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축제는 정치의 도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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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축제는 정치의 도구가 아니다

이희성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교수

  • 승인 2025-10-01 16:55
  • 신문게재 2025-10-02 23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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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교수.
어느덧 완연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10월이 찾아왔다. 그리고 전국은 다양한 지역축제로 물들고 있다. 각 지역마다 자랑하는 특산물과 문화유산, 주민들이 손수 준비한 축제의 장이 이어지고 있다. 가을볕 속 풍물 소리와 지역 먹거리가 어우러진 장면은 그 자체로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계절의 축제 이면에서 반복되는 불협화음이 있다. 바로 정치화된 축제라는 오래된 문제다.

여러 지역 축제가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행정 치적 홍보'의 무대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축제 예산의 편성부터 장소 선정, 개막식 연설과 축사, 공연 배치까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축제는 더 이상 시민의 것이 아니다. 본래의 기획 방향과 상관없이 지역단체장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장치로 활용되면서 콘텐츠보다 사람, 메시지보다 연출이 앞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연출은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더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가 축제를 견인하고 성장시키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예산을 확보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며, 지역정책과 문화행정을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 축제를 지배하는 순간, 시민의 참여와 콘텐츠의 진정성은 서서히 사라진다. 정치에 따라 흔들리는 구조, 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정체성, 선거에 좌우되는 개최 여부는 결국 축제를 '소모되는 이벤트'로 만든다.



천안 K-컬처박람회는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는지를 시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의 비정치화를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천안시·독립기념관·문화재단이 역할을 명확히 분담하며, 정무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사결정 레일'을 마련한 점은 축제의 정치화를 벗어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뒤로 물러서고, 축제의 본질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구조적 전환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축제가 정치 도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축제 운영 주체의 독립성과 안정성 확보를 통해 단체장 교체와 무관하게 장기적인 축제 운영 계획이 유지되어야 한다. '행정 성과'가 아니라 '문화 자산'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법적·재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시민 참여 기반을 제도화해야 한다. 기획 단계부터 주민, 예술인, 청년, 상인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주민협의체를 상설 운영하고, 예산 사용과 평가 과정에 이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축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사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셋째, 축제 성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단순 방문객 수나 경제효과 같은 과장된 수치 대신, 만족도, 콘텐츠 다양성, 지역 경제 유입 효과 등 질적 지표 중심의 평가 모델을 도입해 선거용 포장 논란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직접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개막식 축사나 무대 등 행사 운영 전반에서 공직자의 정치적 발언이나 노출이 과도하게 반복되지 않도록,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하는 운영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

축제는 단순한 볼거리의 나열이 아니다. 그 안에는 주민의 삶, 지역의 기억, 문화의 결이 스며들어 있다. 정치권은 축제를 도구화하기보다, 이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육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축제는 정치의 무대가 아니라 시민의 광장이어야 한다.

결국 축제는 '누가 기획하느냐'보다 '누구를 위한 것이냐'가 중요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필요한 것은 단기성과를 홍보하는 무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문화적 자산을 조심스럽게 다듬는 일이다. 가을 햇살 아래 펼쳐지는 지역 축제의 진짜 주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다. 이 당연한 진실을,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한다.

이희성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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