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2-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저질러라

  • 문화
  • 여행/축제

[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2-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저질러라

산 좋아하는 전국 노익장들 서먹한 만남
때늦은 도전 응원하지만 후유증 걱정도
누구 보폭에 맞추나 가이드 현명한 판단

  • 승인 2023-09-12 10:11
  • 수정 2023-09-13 10:55
  • 신문게재 2023-09-13 9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트레킹(trekking), '심신 수련을 위해 산이나 계곡 따위를 다니는 도보 여행.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로, 하루에 15~20㎞ 정도 걸으며 야영 생활을 한다'고 사전에 정의돼 있다. '건강'과 '힐링',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트레킹' 열풍 속에 많은 코스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투르 뒤 몽블랑(TMB·Tour du Mont Blanc)'은 대표적 코스로 손꼽힌다.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몽블랑(4810m) 둘레를 일주하는 170㎞ 트레킹 코스다. 보통 프랑스 레주슈(Les Houches)에서 출발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레주슈 바로 윗 도시인 샤모니몽블랑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3개국을 통과한다. 주로 6∼9월 여름철에 세계 트레커들이 찾는다. 올해 7월 '충청도 사나이'의 뚝심으로 '투르 뒤 몽블랑' 트레킹에 도전한 김형규 작가의 여행기를 지면에 옮겨본다. 12월까지 매주 수요일 자에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고속도로서본몽블랑
스위스 제네바국제공항에서 프랑스 레주슈 마을로 가는 'A40 고속도로' 중간 지점에 몽블랑이 보이는 스폿에서 찍은 사진. 가장 왼쪽 설산이 몽 모디(Mont Maudit 4466m), 바로 오른쪽 두루뭉술한 산이 몽블랑(4808m), 그 옆 뽀족한 봉오리가 에귀 드 비오나세(Aiguille de Bionnassay 4052m), 우측 산이 돔 드 미아지(Dome de Miage 3673m)./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전국민 표본집단인가. 어쩜 이렇게 우리나라의 고른 연령대와 남녀 성비를 모아놓았는지 신기했다.

현지 가이드 1명 포함, '투르 뒤 몽블랑(이하 TMB·Tour du Mont Blanc)'에서 동고동락할 13명의 프로필이 궁금했다. 꼬박 하루 걸려 프랑스 TMB 출발지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했다. 트레킹 전날 저녁 숙소인 프랑스 레주슈(Les Houches)의 작은 호텔에서 처음 대면했지만 장시간 비행과 경유지 체류 등으로 녹초가 돼 스쳐 지나가듯 인사만 건넸다. 저녁식사도 각자 해결했다. 일행의 면면은 다음날 이른 조식 때부터 조금씩 익숙해졌다.

기왕이면 능력치와 연령대가 비슷한 분들과 함께 트레킹을 하면 좋겠지만 의외의 성비와 연령대에 놀랐다.

60대 중후반 부부와 20대 대학원생 딸의 3인 가족, 58년 개띠 사업가와 ROTC 장교로 방금 제대한 20대 아들 부자, 60대 중반 부부와 50∼60대로 보이는 또 다른 부부, 그리고 나머지 3명은 각자 온 1인 트레커들이다. 나와 직장인 여성 1명, 그리고 만 68세의 '큰누님'(나이를 알고 자연스럽게 '큰누님', '큰언니'가 됐다).

남녀 각각 6명이고 한창 생업에 종사할 연령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직장인 트레커는 오래전부터 노심초사 만반의 준비를 하고 TMB에 온 열혈임이 분명했다. 힘에 부칠 것 같은 60대 여성이 대거 포진한 게 트레킹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흥미로웠다.

레주슈마을
샤모니몽블랑에서 남서쪽으로 8㎞ 떨어진 작은 산악마을 레주슈 마을./사진=김형규 여행작가
단톡방에 올라온 이들의 프로필 사진은 국내외 유명 산 정상에서 찍은 게 대다수다. 내공이 높다는 얘기다.

'개띠' 부자의 경우 아버지는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산에 대한 애착이 컸다. 출발일 전날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하는 나를 위해 함께 식사하자고 배려했다. 덕분에 유럽에서 바다빙어 튀김을 먹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그는 국내 거의 모든 산을 섭렵한 듯했다.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라 듬직하게 전역한 아들과 함께 TMB에 합류했다. 과거 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도산하다시피 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산이 위로해주고 감싸줬다고 밝혔다.

두 쌍의 부부도 국내외 여러 산을 둘러본 듯했다. 홀로 도전한 직장인 여성 트레커는 프로필 사진이 킬리만자로다. 그는 "일 때문에 (등산) 훈련을 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알아보니 TMB 정도는 그냥 와도 될 것 같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3인 가족의 가장은 DSLR 카메라를 메고 나타났다. 렌즈가 15㎝는 튀어나온 카메라에 배낭까지 메고 산을 오르내린다는 건 파손이나 부상 등 위험이 뒤따른다. 낙천적 성격에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찍기를 워낙 좋아하는 듯했다. 큰맘 먹고 가족과 함께 TMB에 나섰지만 준비에는 다소 허점을 드러냈다.

