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쌀은 풍년인데, 물은 준비됐는가 - 반도체 호황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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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칼럼] 쌀은 풍년인데, 물은 준비됐는가 - 반도체 호황이 던지는 질문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6-03-05 17:26
  • 신문게재 2026-03-06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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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한때 삼성전자가 20만 원, SK하이닉스가 100만 원 고지를 밟으며 코스피 6000을 돌파했던 주식 시장이 최근 급격한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끝없이 오를 것 같던 주가 그래프가 요동치자 시장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지만, 반도체 산업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굳건하다. 이미 2026년 생산 물량이 완판된 것은 물론,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가 2027년 세계 영업이익 1위 기업이 될 것이라는 파격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단기적인 주가 등락보다 진짜 주목해야 할 곳은 쉴 새 없이 돌아가야 할 반도체 공장이다.

이 거대한 호황의 근저에는 우리 일상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AI 기술이 있다. 자료 조사부터 발표 자료 제작까지 해주는 것은 물론, 비전문가도 코딩으로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며 업무 효율이 비약적으로 증진되었다. 이러한 AI 시대를 뒷받침하려면 막대한 연산을 처리할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한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작업대' 역할의 디램(DRAM)과 서랍처럼 정보를 저장하는 낸드플래시(NAND Flash)로 나뉜다. 디램은 속도는 빠르나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휘발성(Volatile) 메모리이며, 낸드플래시는 비휘발성 저장장치다. 특히 최근 AI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성능 디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디램 시장의 약 70~80%, 낸드플래시 시장의 50%를 점유하며 기술 패권을 쥐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없이는 이 독주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

70~80년대 철강이 '산업의 쌀'이었다면, AI 시대에는 반도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쌀은 땅에서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거대한 논(부지)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논을 적실 풍부한 관개수, 즉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현재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약 15GW(기가와트)라는 유례없는 전력을 요구한다. 이는 원전 10기 이상의 발전량에 해당하지만, 현재 확보된 전력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천연가스 발전소와 장거리 송전망 확충이 계획되었으나, 한전의 부채 상황과 10년 넘게 지연되는 송전망 건설 사례를 볼 때 우려를 금하기 어렵다.

탄소 중립 흐름에 맞춰 재생에너지는 반드시 확대돼야 할 자원이다. 그러나 출력 변동성이 존재하며 대규모 저장 설비가 병행되지 않으면 반도체 공장의 연속 운전을 책임지기는 어렵다. LNG 발전은 유연성이 높지만, 연료 가격과 탄소 비용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문제는 어느 하나의 전원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산업 수요의 특성에 맞는 전원 조합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설계하느냐다. 이러한 조건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대표적 전원으로 원자력 발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은 대규모 기저전원으로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연료비 비중이 낮아 가격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작으며, 탄소 배출도 낮다.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함께 고려할 때 원전은 현실적인 선택지 중 하나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해안가 대형 원전 건설이 효율적이지만, 송전망 건설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SMR(소형모듈원전)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SMR은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높고 규모가 작아 이론적으로는 산업단지 인근 배치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어 송전망 부담을 낮추는 분산형 전원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하며 독보적 기술력을 입증한 SMART SMR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가스 발전을 대체할 민첩한 소듐냉각고속로(SFR) 도입까지 논의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의 골든타임을 위해 우리는 수십 년간 기술을 쌓아왔는지도 모른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저성장 늪에 빠진 대한민국에 다시 숨을 불어넣을 국가 명운이 걸린 사업이다. 그러나 논이 넓다고 풍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물길을 먼저 내는 자만이 수확을 거둔다. 산업의 쌀이 무르익고 있다.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물을 준비했는가.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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