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너희들은 우리의 봄이야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너희들은 우리의 봄이야

금산동중 최윤주 교사

  • 승인 2025-05-29 11:25
  • 신문게재 2025-05-30 18면
  • 오현민 기자오현민 기자
20250529_금산동중 교사 최윤주
금산동중 최윤주 교사.
5년간 정들었던 면 단위 학교를 떠나 3월이 되어 읍내에 있는 새 부임지로 향했다. 전교생이 40명이고 교직원이 17명인 학교와 달리 새 부임지는 전교생이 280여 명에 교직원은 45명 정도로 약 3배에 해당하는 규모의 학교였다.

작은 학교에서 온 나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새 학교에 부임하면 적응 기간이 1년이라는데 나는 그것보다 더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3월 초는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들 익히랴, 학생들 익히랴.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라고 물을 때마다 "시간을 좀 더 줄래."라며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고 있었다. 때론 이름과 얼굴의 불일치로 난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 박 선생님께서 "교문에 어쩜 그리 멋진 말을 붙여 놓았데요? 정말 감탄했어요."하는 것이었다.

"교문에 뭐가 붙어 있어요?"

"네. 시간 내서 한번 보세요."

"난 그동안 보지 못했네요."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고 있는 나를 자책하며,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교문에 가보니 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붙여 놓은 현수막에는

"너희들은 우리의 봄이야."라는 따뜻한 환영 인사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핑크색으로 예쁘게.

교무실로 온 나는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물었고, 바로 교무부장님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문구를 내걸게 된 계기도.

교무부장님이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좋은 말을 걸었더니 그 문구에 학생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지 결심했고, 이동해 온 본교에서 실천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너희들은 우리의 봄이야."라는 문구는 나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3월, 4월, 5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그리고 3월에 걸린 감기가 5월이 된 지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 하고 있다. 그러나 난 이곳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가르치는 학생들만 보면 이뻐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는 박샘, 학생들의 장점을 눈을 뜨고 찾아보고 그 즉시 폭풍 칭찬을 한다는 윤샘, 학생들에게 져 주어야지 어떻게 하겠냐는 박샘,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챙겨주는 이샘, 학생들의 눈높이로 바라봐 주는 위샘, 학생들에게 좋은 프로그램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는 신샘 등 선생님들을 통해 나는 배우고 있다. 각각 다른 색채를 띠고 아롱이다롱이인 우리의 봄과 살아가는 법들을.

세상 어느 곳에서 "○○샘." 하고 나를 스스럼없이 부르겠는가? ○○샘에게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할 말을 다하겠는가? 누가 더 귀엽냐고 묻겠는가?

나는 나이 많은 티를 내며 우리의 봄들에게 "그저 웃지요."라는 시 한 구절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 봄들에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크고 작은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몸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마음의 아픔은 오래오래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이름을 불러주는 것뿐이었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힘주어 불러 주었을 때 그들은 나에게 봄이 됐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 많은 시련을 겪고 이겨내며 나아갈 터이지만, 그들이 온갖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희망찬, 그리고 새로운 봄을 맞이할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나에게는 봄을 만날 시간들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내가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보다 훨씬 더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올해 만난 봄들에게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되돌아서서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가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우리의 봄들과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영위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너희들은 우리의 봄이야'라고 표현한 교무부장님의 그 아름다운 마음이 그리고 금산동중의 선생님들의 마음이 학생들에게 전해져 해마다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고 싶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제천서 실종된 40대 남성… 여전히 행방묘연
  2. 이장우 "3대하천 준설 덕에…더는 물난리로 불편 없도록"
  3.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재선출'
  4. 천안교육지원청, 호우 특보 관련 비상대책회의 개최
  5. "위험경고 없었다" 금산 수난사고 주장 엇갈려
  1. 19일까지 충청권에 180㎜ 더 퍼붓는다…침수 피해 '주의'
  2. 새솔유치원, '북적북적 BOOK 페스티벌'로 독서 문화 선도
  3. [문예공론] 점심 사냥
  4. 대전천 휩쓸린 50대 숨진채 발견…대전충남 폭우 4명 사망
  5. 8년간 재활용품 수집으로 모은 1천만원 기부한 86세 이형진 할아버지

헤드라인 뉴스


천둥 번개 동반한 강한 비… 대전·세종·충남 최고 150㎜

천둥 번개 동반한 강한 비… 대전·세종·충남 최고 150㎜

19일 대전·세종·충남지역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80㎜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했다. 오전 6시 현재 주요 지역 1시간 누적 강수량은 대전 21.0㎜, 충남 청양 16.0㎜, 논산 10.0㎜, 계룡 9.5㎜ 등이다. 충남 보령과 서천에는 호우경보가, 나머지 지역에는 호우주의보가 발효된 상태다. 예상 강수량은 5∼100㎜이며, 많은 곳은 150㎜ 이상 내리는 곳도 있겠다. 대전지방기상청 관계자는 "이미 많은 비가 내린 가운데 매우 강하고 많은 비가 예상된다"며 "시설물 관리, 보행자 안전사고, 낙뢰 사..

제10회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 18일부터 나흘간 개최
제10회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 18일부터 나흘간 개최

올해로 10회를 맞은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KITS:Korea International Tourism Show)가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 7홀에서 열린다.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KITS조직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전시산업원이 주관하는 이번 박람회는 국내외 관광업계 정보 제공의 장과 관광객 유치 도모를 위한 비즈니스의 장을 마련해 상호 교류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KITS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역별 특색을 살린 여행 콘텐츠와 국제 관광도시 및 국가 홍보, 국내외 관광 콘텐츠 간 네트워..

[이슈현장] 꿀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 속 대전양봉 위태
[이슈현장] 꿀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 속 대전양봉 위태

우리에게 달콤한 꿀을 선사해주는 꿀벌은 작지만 든든한 농사꾼이기도 하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수박, 참외, 딸기 역시 꿀벌들의 노동 덕분에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공급의 약 90%를 담당하는 100대 주요 농산물 중 71종은 꿀벌의 수분 작용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꿀벌응애'라는 외래종 진드기 등장에 따른 꿀벌 집단 폐사가 잦아지면서다. 전국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들이밀듯 '꿀벌 살리자'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대전 지역 양봉..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위험한 하굣길 위험한 하굣길

  • 폭우에 대전 유등천 교량 통제 폭우에 대전 유등천 교량 통제

  • 민생회복 소비쿠폰 접수창구 준비 민생회복 소비쿠폰 접수창구 준비

  • 밤사이 내린 폭우에 충남지역 피해 속출 밤사이 내린 폭우에 충남지역 피해 속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