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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광고사진이 전무하던 시절, 윤광빈 대표가 서울에서 내려와 광고사진계의 한 획을 그었다. 정치인들 프로필 사진에 있어서도 대가이다. 그에게 프로필 사진을 찍은 대전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이 당선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상업 사진 뿐만 아니라 예술혼이 깃든 예술 사진을 찍는데 있어서도 정평이 나 있는 윤광빈 대표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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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 아버님이 군납공장에 근무하셔서 경기도 연천면 산골에서 11살까지 살다가 서울로 왔습니다. 성동기계공고를 다녔는데 국어와 국사, 지리 과목을 좋아하던 저의 적성에는 맞지 않는 학교였습니다. 정밀기계기공사 자격증을 따야 되는 학교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강조하던 시절이라 실력 있는 기능공들을 많이 양성하던 때였죠. 3년 동안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학교였습니다. 친구들은 정밀기계를 다루며 기능올림픽을 제패했죠. 중학교 때 반에서 5등 안에 들어야 갈 수 있던 학교였습니다. 저는 적성에 맞지 않으니까 이를 피하고 싶어 밴드부에 들어갔죠. 졸업 후엔 밴드부 특기생으로 중앙공업전문학교(현 수원 과기대) 기계과에 들어가 대학에서도 밴드부 활동을 하면서 트럼펫을 불었습니다. 군대생활도 화천에서 군악대 생활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 보직을 옮겨 장교식당에서 설겆이와 다듬기를 담당한 후 전역했죠. 그래서 지금도 칼질을 잘합니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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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강제규 감독의 데뷔작 한석규, 진희경, 심혜진 주연 영화 ‘은행나무침대’의 스토리보드를 찍게 됐는데요. 스토리보드는 영화 전 장면의 스틸 촬영을 하는 거죠. 스틸 촬영을 해서 전국 국장에 돌리게 됩니다. 그 영화 제작사 이름이 ‘영화발전소’였습니다. 원래는 ‘포토’라는 이름을 넣으려 했는데 이미 다 있더군요. 그래서 ‘영화발전소’에서 착안해 ‘사진발전소’로 지은 겁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창업 자금 3000만 원을 지원받아 탄방동 뒷골목 지하에서 스튜디오를 시작했는데 처음 6개월간은 일이 하나도 없다가 서서히 일이 들어오기 시작해 NB 백화점, 갤러리아 타임월드 일을 시작하게 됐고, 각 대학교 홍보용 사진과 연구소, 특허청 사진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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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터지면서부터 일감이 줄기 시작해 스튜디오의 반을 줄여 갤러리 탄을 재작년 12월23일 오픈하게 됐습니다. 탄방동의 ‘탄’인데요. 김기창 화백의 수제자인 정명희 화백 작품들 100호 짜리 10여 점으로 한 달간 오픈 개관 기념전을 열었습니다. 그 분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예술혼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죠. 지금은 석은미 작가의 ‘기억 저 너머’ 작품 전시중입니다. 3월30일까지이니 멋진 작품 감상하러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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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프로필 사진을 찍어드린 분이 당선되면 정말 기분이 좋더군요. 요즘은 출판기념회 사진도 많이 찍어드립니다. 최근에는 이선용 시인님 시집 출판 기념회 사진도 찍어드렸죠. 기업 광고 사진을 찍은 후 기업이 발전하면 기업 발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했다 싶어 기분이 좋습니다. 기업 홍보사진을 찍어드린 후 매출이 좋아지면 작은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찍은 광고사진이 길바닥에 뒹굴어 다니고 수명이 짧다 보니 작품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져서 한국사진학회 회원이 되어 작품전을 열고 있습니다. 한국사진학회는 대학 출강 이상 대학교수와 강사들에게 학회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제가 배재대, 중부대, 한남대, 상명대에서 광고홍보와 광고사진영상학과, 교양학부에 출강하며 학생들을 5년간 가르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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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5월에는 대전 MBC M갤러리에서 ‘서시’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전 윤광빈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모놀로그에 이런 글을 썼지요.
