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앎은 교과서가 아닌 삶 속에 있는 것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앎은 교과서가 아닌 삶 속에 있는 것

  • 승인 2023-06-29 15:51
  • 신문게재 2023-06-30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이윤혜 증명사진(1)
이윤혜 대전 덕송초 교사
오랜만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학년인 6학년을 맡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10년 만이다. 10년 동안 한 우물을 파다 보니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한 "철학" 같은 것이 생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만들어진 교사로서의 나의 철학은 배움은 교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밖의 실제 나의 삶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을 펼치기에 아무래도 기초 지식을 많이 쌓아야 하는 저학년보다는 고학년과 함께하는 것이 재미가 있다. 남다른 설렘으로 시작하는 새 학년, 올해는 아이들 삶에 녹아나는 수업 만들기에 더욱 몰두해보리라 다짐을 한다.

6학년 국어 교과서 1단원 <비유하는 표현>에는 다양한 시가 담겨 있다.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지만 교실에서 시를 읽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이는 아이들이 시를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시 읽기에 재미를 느끼는 이들이 드물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 속 시의 소재가 '뻥튀기'라면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것 같다. 먹는 것은 아이들의 동기유발을 하는 데 가장 좋은 소재이니까. 아이들과 시를 읽으며 뻥튀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부터 벌써 군침이 돈다.

본격적으로 시를 읽기 전에 아이들과 뻥튀기를 먹은 경험을 나눈다. 학기 초라 아직은 발표에 쭈뼛쭈뼛한 아이들이지만, 역시나 먹는 것과 관련한 이야기에는 적극적이다. "저는 동그란 뻥튀기를 제일 좋아해요", "저는 옥수수 강냉이요." 그래, 오늘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그 뻥튀기에 대한 시를 낭송해보자.

"가을날 메밀꽃 냄새가 납니다…. 새우 냄새가 납니다…. 멍멍이 냄새가 납니다…." 뻥튀기하는 걸 구경할 때 느꼈던 그 고소한 냄새를 상상 속에서 느끼며 아이들과 시를 낭송한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여러분, 혹시 뻥튀기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 있나요?" 15명의 아이 중 반 이상은 손을 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보다 훨씬 적은 2명만이 손을 든다. 뻥튀기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거의 없다니. 과연 뻥튀기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이 아이들이 뻥튀기 시를 마음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그럼 우리 뻥튀기 하는 모습을 지금 실제로 보기 어렵지만, 영상으로 살펴볼까요?" 영상을 보고 나서야 아이들이 시 속에서 뻥튀기하는 모습에서 왜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다고 비유하는지, 폭죽 같다고 하는지 알겠다며 끄덕인다.

그런데도 한편에 아쉬움이 남는다. 뻥튀기 냄새를 후각적으로 비유한 표현도 아이들과 함께 느껴보고 싶은데…. 그러다가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메밀꽃 향기는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 가을날 메밀꽃 냄새 맡아봤나요?" 나도 맡아본 적 없는 그 향기를 도시 아이들도 맡아보았을 리가 없다. "메밀꽃 냄새는 우리가 직접 맡기 어렵겠지만 메밀차를 마시는 걸로 대신해 볼까요?" 무언가를 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아이들의 호응이 뜨겁다. 교실 안에 가지고 있던 메밀차 티백을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메밀차 티백을 받은 아이들이 물병에 티백을 넣는다. 메밀차를 맛본 아이들의 호응도가 예상보다 더 좋다. "선생님, 메밀차가 진짜 뻥튀기랑 맛이 비슷해요.", "둘 다 구수해요.", "선생님, 시에서 뻥튀기 튀기는 냄새에서 메밀꽃 냄새가 난다고 하는지 알겠어요" 오늘 국어 수업은 성공한 것 같다. 다행이다.

아이들과 삶과 배움이 연결되는 수업을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고 싶다. 앎은 교과서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펼쳐나가는 것임을 느끼는 시간을 나누고 싶다. 학년 초, 부모님이 시켜서 공부한다고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1년 후에는 공부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깨닫고, 공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이윤혜 대전 덕송초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허태정표 ‘대전예술가의집 시민 환원’ 현실화되나…관건은 이전 대책
  2. 허태정號 온통대전 부활 예고... 관건은 예산 확보
  3. 포스트 지방선거 공공기관 2차 이전 부상…李대통령 8일 언급하나
  4. 대전교육 오석진號 출범 준비 본격화… 인수위 동부교육청에 마련
  5. [오늘과내일] 재건축은 자산가치와 공동이익을 균형있게 추구해야
  1. 8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전…한전 원인 조사 중
  2. [월요논단] 고향사랑기부, 국민 참여로 지역을 살린다
  3. [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16장-숭어리샘, 나르키소스를 넘어서
  4. 포스트 6ㆍ3 충청 與野 "이번엔 집안 싸움…" 다시 후끈
  5. 66년 만에 이름 찾은 대전고 학생… 국가유공자 김태진 선생, 기념회 천만원 기탁

헤드라인 뉴스


66년 만에 이름 찾은 대전고 학생… 3·8민주의거 12번째 영웅으로

66년 만에 이름 찾은 대전고 학생… 3·8민주의거 12번째 영웅으로

66년 전 교실에서 몰래 구호문을 주고받으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한 학생의 이름이 뒤늦게 역사 앞으로 불려졌다. 1960년 3·8민주의거에 참여하고 최근에서야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김태진 선생(84·대전고 40회)이다. 김태진 선생은 올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뒤 8일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에 1000만 원을 기탁하며, 자신이 참여했던 3·8민주의거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작은 보탬이 되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 선생은 1960년 당시 대전고 2학년이었다. 점심시간 뒤 시위가 있다는 말이 반 대표들에게 전달됐고, 수업 중 몰래 구호문이..

`세종 유일 휴양림` 금강수목원, 정권 교체에 민간 매각 스톱
'세종 유일 휴양림' 금강수목원, 정권 교체에 민간 매각 스톱

중부권 최대 규모이자 세종 유일의 자연휴양림인 '금강수목원'. 최근 민간 매각 절차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소유권을 토대로 매각 절차를 밟아온 충남도와 개발 인허가권을 가진 세종시의 새 단체장 모두 수목원 보전에 힘을 실어온 인물들이다. 9일 충남도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이어진 금강수목원(충남 산림자원연구소) 부지 등의 매각 절차가 잠정 중단됐다. 현시점에선 새로운 도정의 출범이 예고된 만큼, 매각 절차를 멈추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수목원 부지와 건물, 수목 등을..

[세계유산 알쓸신잡] 세계유산 이렇게하면 지위 박탈
[세계유산 알쓸신잡] 세계유산 이렇게하면 지위 박탈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이행지침 192~198조는 세계유산 목록에서의 삭제, 즉, 세계유산의 지위 박탈에 대해서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삭제된 유산은 오만의 아라비아 영양 보호구역(Arabian Oryx Sanctuary),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Dresden Elbe Valley), 영국의 리버풀-해양무역도시(Liverpool Maritime Mercantile City) 등 3건으로, 유산 보존보다 개발을 우선할 경우 세계유산이라는 명예로운 지위를 박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표적 선례다. 19..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대동천 하상주차장 15일부터 폐쇄 대전 대동천 하상주차장 15일부터 폐쇄

  • ‘늑구 보러 왔어요’ ‘늑구 보러 왔어요’

  •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