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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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서울 상암 일원에서 현장답사
일본군장교 관사 2동과 방공호·수색조차장 쌍굴 등
대전서도 일본군 사령부 지하시설과 금광산 발견돼

  • 승인 2026-05-01 17:31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는 서울 상암동과 경기 고양 일대의 일본군 관사, 방공호, 쌍굴 터널 등 일제강점기 전쟁 유적을 답사하며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와 보존의 중요성을 재조명했습니다. 이러한 유적들은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화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된 물적 증거이자 식민지 전시체제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평가받습니다. 전문가들은 일제 전쟁 유적을 외면해야 할 과거가 아닌 우리가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한국사의 일부로 규정하며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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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회원들이 4월 25일 답사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공동묘지에 1940년께 세운 경성조차장 무연합장지묘와 표지석 앞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전투가 벌어진 장소를 전쟁유적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전쟁 시설 조성에 동원된 인력과 그 과정도 유적에 포함된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서 제국 일본의 영역이었으므로 지배를 강압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준비한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정혜경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대표는 그의 저서 '한반도의 일제 전쟁유적 활용, 해법을 찾아'에서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일제 전쟁유적은 일본 침략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강제동원의 역사에서 피해자성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며 "피해자성이란 피해의 진상을 파악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해, 향후 이러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라고 규정했다. 일제 전쟁유적을 조사하고 연구해 교육하자는 취지의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가 2025년 2월 출범해 2026년 4월 25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일원에 산재한 일제강점기 전쟁유적을 답사했다. 조선주둔군 사령부를 대전으로 옮길 목적으로 조성한 보문산 동굴처럼 일제 전쟁유적이 충청권에서도 발견되는 상황으로, 중도일보는 30여 명이 참여한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의 이날 답사에 동행했다.

대전역을 출발한 KTX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하고 다시 공항철도로 환승해 세 번째 역에서 하차해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의 관사와 방공호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은 전쟁유적의 소멸과 복원 그리고 전쟁유적의 보존에 주민들의 공감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소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수색리(水色里)라고 불리며 1930년대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군 병영이 조성됐다. 2005년 11월 마포구 상암2택지개발지구 아파트 단지 지표조사 과정에서 일본군이 묵은 것으로 추정되는 관사 22개동이 발견되면서 조사가 시작됐다. 중일전쟁 이후 아시아 태평양전쟁기 한반도를 대륙 전진 병참기지화하는 과정에 필요한 공병연대가 이곳에서 창설됐고, 경성조차장 등 수색리 일대 군수 병참시설에 복무하는 군인·군속들의 숙사가 다수 건설됐다. 문화재청은 일본군 관사가 역사적인 보존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SH공사는 22개동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2개동을 130m 떨어진 공원으로 옮겨서 현재까지 보존 중이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한 서울 일본인학교 맞은편에 부엉이 공원에서 소·중위급 간부가 사용하는 관사 1동과 대위급 장교가 사용하는 관사 1동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일본군 관사 단지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고,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상암동 군관사 단지에 방공호를 조성했고, 그 방공호도 2동의 관사 사이에 복원했다.

한 동은 관리동 겸 교육장으로 사용 중이고 다른 한 동은 전시장으로 활용 중으로, 관사 안으로 들어가 관람할 수 있었다. ㄱ자형 짧은 복도 중앙의 거실을 중심으로 방과 부엌, 욕실 등이 붙어 있고, 일본식 창문과 다다미방이 복원되었다. 부엌·욕실·화장실까지 과거의 모습을 재현했고 벽난로와 굴뚝은 한국 겨울 날씨에 적응하려고 온돌 없는 다다미방에 특별하게 설치된 것으로 보였다. 서울 마포구청은 복원한 관사를 등록문화재로 신청했으나 승인되지 않았고,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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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복원된 일본군 관사와 지하 방공호 시설.  (사진=임병안 기자)
이어 걸어서 찾아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에 위치한 독립공병 제23연대 옛 부지는 지금은 모든 시설물을 철거하고 높은 펜스를 세워 안으로 들어가거나 관찰할 수는 없었다. 독립공병 제23연대는 1930년대 후반부터 만주 지역 군비 확충과 대소련 방어 체계를 강화하려고 창설한 부대다.

이날 답사를 인솔한 조건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일제는 경의선 철도와 한강 수운이 만나고, 만주와 본토를 잇는 병참의 요지로 이곳 수색리 일대를 지목하고 진지 구축을 전담할 공병 전력을 창설한 것"이라며 "서울 용산 미8군 121병원 뒤편에 남은 방공호에는 '조선 제205부대 작업대 일동'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조선 205부대는 이곳에서 창설돼 주둔했던 독립공병 제23연대를 지칭한다"라고 설명했다. 해방 이후 1955년 서울 관훈동에서 창설한 국방대가 1956년 3월 이곳 경기도 고양시 수색리로 이전해 2017년 충남 논산으로 옮길 때까지 이곳은 안보전략과 국방정책을 고안하고 군인을 교육하는 장소로 쓰였다.

