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국제공항에서 프랑스 레주슈 마을로 가는 'A40 고속도로' 중간 지점에 몽블랑이 보이는 스폿에서 찍은 사진. 가장 왼쪽 설산이 몽 모디(Mont Maudit 4466m), 바로 오른쪽 두루뭉술한 산이 몽블랑(4808m), 그 옆 뽀족한 봉오리가 에귀 드 비오나세(Aiguille de Bionnassay 4052m), 우측 산이 돔 드 미아지(Dome de Miage 3673m)./사진=김형규 여행작가 |
현지 가이드 1명 포함, '투르 뒤 몽블랑(이하 TMB·Tour du Mont Blanc)'에서 동고동락할 13명의 프로필이 궁금했다. 꼬박 하루 걸려 프랑스 TMB 출발지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했다. 트레킹 전날 저녁 숙소인 프랑스 레주슈(Les Houches)의 작은 호텔에서 처음 대면했지만 장시간 비행과 경유지 체류 등으로 녹초가 돼 스쳐 지나가듯 인사만 건넸다. 저녁식사도 각자 해결했다. 일행의 면면은 다음날 이른 조식 때부터 조금씩 익숙해졌다.
기왕이면 능력치와 연령대가 비슷한 분들과 함께 트레킹을 하면 좋겠지만 의외의 성비와 연령대에 놀랐다.
60대 중후반 부부와 20대 대학원생 딸의 3인 가족, 58년 개띠 사업가와 ROTC 장교로 방금 제대한 20대 아들 부자, 60대 중반 부부와 50∼60대로 보이는 또 다른 부부, 그리고 나머지 3명은 각자 온 1인 트레커들이다. 나와 직장인 여성 1명, 그리고 만 68세의 '큰누님'(나이를 알고 자연스럽게 '큰누님', '큰언니'가 됐다).
남녀 각각 6명이고 한창 생업에 종사할 연령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직장인 트레커는 오래전부터 노심초사 만반의 준비를 하고 TMB에 온 열혈임이 분명했다. 힘에 부칠 것 같은 60대 여성이 대거 포진한 게 트레킹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흥미로웠다.
샤모니몽블랑에서 남서쪽으로 8㎞ 떨어진 작은 산악마을 레주슈 마을./사진=김형규 여행작가 |
'개띠' 부자의 경우 아버지는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산에 대한 애착이 컸다. 출발일 전날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하는 나를 위해 함께 식사하자고 배려했다. 덕분에 유럽에서 바다빙어 튀김을 먹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그는 국내 거의 모든 산을 섭렵한 듯했다.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라 듬직하게 전역한 아들과 함께 TMB에 합류했다. 과거 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도산하다시피 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산이 위로해주고 감싸줬다고 밝혔다.
두 쌍의 부부도 국내외 여러 산을 둘러본 듯했다. 홀로 도전한 직장인 여성 트레커는 프로필 사진이 킬리만자로다. 그는 "일 때문에 (등산) 훈련을 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알아보니 TMB 정도는 그냥 와도 될 것 같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3인 가족의 가장은 DSLR 카메라를 메고 나타났다. 렌즈가 15㎝는 튀어나온 카메라에 배낭까지 메고 산을 오르내린다는 건 파손이나 부상 등 위험이 뒤따른다. 낙천적 성격에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찍기를 워낙 좋아하는 듯했다. 큰맘 먹고 가족과 함께 TMB에 나섰지만 준비에는 다소 허점을 드러냈다.
TMB에서 권장하는 트레킹화는 발목을 보호해주는 중등산화이거나 최소한 경등산화에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구조여야 하는데 모녀가 신고 온 신발은 뽀얀 운동화에 가깝다.
이들은 가족이니까 의지할 데라도 있었지만 68세 큰누님의 무모한 나홀로 도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경험이 많아도 8일간 쉼 없이 하루 7∼8시간씩 산을 탄다는 건 그 연령대에선 혹사는 물론 후유증을 무시할 수 없다. TMB의 열망을 이루고픈 큰누님의 도전정신에 모두 '엄지 척'과 함께 무사 완주를 기원했다.
