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빵 먹고 나면 뭐가 당겨?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빵 먹고 나면 뭐가 당겨?

  • 승인 2024-04-17 10:16
  • 수정 2024-04-17 13:3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40417_094557311
대전에서 군산을 가려면 익산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익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침을 먹었다. 떡 세 개, 찐계란, 딸기. 기차에서 먹으려다 쿨쿨 자느라 그새를 놓쳤다. 일어나자마자 밥솥에 찐 떡이 말랑말랑했다. 계란, 딸기까지 먹고 나니 허기가 가셨다. 곱게 단장한 할머니 한 분도 주먹밥을 드셨다. 집에서 만들어 온 모양이었다. 먼 길을 가시나. 시간이 남아 여기저기 어슬렁거렸다. 역내 식당이 꽤 많았다. 라면집은 손님이 북적였다. 솔솔 풍기는 라면 냄새에 끌려 창에 코를 박고 안을 기웃거렸다. 저녁은 라면으로 낙점!

군산 신흥동 근대화거리 가는 길에 이성당이 있다. 이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유명세 덕분에 대전 성심당 못지않게 휴일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행히 아침이라 번잡하진 않았다. 이것저것 빵 다섯 개를 사들고 나왔다. 순간 웃음이 쿡 나왔다. 멀리서 온 외지인들이 성심당 앞에서 줄을 지어 기다리다 빵을 사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나도 다르지 않았다. 이성당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이즈모야'라는 빵집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해방 후 한국인 이석우씨가 이즈모야를 불하받아 이성당으로 출발했다고. 이성당의 한자는 '李盛堂'으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번성하는 곳'이란 뜻이다. 성은 다르지만 현재 그 후손들이 4대째 운영하고 있으니 소원을 푼 셈이다.

신흥동 골목은 평일이어서 직박구리 소리만 요란할 뿐, 고요했다. 풍수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 곳은 좋은 터란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자리잡고 살던 곳 아닌가. 식량 수탈의 쓰라린 역사의 도시 군산. 군산은 일본이 호남의 드넓은 평야에서 생산한 쌀을 본토로 가져가는 항구였다. 당시 일본인 대지주들은 조선인의 고혈을 쥐어짰다. 히로쓰 가옥은 그때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옆에서 귀동냥한 문화유산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이 집을 짓는데 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지금 봐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간다. 유카타를 입고 다다미방에서 군산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회와 조선 농민의 피땀이 밴 쌀밥을 먹는 히로쓰. 식민지 조선에서 부와 권력을 누린 일본인.

히로쓰 가옥에도 '일본식 정원'이 있다. 정원에서 히로쓰를 생각하며 콩알만한 치즈가 촘촘히 박힌 바게트를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서구인들은 일본문화를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 타란티노의 '킬빌'은 일본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롤랑 바르트는 일본을 방문하고 나서 일본을 찬양하는 <기호의 제국>을 썼다. 이성당의 시그니처 단팥빵은 일본에서 건너왔다. 메이지시대 중국의 바오쯔에 착안해 팥소를 넣은 바오쯔를 서구풍의 껍질 빵 형태로 만든 것이다. 크림빵, 건빵, 라면도 일본 태생이다. 건빵은 담백하고 바사삭 하는 식감이 좋아 즐겨 먹는다. 침략과 함께 들어오는 음식은 피해국민의 입맛에 빠르게 흡수된다. 도리 없다. 스팸과 커피도 전쟁이 전파했다. 설렁탕은 몽골침략과 함께 한반도에 들어왔다.

빵 다섯 개를 '순삭'했다. 그 중 나비파이는 시럽을 발라 달콤하고 사르르 녹았다. 하나 더 살걸. 잔소리대마왕 의사들은 밀가루와 설탕은 먹지 말라고 경고한다. 왜 자꾸 그들은 나를 죄책감에 빠지게 할까. 달디단 빵을 먹은지라 매콤한 게 당겼다. 뜨끈하고 얼큰한 순두부찌개는 언제나 진리다. 큰 투가리에 끓여 나온 순두부는 직접 만든 거란다. 매콤한 국물이 느글한 빵의 뒷맛을 없애줬다. 살짝 짠 게 옥에 티랄까. 개복숭아처럼 시디신 묵은지가 침샘 물꼬를 터사정없이 터뜨렸다. 어쩜 군내 없이 이렇게 깔끔할까. 이날은 하루종일 배가 빵빵해 속이 더부룩했다. 밥을 남겼어야 하는데. 만삭의 임신부가 이럴까. 아, 단짠의 세계는 녹록지 않았다. 익산역 라면은 먹지 못했다. <지방부장>
단팥빵
이성당 단팥빵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로 간다
  2.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3.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4. 창업기업 74곳에 최대 4억원 '대전 창업기업 들썩'
  5. K리그 휴식기, 대전 서포터즈는 '청소' 중?… "승리의 기운을 줍습니다"
  1.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2.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3. 천문연구원, 희귀 왜소신성 발견…공전주기 짧아 중요 연구대상
  4. 대전 보건소 인력부족에 '허덕'…전국 광역시 중 가장 적어 보건의료 '빨간불'
  5. 충남대병원, 교육부 주관 경영평가서 A등급…국립대 중 유일 7년 연속

헤드라인 뉴스


삼전닉스 호남 투자 가시화…충청은 생색내기용 전락

삼전닉스 호남 투자 가시화…충청은 생색내기용 전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수백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기지 구축에 나설 것이 유력해지면서 충청권은 곁다리 투자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충청권의 경우 두 기업이 막대한 고용창출 등이 기대되는 대규모 생산 라인이 아닌 AI데이터센터 건립으로 기우는 모양새인데 이럴 경우 지역 경제 파급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코스피 시총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업체인 두 기업이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지역균형 발전 정책에 부응하려면 충청권에도 생색내기 용이 아닌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정치권과..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 2030년 하반기로 늦어진다"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 2030년 하반기로 늦어진다"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이 2030년 하반기로 지연된다고 대전시가 공식 인정했다. 당초 2028년 개통보다 2년여가 더 늦어지는 것으로, 주요 공정 리스크와 차량 시운전 계획 반영 등을 이유로 꼽았다. 유득원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23일 대전시청 기자회견장에서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관련 브리핑을 갖고 "향후 통합공정 계획 수립을 통해 개통 일정 등을 최종 확정할 것"이라면서 개통 지연을 공식화 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은 총연장 38.8㎞, 정거장 45곳, 차량기지 1곳 규모로, 2024년 12월 착공해 현재 본선 14개 전..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

대전 중구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와 정동 인쇄거리, 원동 한복거리 등 과거 대전을 상징하던 유서 깊은 산업 자산들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붙여진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와 유통 시스템 현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간 채 존폐의 기로에 서면서다. '생산의 효율화'란 거대한 산업 발전 흐름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숨결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산업의 흔적이 미래세대에 적절히 계승돼야 마땅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낡은 산업의 미래를 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문창동 화재피해 복구 돕는 손길 문창동 화재피해 복구 돕는 손길

  •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월드컵 응원 고조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월드컵 응원 고조

  •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