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수선'의 미학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수선'의 미학

노수승 시인·대전문인총연합회 회장

  • 승인 2026-03-18 16:47
  • 신문게재 2026-03-19 1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KakaoTalk_20260108_154445628
노수승 시인·대전문인총연합회 회장
얼마 전 공주시 도예 명장 1호인 이재황 작가의 철화분청사기 전시회에 다녀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작 시연 중 터진 부분을 때워 더 의미 있는 완성품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전통 도자기 수리 기법인 '킨츠기(Kintsugi)'가 있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온기를 나누던 물건이 한순간에 무용(無用)의 파편으로 변해버리는 장면은 당혹스럽고도 서글프다. 대개라면 아쉬움 속에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그 잔해들을 모아 다시금 곁에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킨츠기는 깨진 조각들을 단순히 이어 붙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천연 옻칠로 파편을 고정하고, 그 균열의 선을 따라 금가루나 은가루를 입혀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든다.

이 명장이 철화 분청사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터진 부분의 수선을 마친 기물을 보았을 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터지기 전보다 오히려 더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감추거나 버려야 마땅할 흉터가 기물에서 가장 눈길 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처음 접하는 관람객들이 대개 그렇듯, 나 역시 상처가 깊이 있는 의미와 미적 가치로 승화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상처난 것을 버리지 않고, 그곳을 수리하면 재생의 기쁨을 나누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조금만 낡거나 금이 가도 쉽게 새것을 찾는다. 물건뿐일까? 낡은 건물은 허물어지고, 오래된 도심의 골목길은 반듯한 도로로 바뀐다. 사람 사이에도 서로의 작은 어긋남으로 쉬이 멀어지곤 한다. 빠르고 새로운 것만 좋아하는 분위기 속에서, '수선'은 어딘지 모르게 구질구질하고 비효율적인 일처럼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흠집을 메우고, 오래 쓴 물건을 다시 고쳐 쓰는 일은 단순히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 물건과 치유의 시간을 함께 공감하고, 지나온 시간을 그저 버리지 않겠다는, 소박하지만 곧은 마음에서다.

문학도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건 대개 무언가 깨진 자리에서다. 잃어버린 것, 실패한 것, 말 못하고 삼킨 것들. 그들을 언어로 붙러와 쓰다 보면, 그 균열이 어느새 상처가 아니라 오히려 단단한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나온 시 한 편, 문장 하나가 누군가에게 닿아 '나도 그랬다'는 공감을 얻어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문학이 삶을 아름답게 포장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상처가 부끄러운 게 아니고 오히려 살아있었다는 증거라는 것, 그걸 조용히 일러주는 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이러한 수선의 마음은 지금 대전 원도심에서도 보인다. 낡고 오래된 공간들을 굳이 허물지 않고, 거기에 새로운 쓸모를 얹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철도 요충지로서의 근대 역사를 간직한 소제동의 관사촌이나, 옛 충남도지사 관사촌인 '테미오래'가 그렇고, 65년 된 대전 최초 공공 도서관이 리모델링을 거쳐 테미문학관으로 개관을 앞두고 있다.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그 자리들이 현대적 감각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있던 것을 살리면서 덧대는 쪽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걸 일류경제도시를 꿈꾸는 우리 대전이 조금씩 보여주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크든 작든, 우리는 저마다 어딘가 흠 있고 금 간 채로 살아간다. 그 흠을 감추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우리 지역의 문학이 슬며시 말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상처는 흉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든든한 증거라고. 터진 자리가 기물의 가장 눈부신 자리가 되듯, 우리 삶의 흠집들도 세월의 빛을 머금으며 조금씩 더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노수승 시인·대전문인총연합회 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시체육회-더보스턴치과병원, 체육인 구강 건강 증진 업무협약
  2. [숏폼영상] 도심 한복판에서 숲속 공기 마시는 방법
  3. 백석대, 건학 50주년 기념 기독교박물관 특별전 '빛, 순간에서 영원으로'
  4. 남서울대, 제2작전사령부와 국방 AI 협력 업무협약 체결
  5. 천안시, 성고충상담 담당자 역량강화 교육
  1. 첫 법정 공휴일 된 노동절…차분히 즐기는 휴일
  2. 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3. "기적을 만드는 5분"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 직접 해보니
  4. 아산시립도서관, '자연을 담은 시민의 서재' 진행
  5. 천안법원, 무면허 음주사고 후 바꿔치기로 보험금 타려한 50대 남성 징역형

헤드라인 뉴스


한 마리 학이 알려준 기적의 물! 유성 온천 탄생의 전설

한 마리 학이 알려준 기적의 물! 유성 온천 탄생의 전설

대전 유성 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유성온천’입니다. 지금은 뜸해졌지만 과거 유성온천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행차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유성온천은 과연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을까요? 유성온천의 기원은 무려 1000년 전 유성지역에 살던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뜻한 온천과도 같은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다는 유성온천 탄생의 전설을 전해드립니다. 금상진 기자유성온천은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졌을까 1000년 전 유성지역에 살던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에서 시작한..

`5점대 평균자책점`…한화 이글스, 투수진 기량 저하에 고초
'5점대 평균자책점'…한화 이글스, 투수진 기량 저하에 고초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2026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추락하며 고초를 겪고 있다. 팀 내 주축 선수들의 기량 저하가 핵심 원인으로, 특히 5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을 정도로 불안정한 투수진은 한화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2일 KBO에 따르면 한화는 올 시즌 11승 17패 승률 0.393의 성적으로, 리그 10개 구단 중 8위에 올라있다. 최근 10경기 성적은 3승 7패로, 이달 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에 패하며 3연패 수렁에 빠진 상태다. 중위권과는 2경기 차로 뒤처진 상황이며, 9·10위권과는 단 0.5..

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전투가 벌어진 장소를 전쟁유적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전쟁 시설 조성에 동원된 인력과 그 과정도 유적에 포함된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서 제국 일본의 영역이었으므로 지배를 강압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준비한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정혜경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대표는 그의 저서 '한반도의 일제 전쟁유적 활용, 해법을 찾아'에서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일제 전쟁유적은 일본 침략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강제동원의 역사에서 피해자성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며 "피해자성이란 피해의 진상을 파악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아픔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다양한 체험과 공연에 신난 어린이들…‘오늘만 같아라’ 다양한 체험과 공연에 신난 어린이들…‘오늘만 같아라’

  • 대전 찾아 지원유세 펼치는 정청래 대표 대전 찾아 지원유세 펼치는 정청래 대표

  • 첫 법정 공휴일 된 노동절…차분히 즐기는 휴일 첫 법정 공휴일 된 노동절…차분히 즐기는 휴일

  • 기자간담회 갖는 이장우 대전시장…오늘 예비후보 등록 예정 기자간담회 갖는 이장우 대전시장…오늘 예비후보 등록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