TMB에서 권장하는 트레킹화는 발목을 보호해주는 중등산화이거나 최소한 경등산화에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구조여야 하는데 모녀가 신고 온 신발은 뽀얀 운동화에 가깝다.

이들은 가족이니까 의지할 데라도 있었지만 68세 큰누님의 무모한 나홀로 도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경험이 많아도 8일간 쉼 없이 하루 7∼8시간씩 산을 탄다는 건 그 연령대에선 혹사는 물론 후유증을 무시할 수 없다. TMB의 열망을 이루고픈 큰누님의 도전정신에 모두 '엄지 척'과 함께 무사 완주를 기원했다.

6년 전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라이딩에 나섰을 당시 출발 1주일 전 갑자기 강원도에 사는 당시 70세 남성이 합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행사 측에선 '나이가 많은 게 걸리지만 본인이 독실한 가톨릭신자이고 일생일대의 버킷리스트여서 함께 가길 바란다'고 애원했다. 전문 가이드 없이 구글맵에 의존해 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분의 안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꼬였다. 지역 자전거 동호회 소속에 최상급 산악자전거를 가져왔음에도 그는 첫날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인 피레네 산맥을 업힐하면서부터 체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우여곡절 끝에 완주하고 공인 완주증까지 받았지만 여러 번의 아찔한 고비를 넘겼다. 자전거 고수인 나도 일주일이 지난 600㎞ 지점 이후부터는 초보인 20대 아들에게 체력적으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대부분 마을을 끼고 다녀 유사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깊은 산중의 TMB는 상황이 다르다. TMB에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트레킹을 포기하고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 차량 운행비 30유로를 개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벨뷔케이블카승강장
현지시간 7월21일 오전 8시 30분 레주슈의 벨뷔 케이블카 승장장(Teleferique de Bellevue)에서 벨뷔 언덕(1801m)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있는 전세계 트레커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다음날 7시 아침을 먹고 가이드와의 첫 미팅이 이뤄졌다. 가이드는 실비(Sylvie)라는 여성이었다. 현지 트레킹 업체 대표는 그녀가 과거 스노보드 세계 챔피언이라고 소개했다. 스피드 세계 챔피언 출신인 그가 맥락을 종잡을 수 없는 우리네 스펙트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실비는 "산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점과 "나를 앞서가지 말아달라"는 두 가지를 당부했다.

어설픈 우리말로 "갑시다!"라는 실비의 외침과 함께 TMB는 시작됐다. 실비는 시종일관 친절하게 소통하며 힘들어하는 트레커를 배려하는 보폭을 유지했다. 무릎보호대로 무장한 큰누님도 실비 뒤에 찰싹 달라붙어 따라갔다.

김형규/여행작가

장비
안전한 트레킹을 위해서는 가볍고 튼튼한 장비를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삽', '빨랫줄과 집게', '코골이 키트', '침낭 라이너', '바스켓'.
※몽블랑 둘레길에 이런 것도 챙겨보세요.

슬림하면서 무게도 가벼워 가져가면 유용하게 쓰일 아이템을 골라봤다.

▲빨랫줄=여름에 일주일 이상 유럽을 여행한다면 캠핑용 빨랫줄과 빨래집게가 유용하게 쓰인다. 햇살이 쨍쨍하고 낮이 길어 빨래가 뽀송뽀송 잘 마른다.

▲PVC바스켓=두꺼운 비닐 재질의 캠핑용 설거지통인데 실제는 빨래용도다. 가볍게 더플백이나 캐리어에 욱여넣을 수 있다.

▲미니삽=캠핑용품박람회에서 구입한 기막힌 아이템이다. 가볍고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접이식이어서 휴대에 부담이 없다. 나는 '×삽'이라 부른다. 정신없이 아침을 먹고 산행에 나서다 보면 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으슥한 곳으로 숨어 들어가 큰일을 보고는 은근슬쩍 돌을 올려놓거나 발길질 몇 번으로 덮어보려 하지만 알프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삽'으로 아담하게 땅을 파서 묻는 경건한 자세가 필요하다. TMB에선 공중화장실이 없다고 보면 된다. 산장의 화장실도 수용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코골이 용품=잠자리를 제공하는 산장은 낯선 이들과 군대의 내무반 같은 다인용 침상(도미토리)을 사용한다. 남녀구분도 없다. 귀마개는 필수이며 평소 코를 고는 사람이라면 입막음 테이프나 밴드, 비강확장 스프레이·코고리 등을 준비하면 심리적 불안에서 다소 해방될 수 있고 실제 효과도 있다.

