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한국수어의 날, AI 시대의 언어권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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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한국수어의 날, AI 시대의 언어권을 말하다

류병래 (충남대학교 교수, 인문사회 디지털 융합인재양성사업단장)

  • 승인 2026-02-02 18:06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류병래 교수
류병래 (충남대학교 교수, 인문사회 디지털 융합인재양성사업단장)
우리나라에 한국어 말고도 또 하나의 모국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청인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습득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가진 농인에게 모국어는 한국수어다. 청각장애인은 지체장애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장애 유형이다. 농인이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농인과 농인 사이, 농인과 청인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도록 하는 일은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헌법 제10조가 선언한 행복추구권은 농인에게도 예외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으로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획득했다.

그로부터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와 국립국어원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고 중요하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언어 현실은 한국어와 한국수어의 동등성을 선언한 법과 여전히 상당한 거리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과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수어의 체계를 밝히는 과학적 연구에 더 큰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언어는 고정된 기호의 집합이 아니라 사용자 공동체의 삶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적 체계다. 수어는 손과 팔의 형태와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수지 신호와, 얼굴 표정·시선·몸의 방향 같은 비수지 신호가 결합된 공간적 의사소통 체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수어는 어느 언어보다 역동적이며 공동체의 특성을 강하게 반영한다. 그럼에도 한국수어의 언어 체계에 대한 과학적 규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연구 지원 없이는 한국수어의 언어적 구조를 온전히 밝히기 어렵다.



둘째, 대용량 한국수어 자료의 수집과 정제에 대한 투자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언어 자료는 이제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전환의 흐름에서 한국수어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AI 시대에도 유효하다. AI의 성능과 방향을 좌우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언어 자료다. 한국수어를 국가 AI 전략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소버린 AI는 출발부터 '전 국민 AI 시대'라는 정책 목표와도 어긋날 수밖에 없다.



셋째, 현실에서 한국수어는 여전히 모국어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와 금융, 긴급 상황, 공연 예술 현장에 이르기까지 농인의 모국어인 한국수어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수어의 법적 지위와 농인이 실제로 경험하는 정보 접근권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2월 3일은 '한국수어의 날'이다. 이 날이 형식적인 기념일에 그치지 않으려면 한국수어 연구와 언어 자료 구축, 그리고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통역 서비스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 한국수어를 AI 전략과 공공 정책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놓을 때, 비로소 이 사회는 모든 국민의 언어권을 말할 자격을 갖게 된다.

차별 없는 세상, 장벽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 실행해야 할 때다.

류병래 (충남대학교 교수, 인문사회 디지털 융합인재양성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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