20분을 걸어서 도착한 고양시 덕은동 수색조차장 터널은 경의선을 통해 대륙으로 향하는 길목에 건설된 두 개의 터널이다. 망월산과 대덕산의 중간을 관통해 파주를 지나 의주로 가는 통로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 말 수색조차장 건설을 계기로 조성된 터널 시설인데, 두 개의 터널은 10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조성되었고 터널의 길이는 각각 약 1㎞에 이른다.

조건 연구위원은 "이 쌍굴은 단순한 철도 터널이 아니라, 수색조차장과 일본군 군수시설을 연결하는 중간 보급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라며 "상부 터널은 화전역을 경유해 평양 방면으로 이어지는 노선으로 계획되어 병력 수송과 장거리 군사 물류 이동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쌍굴은 강제 동원된 노동력에 의해 건설된 시설이라는 점에서 일제 식민지 전시체제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일제는 수색조차장과 인근 군사가지, 군수창고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통합된 병참 체계를 구상했고, 덕은동 쌍굴은 철도 물류 흐름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했다. 조차장 부지가 넓게 펼쳐졌고, 그 끝단에 위치한 두 터널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는 터널은 차량 한 대가 통행하는 도로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경성조차장 무연고 묘지는 일제강점기 수색조차장 건설과 관련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묘비가 남아 있다. 단단한 화강석에 '경성조차장 제3공구 내 무연합장지묘'라고 쓰여 있고, 일본의 전범 건설기업인 하자마구미(間組·Hazama Corporation))가 1940년경 세운 것으로 수색조차장 제3공구 공사 과정에서 사망한 무연고자의 유해를 합장한 집단 묘를 표시하는 위령비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서야 묘비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으며, 묘비에는 이장 위치(수색리, 덕은리)가 기록되어 있어, 공사 현장 주변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해를 한 곳에 모아 집단적으로 매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의 군사 병참 시설 건설 과정에서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이 투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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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사령부가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전 보문산 동굴시설의 입구 천장모습. 주름을 잡듯이 마감되어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답사를 마치고 대전역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차창 너머 대전 시내와 보문산이 빌딩 사이사이 보였다 가려지기를 반복했다. 국내에서 파악된 일제강점기 전쟁유적은 총 1343개에 이른다. 조건 연구위원은 사령부 및 주둔시설, 방어시설, 병참시설, 항공 군사시설 등 국내에 남은 전쟁유적을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이러한 군사시설물 공사장에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의 실태에 관한 정리된 자료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다. 관련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의 구술기록은 제주도나 인천시 부평 등 일부 지역에서만 조사되어 남아 있다.

대전은 1945년 일본이 본토결전이라는 최후의 전쟁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경성부 용산에 있던 조선주둔군 사령부를 미군의 공습을 대비하고자 보문산으로 옮기기 위한 동굴 시설공사를 벌였다. 보문산 대전아쿠아리움 수족관은 일본군 사령부가 사용하기 위해 조성된 인공터널로 여겨지며, 보문산 인근에서는 여러 인공동굴이 잇달아 발견됐다. 뿐만 아니라 대전 가장 외곽인 동구 신상동에서도 방공호가 조사되고 있다. 중학생 때 보문산 동굴 조성 현장에 동원되었다는 증언과 동구 신상동에서 동원된 근로자들이 동굴을 만드는 과정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각각 중도일보 인터뷰를 통해 수집됐다. 이밖에 자원수탈 형태의 전쟁 유적인 금광 역시 대전 서구 월평동 갑천습지에서 발견돼 이곳이 조선식산은행이 설립한 조선제련 소유의 금광산이라고 규명됐다. 또 1935년 조성된 홍도동 공동묘지를 1973년 외곽으로 이전할 때 수습된 무연고 유해 1만3850기를 대전추모공원 입구에 합장하고 홍도총이라고 명명했는데, 합장된 무연고 유해 상당 수는 일본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구 선화동과 문화동에 서울 상암동처럼 일본군 관사가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지나, 문화재청이 2015년 현장 조사했을 때는 도시개발로 보전된 일본군 관사가 한 채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혜경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대표는 "세계적으로 근대유적과 전쟁유적을 보존하는 이유는 이들 유적이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과거의 연속이면서 거기에 새로운 변화를 축적하는 곳이기 때문"이라며 "일제 전쟁유적은 일본 식민통치의 역사만이 아닌 한국사였고, 한국의 것으로 외면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대상이다"라고 당부했다.
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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