6년 전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라이딩에 나섰을 당시 출발 1주일 전 갑자기 강원도에 사는 당시 70세 남성이 합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행사 측에선 '나이가 많은 게 걸리지만 본인이 독실한 가톨릭신자이고 일생일대의 버킷리스트여서 함께 가길 바란다'고 애원했다. 전문 가이드 없이 구글맵에 의존해 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분의 안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꼬였다. 지역 자전거 동호회 소속에 최상급 산악자전거를 가져왔음에도 그는 첫날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인 피레네 산맥을 업힐하면서부터 체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우여곡절 끝에 완주하고 공인 완주증까지 받았지만 여러 번의 아찔한 고비를 넘겼다. 자전거 고수인 나도 일주일이 지난 600㎞ 지점 이후부터는 초보인 20대 아들에게 체력적으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대부분 마을을 끼고 다녀 유사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깊은 산중의 TMB는 상황이 다르다. TMB에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트레킹을 포기하고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 차량 운행비 30유로를 개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현지시간 7월21일 오전 8시 30분 레주슈의 벨뷔 케이블카 승장장(Teleferique de Bellevue)에서 벨뷔 언덕(1801m)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있는 전세계 트레커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
실비는 "산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점과 "나를 앞서가지 말아달라"는 두 가지를 당부했다.
어설픈 우리말로 "갑시다!"라는 실비의 외침과 함께 TMB는 시작됐다. 실비는 시종일관 친절하게 소통하며 힘들어하는 트레커를 배려하는 보폭을 유지했다. 무릎보호대로 무장한 큰누님도 실비 뒤에 찰싹 달라붙어 따라갔다.
김형규/여행작가
안전한 트레킹을 위해서는 가볍고 튼튼한 장비를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삽', '빨랫줄과 집게', '코골이 키트', '침낭 라이너', '바스켓'. |
슬림하면서 무게도 가벼워 가져가면 유용하게 쓰일 아이템을 골라봤다.
▲빨랫줄=여름에 일주일 이상 유럽을 여행한다면 캠핑용 빨랫줄과 빨래집게가 유용하게 쓰인다. 햇살이 쨍쨍하고 낮이 길어 빨래가 뽀송뽀송 잘 마른다.
▲PVC바스켓=두꺼운 비닐 재질의 캠핑용 설거지통인데 실제는 빨래용도다. 가볍게 더플백이나 캐리어에 욱여넣을 수 있다.
▲미니삽=캠핑용품박람회에서 구입한 기막힌 아이템이다. 가볍고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접이식이어서 휴대에 부담이 없다. 나는 '×삽'이라 부른다. 정신없이 아침을 먹고 산행에 나서다 보면 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으슥한 곳으로 숨어 들어가 큰일을 보고는 은근슬쩍 돌을 올려놓거나 발길질 몇 번으로 덮어보려 하지만 알프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삽'으로 아담하게 땅을 파서 묻는 경건한 자세가 필요하다. TMB에선 공중화장실이 없다고 보면 된다. 산장의 화장실도 수용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코골이 용품=잠자리를 제공하는 산장은 낯선 이들과 군대의 내무반 같은 다인용 침상(도미토리)을 사용한다. 남녀구분도 없다. 귀마개는 필수이며 평소 코를 고는 사람이라면 입막음 테이프나 밴드, 비강확장 스프레이·코고리 등을 준비하면 심리적 불안에서 다소 해방될 수 있고 실제 효과도 있다.
▲라이너=보통 겨울철 침낭의 오염을 막고 개인위생을 위해 쓰이는 내피용 침낭이다. 요즘 TMB 다인용 산장은 트레커들이 각자 라이너를 챙겨올 것을 요구한다.
▲기타=보조배터리는 2만㎃h로 준비하는 게 좋은데 부피가 커지고 무거운 게 단점. 포트를 최소화해서 무게와 부피를 줄인 제품을 찾아라.
등산화가 가장 중요한데 가능하면 새 제품을 구입해 한 달 정도 길을 들여놓는 게 안전하다. 일행 중 수년간 신던, 창갈이까지 한 등산화를 신고 걷다가 밑창이 터져 고생했다. 나의 경우는 중등산화, 경등산화 두 켤레를 챙겨갔다. 자신의 트레킹 족적을 기록할 GPS앱도 유용하다. TMB 산행 중에는 거의 통신·인터넷이 되지 않으므로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 해둔다. 와인 따개도 가져가면 칭찬 듣는다. 등산용 스틱은 미리 사용법을 익혀오는 게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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