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당신 근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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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당신 근처의 시대

이지완(TJB 기획콘텐츠팀장)

  • 승인 2021-04-26 09:48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이지완 tjb 부장
이지완 TJB 기획콘텐츠팀장
아무래도 우리 민족성에는 집중의 성향이 있는 듯하다.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속담이 있는 걸 봐도 그렇다.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각자의 희망보다 통일을 미덕으로 여긴다. 삼삼오오 소그룹의 자유로운 대화에 '지방방송 끄라'는 말로 핀잔을 주기도 한다. 공간이든 메뉴 선택이든 발언권이든 집중은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원심과 구심, 둘 중에 밖으로 퍼지는 원심보다는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심이 더 센 게 분명하다.

이러한 특성이 지금의 한국사회를 만들었다. 정치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경제적으로는 문어발식 재벌 기업을, 지리적으로는 초고밀도의 서울을 탄생시켰다. 교육에 있어서도 '될성부른 놈 하나'에 집중하는 엘리트 방식을 선호해 왔다. 집안을 일으킬 장남 하나에 집중하고 나머지 형제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은 매우 효율적인 전략임에 틀림없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환경에서 아주 짧은 기간 내에 필요한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해 보이는 과정이 없어서 좋기도 하다. 대통령이, 삼성이, 서울이 결정하면 군말없이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장남 하나에 집중한 결과를 냉정하게 살펴보자. 꿈을 꿀 권리조차 갖지 못하고 맏형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다른 형제들의 불행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설령 맏형이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동생들에게도 풍족함을 선물해 준다고 쳐도 그들이 느끼는 들러리라는 소외감과 박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골로 폄하되는 지방이, 대기업에 치인 중소기업이, 대형마트에 우는 골목상권이 그렇다.

행복하지 못한 건 선택과 집중을 받은 장남도 마찬가지다. 모든 자원을 투입받는 부담감,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자만심에 가득 차거나 지나친 목표의식에 그릇된 방식을 택하는 엘리트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전직 대통령들과 재벌 총수가 구치소에 갇힌 모습은 사회 전체로부터 권력과 기대를 올인(?)받은 결과물인 것이다. 그들이 집중된 권력에 취했든, 과도한 기대에 부담을 느꼈든 불법을 자행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 모른다.

이렇게 집중을 좋아하는 우리사회의 특성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바꾼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이 '동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당근마켓’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역뉴스의 시청률이 올랐다. 구호와 이념으로 포장된 거대담론이 나와 내 삶에 무슨 의미인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에게 더 중요하고 실질적이다. 나는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똑똑해진 사람들이 원심을 만든다. 중앙, 출세, 성공, 집중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며 더 바뀌어야 한다. 당신 근처의 시대에는 더 쪼개고 더 나누어야 한다.

두어 해 전에 거론되던 지방분권 개헌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그러면서 국가기관의 세종 이전이 분권의 전부인 것처럼 포장한다. 서울을 세종으로 대체한다고 지방자치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지방분권은 각 지역이 각자의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는 권력의 세종 집중을 견제해야 할지도 모른다. 재벌 대기업보다 중소벤처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고, 대도시보다 읍면동 풀뿌리 지역이 자치예산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여의도가 아니라 기장군의회, 천안시의회, 대덕구의회, 서귀포시의회에서 더 많은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전직 대통령과 삼성 이건희 부회장에 대한 사면 주장이 나온다. 국민통합이나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사면의 찬반을 넘어서 권력과 기회의 집중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선한 권력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켈트너 교수는 권력은 나눠야 선해진다고 주장한다. 집중은 독재로 이어지게 돼 있다. 분산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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