▲라이너=보통 겨울철 침낭의 오염을 막고 개인위생을 위해 쓰이는 내피용 침낭이다. 요즘 TMB 다인용 산장은 트레커들이 각자 라이너를 챙겨올 것을 요구한다.

▲기타=보조배터리는 2만㎃h로 준비하는 게 좋은데 부피가 커지고 무거운 게 단점. 포트를 최소화해서 무게와 부피를 줄인 제품을 찾아라.

등산화가 가장 중요한데 가능하면 새 제품을 구입해 한 달 정도 길을 들여놓는 게 안전하다. 일행 중 수년간 신던, 창갈이까지 한 등산화를 신고 걷다가 밑창이 터져 고생했다. 나의 경우는 중등산화, 경등산화 두 켤레를 챙겨갔다. 자신의 트레킹 족적을 기록할 GPS앱도 유용하다. TMB 산행 중에는 거의 통신·인터넷이 되지 않으므로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 해둔다. 와인 따개도 가져가면 칭찬 듣는다. 등산용 스틱은 미리 사용법을 익혀오는 게 유리하다.

사본 -몽블랑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을 재촉하는 비
  2. 중장년층 새로운 일자리 '산림복지'에서 찾다
  3. 나노종합기술원, 나노전문인력양성 8년간 인재 710명 배출 '취업률 92%'
  4. [인터뷰]양지혜 1세대 블로거, 생성형 AI <이누마(INUMA)와 함꼐한 AI 생존기> 출간
  5. 과학기술인력개발원, '디지털 배지' 활용해 학습자 성장 북돋는다
  1. 서산 동문동 도시재생, '주민이 운영하는 주차장' 첫걸음, 선진지 견학 운영 역량 제고
  2. 현대특수강(주),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후원금 500만 원 전달
  3. 대전청과와 함께하는 무료 짜장면 나눔
  4.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노인맞춤돌봄서비스 행복 두 배 파티쉐
  5. 대전사랑메세나, YWCA 가족쉼터에 '8월의 크리스마스' 따뜻한 나눔

헤드라인 뉴스


`행복청`, 행정수도 추진 한계… 총리실 소속 격상해야

'행복청', 행정수도 추진 한계… 총리실 소속 격상해야

국토교통부 소속 행정수도건설청이란 차관급 위상으로 '행정수도' 대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2007년 행정중심복합도시 착공 이후 행정수도의 현실과 이상이 큰 간극을 보여왔던 만큼, 이제는 국무총리 소속 행정수도 추진 전담기구로 격상 설치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행복청이 국토부에서 총리실 소속 기관으로 옮겨가는 대안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반쪽 행정수도의 단면은 확인 가능하다. 대통령 집무실은 대통령실, 국회 세종의사당은 국회 사무처 주도로 설계 공모 당선작을 각각 내보였고, 이 과정에서 중간에 낀 행복청의 주도적 역할엔 한..

황운하 의원 ,전국 경찰서 범죄분석관 의무 배치법 대표 발의
황운하 의원 ,전국 경찰서 범죄분석관 의무 배치법 대표 발의

제주 실종 사건을 계기로 전국 경찰서에 범죄분석관을 의무 배치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비례)이 30일 대표 발의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핵심은 실종·강력범죄 초기 단계에서 전문적인 위험도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국 261개 경찰서에 범죄분석관을 1명 이상 의무 배치하는 것이다. 범죄분석관은 범죄자의 행동·심리와 범행동기, 범행수법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범죄의 위험성, 재범과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가능성 등을 분석하는 전문가로, 전국에 35명밖에 없다..

세계 패러글라이딩 강자 단양 집결…단양강 하늘서 `진검승부`
세계 패러글라이딩 강자 단양 집결…단양강 하늘서 '진검승부'

세계 각국의 패러글라이딩 강자들이 단양에 모인다. 산과 남한강을 품은 단양의 하늘이 일주일 동안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비행 무대로 펼쳐진다. 단양군은 31일부터 9월 6일까지 두산·양방산 활공장 일원에서 '2026 제1회 단양 코리아 오픈 패러글라이딩 국제대회'를 개최한다. '제25회 대한패러글라이딩협회장배 전국 패러글라이딩대회'도 함께 열린다. 올해 처음 열리는 단양 코리아 오픈은 국제항공연맹(FAI) Category 2 국제공인대회다. 세계랭킹 1위 양첸을 비롯해 약 20개국에서 2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해 장거리와 정밀착륙 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자부 8강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자부 8강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3~4학년부 4강전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3~4학년부 4강전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5~6학년부 예선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5~6학년부 예선

  • 가을을 재촉하는 비 가을을 재촉하는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