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제헌절 단상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제헌절 단상

정연헌 변호사

  • 승인 2026-07-20 16:58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2026042301001698200070581
정연헌 변호사
7월 17일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포하고 법치주의의 초석을 세운 제헌절이다. 흔히 우리 헌법의 역사를 1948년 그날부터 따지곤 하지만, 우리 헌법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고 단단하다. 헌법 전문(前文)에 명시되었듯,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통해 민주공화제를 선포한 이래, 수차례의 개정에 이어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제정하여 독립국가의 구체적인 설계도를 발표했다. 조소앙 선생이 정립한 '삼균주의(三均主義)'를 골자로 한 이 강령은 정치, 경제, 교육의 세 영역에서 모든 국민이 균등한 권리를 누리는 나라를 지향했다.

18세 이상 보통선거권, 대기업과 토지의 공공성 확보, 국비 무상 의무교육 등은 당대 서구의 헌법과 비교해도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인 설계였다. 이 삼균주의 사상은 훗날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도 초등학교 무상교육, 근로자의 이익균점권, 보통선거권 등으로 반영되었고, 오늘날 현행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에 이르기까지 도도히 이어지고 있다.

건국강령에 담긴 삼균주의는 동아시아의 오랜 유교적 이상향인 '대동사회(大同社會)'와도 깊은 맥이 닿아 있다. 공자는 천하가 만민의 것이며, 모두가 각자의 몫을 다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사회를 '대동사회'라 불렀다. 이러한 대동사회를 지향하는 유교적 문화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강력한 국가 주도의 경제·사회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이 이에 기꺼이 동참하는 데 심리적 자양분이 되었다. 사익보다 공익, 즉 의(義)를 앞세우는 문화와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국민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압축 성장과 복지 향상,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며 오늘날의 풍요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늘 균형을 요구한다. 삼균주의나 대동사회가 지향한 균등과 조화가 지나친 '평등우선주의'로 변질될 때 사회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다. 결과의 균등만을 맹신하는 과도한 평등주의는 개인의 창의성과 성취동기를 저해하고 사회적 정체를 초래하기 쉽다. 타인의 몫을 나누는 데만 급급한 평등은 결국 전체의 빈곤을 낳거나, 이를 통제하려는 권력의 독재로 귀결되곤 했다. 우리 역사 속 사사오입 개헌이나 유신헌법 등은 공공성을 명분 삼아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던 권력의 어두운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현행 헌법이 우리에게 안겨준 과제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조화다. 자유 없는 평등은 억압을 낳고, 책임 없는 자유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공동체 붕괴를 낳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는 선열들이 기초한 건국강령과 시민들이 피로 일궈낸 헌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제헌절을 맞아, 점차 심화하는 자산 양극화와 기회의 불평등 속에서 우리는 과연 삼균의 가치를 잊지 않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공자는 대동사회를 "노인은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고, 젊은이는 쓰임이 있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나는 사회"로도 말씀하셨다. 초저출생과 초고령화, 그리고 사회적 단절을 심화시키는 초양극화의 위기에 직면한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각 세대와 계층이 함께 어우러져 성장하고 있는가. 내가 요구하는 평등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누리는 자유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동반하고 있는가 뼈저리게 자문할 때다.

이제 대동의 가치는 구호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기회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교육·노동 개혁 등 제도 정비는 물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할 줄 아는 공동체 시민을 길러내는 인성교육을 통해 우리 삶 속에 구체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헌법은 고정된 박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 속에서 숨 쉬며 진화하는 유기체다. 건국강령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마음껏 펼치되,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제도와 실천으로 뒷받침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80여 년 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꿈꾸었고, 오늘날 우리가 비로소 완성해야 할 진정한 '대동 대한민국'이다.
정연헌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빵축제 내년에는 원도심서 연다…시민참여형 축제로
  2. 대전역세권 개발 또 원점… 메가충청스퀘어가 공공기관 부지 공백 메우나
  3. 국감 종반전 충청 정치권 중앙행정기관 세종行 이슈파이팅 시급
  4. 사라진 일제 대전비행장… 도솔산·남선공원에 지하시설 남아 있을까
  5. [2026 경제세미나] "AI 시대, 대전만의 차별화와 국가반도체연구소 설립 필요"
  1. [주말사건사고] 대전서 주택·차량 화재 잇따라…충남선 교통·물놀이 사고로 2명 숨져
  2. [사설] 반도체연구소 대전 설립보다 나은 대안 없다
  3. [사설] '부천 소방관 순직' 화재 현장 잇단 참사
  4. 대한민국 최초의 대한민국노장가요경연대회 성료
  5. [홍성다문화] 홍성군가족센터, 중장년의 건강한 일상을 위한「오늘도 나를 잘 돌봅니다」 성료

헤드라인 뉴스


결혼비용 공개해도 추가금 여전… 공공 스드메가 해법일까

결혼비용 공개해도 추가금 여전… 공공 스드메가 해법일까

#. 지난 8월 결혼식을 올린 30대 박모 씨에게 예식 준비는 선택보다 확인의 연속이었다. 대전과 경기지역 예식장을 비교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가격은 쉽게 알 수 없었다. 비용을 확인하려면 상담 예약을 잡고 직접 찾아가야 했고, 제휴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스드메) 상품도 세부 조건을 따져볼수록 예상 금액이 늘어났다. 그렇다고 공공예식장으로 눈을 돌릴 생각은 없었다. 박 씨는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원하는 방식으로 치르고 싶은 마음도 존중받아야 하지 않느냐"며 "가격을 투명하게 알려주는 게 먼저지, 저렴한 곳을 찾아가라는 게..

취업 준비에만 月 58만 원… 구직청년 10명 중 7명 "비용부담"
취업 준비에만 月 58만 원… 구직청년 10명 중 7명 "비용부담"

구직 청년들이 취업 준비에 매달 평균 58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거비를 제외한 금액으로, 청년 10명 중 7명이 취업 준비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일 이 같은 내용의 '구직 청년 취업 준비비용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최근 3개월간 취업 준비에 쓴 월평균 비용은 약 58만 원으로 집계됐다. 자격증·어학시험 응시료와 학원·온라인 강의 수강료, 교재비, 면접 준비비, 교통비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부모나 가족이 대신 지불한 비용도 포함됐으며 주거비는 제외됐다. 취업..

충남경찰, `23조 원 규모`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 조직 일망타진…77명 검거
충남경찰, '23조 원 규모'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 조직 일망타진…77명 검거

충남경찰청이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일대에 거점을 두고 23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도박공간을 개설·유통한 최상위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했다. 경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이들이 개설·분양한 하부 도박사이트들의 운영을 즉각 중단시키고, 국외로 도피한 피의자들에 대해서도 국제 공조를 통한 추가 검거에 나설 방침이다. 경찰은 19일 충남청 프레스센터에서 언론브리핑을 열고 2023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도박사이트 188개를 제작·분양한 최상위 조직 25명과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 33명, 도박자 19명 등 77명을 검거했다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덕대교 부분 통제 첫 날…차로 통제에 병목현상 대덕대교 부분 통제 첫 날…차로 통제에 병목현상

  • 2026년 육군본부 국정감사 2026년 육군본부 국정감사

  • 19일부터 대덕대교 부분 통제…왕복 10개 차로 중 5개 차선 통제 19일부터 대덕대교 부분 통제…왕복 10개 차로 중 5개 차선 통제

  • 한화이글스 류지현 감독 취임 한화이글스 류지현 감독 취임