전 이전을 고려한 확장 반영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내년 국비가 집행되면, 국회는 2153억 원, 대통령실은 298억 원까지 집행 규모를 키우게 된다. 국가상징구역은 2029년 대통령실, 2033년 국회 세종의사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갑작스런 장대비에 시민들 분주 갑작스런 장대비에 시민들 분주

  • 추석 열차표 예매 2주 연기 추석 열차표 예매 2주 연기

  • 마지막 물놀이 마지막 물놀이

  • ‘깨끗한 거리를 만듭시다’ ‘깨끗한 거리를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