‘어느 날 산책길에서 발밑에 떨어져 있는 슬픔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 날 이후 수명이 다하여 버림받고 소외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빛으로 또 다른 생명을 불어 넣고 싶었습니다. 잊혀지기 전에 마음에 붙잡아두고 싶습니다. 만남보다 이별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돌이켜보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입니다.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일로서의 사진, 어떤 모습으로든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내 가슴 속에 남을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합니다.’라고요.
엄청 녹슨 호미는 고생하신 어머니, 녹슨 삽은 아버지, 닳아빠진 숫가락은 자식을 표현했습니다. 오래된 골동품 카메라들, 타다 남아 재가 된 부서진 연탄, 녹슨 철담, 부서진 재봉틀, 낡아빠진 카메라 가방, 녹슨 자전거 폐타이어 등등 제 작품의 소재들을 보면 오래 된 것, 버려진 것들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님은 아마 세계에서 유일하게 ‘손톱’을 소재로 한 사진을 찍으시는 작가님이실 것 같습니다. 특별히 ‘손톱’에 천착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난해 1월에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손톱만큼도 손톱만큼이라도’를 제목으로 한 윤광빈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답니다. 발보다 손이 하는 일이 많으니까, 손이 하는 모든 일을 손톱이 알고 있으니까 노동의 흔적과 삶의 애환이 들여다보이는 손톱을 작품 소재로 삼았습니다. 버려진 아픔도 있을 것인 손톱을 통해 마음을 찍고 싶었습니다.
리플렛엔 이렇게 적었지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거두고, 버리고, 살리고, 죽였던가. 내가 평생 저질렀고 저지를 모든 헛짓거리를 알고 있다. 곧 버려질 것을 알지만 할 일을 다한 후에 미련 없이 떠난다. 손톱 만큼도, 손톱 만큼 만이라도. 우리네 인생 손톱 끝에 달려있다. 작지만 위대한 생성과 소멸. 손톱 그것은...”
여러 해 전부터 수명을 다한 후에 사라지는 것들에 천착해오고 있습니다. 시간, 마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찍고 싶었습니다. 사진은 눈에 보여야 찍을 수 있기에 손톱으로 정했습니다. 여러 지인들이 정성스럽게 모아준 손톱에는 우리들 삶의 흔적, 세월,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사물의 본질에 초점을 맞춥니다. 내 자신이 누구에게 손톱만큼도 못한 존재는 아니었는지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그 무엇에게 손톱만큼이라도 이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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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손톱뿐만이 아니라 닳아버린 비누도 모읍니다. 버려지는 것들에 천착하는 저의 습관입니다. 지금은 실내에서 작업하지만 소재가 달리면 밖으로 나갑니다. 전북의 고택을 찾아가 손톱과 매치시켜 작품을 찍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부모님들의 노고 덕분입니다. 그 점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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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은 대관료 없이 무료 대관해드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대관료도 제대로 받고 싶고 작품 활동도 활발히 해서 명실상부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올해도 20점 정도의 작품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전시장소는 아마도 ‘탄 갤러리’가 되겠지요.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나중 문제입니다. ‘손톱’의 의미를 공감하는 분이 있다면, 그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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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정리 한성일 편집위원(국장)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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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서울 출생. 서울 성동기계공고 졸업. 도쿄 비주얼아트스쿨 상업사진 전공 졸업.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졸업. 상명대 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 커머셜이미징 졸업. 경기도 연천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냄. 충무로에서 광고사진 찍음. 96년부터 대전에 정착해 현재까지 스튜디오 ‘사진 발전소’ 운영 중. 배재대, 중부대, 상명대, 한남대 등 출강했음. 개인전으로 2016년 윤광빈 사진전 <서시> 대전 M갤러리, 2021년 윤광빈 두 번째 개인전 <손톱만큼도 손톱만큼이라도> 경인미술관(인사동)등이 있음.
단체전으로 2007~2020 이마고사진전 등 다수. 2021 이마고국제사진전, 2018 ARTISTERIUM국제미술전 보스니아 국립박물관. 2019 국제사라예보 겨울축제 초청 한국현대사진전(조지아국립박물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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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